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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해변에서 서핑을 체험하고 있는 이정연 기자가 바닷속으로 빠지고 있다. 사진 서퍼그라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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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겨울여행&강원도
이정연 기자 겨울 바다 서핑 체험
진짜 서핑 마니아는 겨울 바다 향해
서핑 규칙 지키는 게 중요
15분 뒤 “물속이 두렵지 않고 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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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해변에서 서핑을 체험하고 있는 이정연 기자가 바닷속으로 빠지고 있다. 사진 서퍼그라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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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이제 국내 3면의 바다 어디에서나 즐기는 스포츠가 됐다. 여름이면 서핑을 할 수 있는 해안은 어디나 북적인다. 여름 서핑의 열기는 흥분을 안겨주지만, 제대로 파도 한 번 잡기 어려운 초보자는 그 열기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겨울 동해로 떠나보자. 강원도의 겨울을 바닷속에서 즐겨보자.
지난 11일이었다. 겨울 동해에서 서핑을 해보기로 한 날이었다. 정확히 일주일 전인 1월4일부터 걱정했다. ‘내가 괜히 겨울 서핑 체험을 한다고 했을까?’, ‘겨울 서핑 체험기사가 많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겠지.’, ‘차가운 동해에서 서핑을 한다 한들 30분이나 견딜 수 있을까?’, ‘팀장은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줄 알까?’ 걱정은 떠나는 날까지 이어졌다. 에스엔에스(SNS)에 ‘#겨울서핑’을 검색해보며 “할 수 있다!”를 여러 번 외쳤지만, 그것은 공허한 외침….
11일 일어나자마자 강원도 양양군의 날씨를 확인했다. 태백산맥 동쪽 지역인 영동 지역은 영서 지역이나 수도권보다 다행히 기온이 높았다. 최고 기온은 영상 7도. 마음을 다잡고 강원도 서핑의 메카 죽도해변으로 떠났다.
“날씨도 따뜻하고, 할 만하실 겁니다.” 겨울 서핑 강습을 안내해주기로 한 서핑 숍 ‘모쿠서프’의 박준영 대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초보 겨울 서퍼의 귀에는 그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히 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씨였지만, 해변의 바람은 면도날 같은 ‘겨울바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시간가량 박 대표는 ‘서핑 룰’(서퍼들이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서퍼들이 파도를 선점하는 것을 ‘파도를 잡는다’고 표현하는데, 여러 서퍼가 서로 다치지 않고 서핑을 하기 위해서는 ‘파도를 잡는 순서’ 등 서핑 룰을 꼭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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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모쿠서프 대표가 이정연 기자에게 서핑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 서퍼그라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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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해변을 지난 여름 들른 적이 있다. 파도가 서핑하기에 적당하건 적당하지 않건, 주말 죽도해변은 서퍼들로 붐볐다. 2011년부터 서핑 입문 강습을 3번이나 들었지만, 붐비는 해변에서 서핑하고 싶다는 생각이 쉽사리 들지 않았다. 부족한 실력 때문에 붐비는 해변에서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또 쭈뼛거리며 떠 있다 파도를 타지 못할 바에 차라리 해수욕을 즐기는 게 낫겠다고 여겼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서핑 초보자라면, 겨울 동해를 놓치지 말자. 1박2일 간 겨울 서핑을 즐기고 난 뒤의 결론이다.
겨울 서핑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장비는 서핑 숍 대부분이 갖추고 있다. 3㎜ 이상의 웨트슈트(물이 스며드는 슈트. 스며든 물이 체온으로 데워지면서 따뜻해진다), 모자와 장갑, 신발이 필요하다. 겨울 서핑용품으로 무장하니 추위 걱정은 저만치 물러갔는데, 다른 걱정이 생겼다. 온몸을 검정 서핑 슈트와 장비로 두르고 난 뒤 거울을 보니, 사진에 찍힐 모습이 걱정이다. 모자를 쓰고, 물이 스미지 않게 끈을 조이니 볼살이 자꾸 삐져나온다. 볼을 홀쭉하게 해봤는데, 소용없다. 배에도 힘을 줘보지만, 마찬가지로 소용없다. 사진은 운명에 맡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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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장갑, 모자 등 겨울 서핑 장비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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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에 죽도해변의 모래사장 위에 섰다. 이날 서울은 미세먼지가 심했지만, 강원도 바닷가의 하늘은 푸르렀다. 맑은 공기를 마신다는 게 행운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마음껏 깨끗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며 몸을 풀었다. 낮은 기온에서 하는 활동이니만큼 온몸을 구석구석 움직이며 몸을 데워주는 ‘워밍업’은 필수다.
워밍업과 지상 훈련을 마친 뒤 적당한 파도가 있는 곳으로 서핑 보드를 갖고 나아갔다. 박준영 대표가 골라준 파도를 잡아 ‘패들링(팔로 젓기)-푸시(윗몸 일으키기)-테이크오프(서기)’를 하고, 해안을 향해 나아가보는 게 이날의 목표였다. 풍속은 3m/s 안팎이었고, 파도 높이는 1m 정도로 높지 않았다. 서핑을 능숙하게 하는 서퍼에게 이날은 ‘파도가 없는 날’에 가까웠지만, 초보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생각보다 안 추운데?’라고 생각하며 미소 짓는 그 순간이었다. 다리부터 서서히 차가운 바닷물이 스민다.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겁이 덜컥 났다. 잔잔한 편에 속했지만, 파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파도를 거슬러 바깥 바다 쪽으로 나아가는 동안 온몸에 바닷물이 스몄다. 심장도 쿵쾅거렸다.
