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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4 09:32 수정 : 2019.01.24 20:09

작가 김경씨와 그의 남편이 운영하는 평창의 공유 숙소 앞에 눈이 내리자 여행자들이 썰매를 타러 나섰다. 사진 이상재 제공

커버스토리겨울여행&강원도
작가·화가 부부가 꾸민 평창의 ‘아늑한 오두막’
치유의 시간 갖기에 좋은 정선의 ‘마카쉐’
딱 알맞게 깊숙한 그곳 영월의 ‘앞뜰 농장’

작가 김경씨와 그의 남편이 운영하는 평창의 공유 숙소 앞에 눈이 내리자 여행자들이 썰매를 타러 나섰다. 사진 이상재 제공
‘쉼’을 원한다. 그러나 정작 유명 여행지에는 ‘쉼’이 없다.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곳에서 대도시에서와 똑같은 일상을 보내기 마련이다. 진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 어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유명 관광지를 끼고 있지 ‘않은’ 강원도 산골의 쉼터를 일부러 찾아 떠났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Airbnb) 사이트를 한나절 뒤져 3곳을 고르고 골라 떠났다. ‘강원도 일주일 살이’가 못 견디게 하고 싶어지는 그 공간 속으로!

몸과 마음을 자연 속에 푹 담그다

지난 10일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로 갔다. 포장도로이지만, 포장의 수명은 다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구름다리’(운교)라는 어여쁜 지명에 꼭 어울리는 집이 나타났다. 화가와 작가 부부가 운영하는 공유 숙소 ‘몽상가의 시골집’과 ‘고즈넉한 오두막’이 자리 잡은 곳이다.

잡지 에디터 출신으로 칼럼니스트, 작가로 활동한 김경씨와 화가인 그의 남편은 2012년 이곳으로 왔다. “여러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생활비를 줄이려 시골에 집을 보러 다녔다. 목적지는 횡성에 있는 집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개업자가 바로 이곳으로 데려왔다.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 1시간30분 걸려 멀지 않은데 ‘오지 산골’의 느낌이 들었고, 산에 둘러싸여 있지만, 바로 앞은 채소밭이라 탁 트여 답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중한 남편이 마음에 든다고 하자 집을 본 날 바로 계약했다.” 찬찬히 집을 꾸며 2016년 3월부터 여행자들에게 방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김경씨가 안내하는 별채 ‘고즈넉한 오두막’에 들어섰다. 아궁이에 장작을 지펴 난방을 한다. 김경씨와 남편이 직접 황토로 바닥을 칠했다. 외부 기온은 영하 7도까지 떨어져 발끝이 꽁꽁 얼었는데, 실내로 발을 들이자 순식간에 녹았다. 둘러본 오두막은 ‘방구석러’에게 최적화한 곳이었다. 만화책과 소설책이 빼곡하다. 한때 마음을 빼앗겼던 만화책 <토성맨션> 전권이 눈길을 빼앗았다. 책장 사이의 엘피(LP) 플레이어와 엘피판들을 뒤적였다. 데이비드 보위와 알이엠(R.E.M), 앙드레 가뇽의 엘피판을 꺼내두었다. 그 뒤 몸을 잠시 이부자리에 누이며 생각했다. ‘아, 여기에서라면 일주일도 넘게 있을 수 있어.’ 오후 6시. 바깥에는 땅거미가 일찌감치 내려앉았지만, 그 어둠마저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궁이 온기의 힘이다.

작가 김경씨와 그의 남편이 운영하는 평창의 공유 숙소 뒷편 오솔길에 눈이 내린 모습. 사진 김경 제공
시골살이란 아름답지만은 않다. 불편하고, 번거롭다. 그런데도 김씨는 3년째 쉼 없이 이곳을 일구고 있다. 그가 갖고 있던 소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30살 무렵 네팔의 포카라에 갔을 때 갖게 된 꿈이 있었다. 완전히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토닥거리는 듯한, 천천히 흘러가는 자연의 리듬 속에서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행자의 집을 운영하며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이곳의 숙소 소개는 다른 곳보다 아주 길다. 숙소의 특징부터 주변 여행지와 맛집까지 한바닥을 소개한다. 소개 글 중 한 문구에 눈이 갔다. ‘소통보다 프라이버시(사생활)를 중시한다’는 문장이었다. 김경씨는 “예전에 1년 동안 유럽여행을 했다. 호스텔에서 다른 나라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게 재미있었지만 솔직히 엄청 피곤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누리면서 책 읽고, 음악 듣고, 생각하고,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게 더 좋았다. 그러면서 나와 삶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얻는 게 최고의 경험이구나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을 내 공간에 구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평창의 공유숙소 ‘고즈넉한 오두막’의 실내 모습. 이정연 기자
주변과 숙소를 둘러보면 볼수록 이건 ‘프로 방구석러의 감성이다’ 싶은 게 여러 부분에서 느껴진다. 오두막의 ‘외부 욕실’과 ‘별방’이 바로 그런 곳이다. 다락을 개조해 만든 별방은 3면이 창이 나 있어, 하릴없는 어두운 밤에 별을 보기에 딱 맞다. 김경씨는 “여행자들이 ‘나다녀야 한다는 압박감’을 거두길 바라며 이 숙소를 꾸몄다. 좋은 공간에 박혀 쉬면서 재충전하고, 슬렁슬렁 지내길 바랐다”고 말했다.

한겨울이면 이곳의 인기는 더욱 치솟는다. 2월까지 예약이 꽉 들어찼다. “겨울에는 장기 투숙자가 제법 많다. 춥지만 청명하고 상쾌한 공기가 매력이다. 단골 중에서는 3년 동안 10번이나 찾은 사람이 있을 정도다”고 김씨는 말했다. 11일 아침, 바깥에서는 딱따구리 소리만 맑게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홀린 듯 따라나섰다. 숙소 위쪽으로 난 푹신한 오솔길을 걸었다. 어느새 김씨의 반려견 개울이와 이웃집의 반려견이 쫓아와 길을 안내한다. 참 좋은 아침이다.

마카쉐! 모두 이 황토방에서 쉬게나

“이쪽은 정말 놀 게 없다. 지난여름에 휴가 맞아서 이곳을 온 20대 청년들이 있었다. 놀 거리가 없으니 너무 심심해하더라. 그게 안타까워서 ‘환불해 줄 테니 바다나 그런 데로 가라’고 했다.(웃음) 자연을 보고, 쉬고 싶은 사람들. 딱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윤인숙씨는 숙소 공유를 하며 경험했던 황당한 경험을 먼저 꺼내어 놓았다.

윤인숙씨가 강원도 정선에서 운영하는 공유 숙소 '마카쉐'. 이정연 기자
부산에서 살던 윤씨는 8년 전 강원도 정선에 황토집을 3동이나 지었다. 지난 11일 나무 기와인 ‘너와’까지 얹은 집에 들어서자, 은은한 나무 냄새가 콧속을 채웠다. 아궁이의 참나무 장작 냄새였다. 애초 이 집은 여행자들을 위해 만든 숙소는 아니었다. “갑상샘암 투병을 했다. 림프샘까지 전이가 됐었다.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데 도무지 더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치료를 그만두고 요양할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이곳 정선이다. 가족들을 위해 3동을 지었는데, 지금은 1동은 내가 쓰고, 나머지 2동을 공유 숙소로 내놓고 있다.” 윤씨는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이나 지인들에게만 이곳을 내어주다 4년 전부터 여행자들도 받고 있다.

‘치유의 공간’. 이를 내세운 숙소나 공간은 많지만, 이곳은 진짜 ‘치유’를 위한 공간이다. 윤씨가 건강해지고 싶은 간절한 바람을 담아 지은 집이다. “일반 흙은 쓰지 않았다. 우뭇가사리를 삶아 경주에서 가져온 황토를 개어 미장을 했다. 바닥과 지붕에는 습도 조절과 공기 정화에 좋은 숯을 깔았다. 이 바닥도 그냥 장판이 아니다. 무명 천에다가 황토를 입히고, 그 위에 콩을 갈아 거른 것을 칠하고, 마지막에 들기름을 칠했다.” 하나하나가 듣고도 믿기가 어렵다.

공유숙소 마카쉐를 운영하고 있는 윤인숙씨. 이정연 기자
믿기 어려운 일은 또 일어났다. 윤씨는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지만, 암 투병을 마쳤다. 치료를 마친 뒤 5년이 지나 재발도 없었으니 ‘완치’가 맞다. “주변에 농약 뿌려가며 농사 짓는 곳이 없어 치유에 이만한 곳이 없다. 집 뒤 쪽으로 15분 정도 가면 솔 향기를 맡으며 산책할 수 있는 숲이 있다.” 윤씨는 그가 경험한 치유의 시간을 다른 여행자들도 누리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숙소의 독특한 이름 ‘마카쉐’의 뜻을 물었다. “강원도 방언에서 따온 말이다. ‘마카’는 ‘모두’라는 뜻이고, ‘쉐’는 ‘쉬어 가라’는 뜻이다. ‘마카쉐’는 ‘모두 쉬어 가세요’라는 뜻이다.” 윤씨는 설명을 마치고 올겨울 치유의 황토방을 찾는 여행자들을 위해 참나무 장작을 정리하러 밖으로 나갔다.