파도가 부서지는 지점보다 좀 더 바깥 바다로 나가기 위해 박준영 대표를 따라 보드에 몸을 싣고 팔로 물을 가르며 나아갔다. 적당한 지점에서 보드를 해안에 수직으로 향하게 하고, 고개를 돌려 바깥 바다 쪽을 바라보며 파도가 오길 기다렸다. 드디어 시작이다. 본격적인 겨울 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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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연 기자가 패들링(팔로 젓기)하고 있다. 사진 서퍼그라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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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패들! 패들! 빨라질 때까지 패들! 푸시!” 박준영 대표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엎드린 자세에서 팔을 펴 윗몸을 일으키는 ‘푸시’까지는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러나 이내 바닷속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5번은 넘게 바다에 처박혔다. 나트륨 하루 섭취 권장량은 10여분 사이에 다 섭취한 기분이었다. 코로, 입으로 소금물을 원 없이 들이켰다. 몸 안팎이 염장한 고등어 꼴이 되어갔다.
“푸시를 한 다음에 다리를 제 위치에 두면서 손을 보드에서 떼야 하는데, 너무 늦게 떼고 있어요. 그래서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고, 고꾸라지는 겁니다.” 정신없이 바다에 처박혀 정신이 없는 와중에 박준영 대표는 차분하게 수강생의 문제점을 이야기해 줬다. 그 역시 귀담아 듣지 못하겠는데, 그의 조언을 듣고 난 뒤 거짓말처럼 보드 위에 안정적으로 서는 ‘테이크오프’까지 성공했다. 죽도해변의 기적만 같았다!
테이크오프에 성공하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쿵쾅거리던 심장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낯선 느낌이 찾아왔다. “어? 왜 이렇게 따뜻하지?” 15분가량 파도를 탔던 시간은 단 10초나 됐으려나? 그 외에는 패들링을 하고, 푸시를 한 다음, 바닷속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다시 바깥 바다를 향해 패들링 해 파도를 기다리는 지점으로 갔다. 그러니까 바다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패들링’을 하게 된다. 패들링은 기본 중의 기본 동작이면서도, 가장 체력 소모가 많은 동작이다. 그만큼 패들링을 열심히 하면, 몸이 빠르게 데워진다. 심지어 찬 바닷속에서 땀이 나는 기분이다. 여름 서핑을 할 때는 패들링을 한 뒤 더워지면 꽉 조이는 서핑 슈트가 답답했는데, 겨울 서핑 때는 슈트 안이 서서히 따뜻해져 물속이 두렵지 않고 편안해졌다. 그 뒤로 1시간 넘게 겨울 서핑을 즐길 수 있었다. 바다에 있는 시간에 비례해 테이크오프까지의 성공률도 높아졌다. 그래 봤자 3번 시도하면 1번 정도 성공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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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서퍼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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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다시 바다로 나갔다. 토요일이었던 이날은 전날보다 해변이 북적였다. 11일 오후에는 단 3명이 서핑을 했는데, 12일 오전에는 6명 정도, 오후에는 10명 정도가 죽도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박준영 대표가 운영하는 모쿠서프도 이날 오후 3명의 입문 강습자들 예약이 있었다. 겨울에도 문을 닫지 않고, 4계절 내내 서핑 숍을 운영하는 박 대표는 “겨울에 수강하는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에요. 여름보다 붐비지 않고, 적당한 인원이 수업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죽도 해변의 겨울 풍경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겨울에 수강생이 오면 해변 전체에서 구경을 나올 정도로 희귀했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주말 서퍼들은 겨울 서핑이 너무 알려질까 아쉽다. “양양에서 파도 좋은 날 겨울에 하면 정말 좋아요. 여름보다 파도가 힘도 좋고, 깨끗하거든요. 그런데 이 재미가 너무 알려지면 여름처럼 북적일까 싶어서 자랑을 많이 안 합니다”라고 서울에서 온 서퍼 김아무개(23)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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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서핑 강습을 하는 죽도해변의 모쿠서프.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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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겨울 스포츠, 설상 스포츠만이 전부가 아니다. 올해 여름 서핑 실력을 한껏 뽐내고 싶다면, 겨울 서핑으로 동계 훈련을 해보는 거다. 최고 기온과 파도를 확인하고 강원도의 바다로 떠나자. 파도 사냥을 떠나자!
양양/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강원도 동쪽은 동해, 북쪽은 북한이 접해있는 지역이다. ’강릉‘과 ‘원주’를 따 만든 이름이다. 설악산 등 산지가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산악도’(山岳道)로 분류한다. 100m이하의 저지대는 강원도 총 면적의 5.6%에 그치고, 그 외는 전부 산지다. 강원도의 최북단 위도는 ‘북위 38도37분’으로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닿아있다. 설악산, 철원, 인제 등 가장 추운 고장을 여럿 포함하고 있다. 강원도 동해안은 여름철 국내 휴가지로 가장 인기 높지만, 최근에는 겨울철 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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