홍콩에서 온 여행자가 반한 그곳

강원도 영월. ‘동강’이 굽이진 이곳으로 먼저 떠나와 정착한 사람들이, 이제 도시를 잠시 떠나온 여행자들을 맞는다. 강원도 산속 깊숙이 자리 잡은 고장들. 말로는 익히 들어온 표현이지만, 그 ‘깊숙함’을 가늠할 수 없어 선뜻 떠나기 어려웠다. 그곳을 직접 다녀와 보니 이제 말할 수 있다. 영월, 그곳은 딱 알맞게 깊숙하다.

지난 10일 찾은 강원도 영월군 흥월리. 차가 막히지 않으면 2시간30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주변 산세가 험한 듯 보였지만, 흥월리에 들어서자 산이 마을을 감싼 듯 아늑하다. 장미자씨와 안종호씨는 10년 전 인천에 살다 운명처럼 흥월리를 만나 이주했다. “강원도로 이주하려 여기저기를 다녔다. 당시 ‘동강댐 건설’ 이슈 때문에 뉴스에 영월이 자주 나왔다. ‘저기 한 번 가보자’했다. 흥월리는 산이 많고 평지가 별로 없어서 살 만 한 땅이 별로 없는데, 작은 계곡을 낀 땅이 나와 있어 한 번 와보고 바로 계약했다. 운명처럼 만난 곳이었다.” 장씨는 이주의 역사를 읊는다. 강원도 화천이 고향인 안종호씨와 전라남도 순천이 고향이 장미자씨는 그렇게 강원도 사람이 됐다.

장미자씨와 안종호씨가 운영하는 여행자 공유숙소 앞마당의 눈 온 뒤 풍경. 사진 장미자 제공
“여름에는 계곡에서 놀 수 있고, 나무에서 열매도 따 먹을 수 있지만 겨울에는 할 게 없다. 삭막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또 이런 정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장씨는 ‘흥월리 앞뜰 농장’을 운영하면서, 집 2층을 여행자에게 공유하고 있다. 2층 바깥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도 저기도 산이다. 앙상한 겨울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한 줌 쏟아진다. “눈이 오면 나가기도 힘들지만, 또 여기에 갇혀 즐기는 설경에서 위로를 받는 여행자들이 있다.” 장씨는 2년 전 흥월리를 찾았던 홍콩의 여행자를 잊지 못한다. “4살, 6살짜리 아이와 함께 홍콩에서 눈을 보고 싶다며 이곳을 찾은 여행자가 있었다. 같이 온 아이는 내내 눈사람도 만들고 하면서 지냈다. 정말 잘 쉬고 간다며, 나중에 홍콩에 꼭 놀러 오라고 당부하더라.”

강원도 영월에서 앞뜰농장과 여행자 공유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안종호씨(사진 왼쪽)와 장미자씨가 반려견 겨울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가만히 숙소에 있기가 좀이 쑤신다면, 숙소 뒤편 산인 태화산에 올라보자. “300~400m 올라가면 소나무와 도토리나무가 우거진 산림도로가 있다. 그곳을 걷는 걸 정말 좋아한다.” 장씨는 또 흥월리 인근의 ‘흥교사 터’를 꼭 가볼 만 한 곳으로 꼽는다. 흥교사는 궁예가 출가한 절로 알려졌으나, 이제 그 흔적만 남았다. “그곳에서 소백산 자락 뒤로 넘어가는 노을은 정말 장관이다. 공기가 워낙 맑아 별을 보기에도 정말 좋다”고 장씨는 말했다.

평창·정선·영월/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강원도 동쪽은 동해, 북쪽은 북한이 접해있는 지역이다. ’강릉‘과 ‘원주’를 따 만든 이름이다. 설악산 등 산지가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산악도’(山岳道)로 분류한다. 100m이하의 저지대는 강원도 총 면적의 5.6%에 그치고, 그 외는 전부 산지다. 강원도의 최북단 위도는 ‘북위 38도37분’으로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닿아있다. 설악산, 철원, 인제 등 가장 추운 고장을 여럿 포함하고 있다. 강원도 동해안은 여름철 국내 휴가지로 가장 인기 높지만, 최근에는 겨울철 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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