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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3 09:07 수정 : 2019.01.04 14:09

범마라연대를 결성한 권예린, 진소연, 노서정, 금혜지씨.(사진 왼쪽부터) 사진 범마라연대 제공

커버스토리┃마라
2016년 마라탕에 중독된 뒤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
‘마라탕에 미친 사람들’로 시작해 ‘범마라연대’까지 결정
“여름휴가 내내 대림동의 마라 맛집 탐방해”

범마라연대를 결성한 권예린, 진소연, 노서정, 금혜지씨.(사진 왼쪽부터) 사진 범마라연대 제공
‘범마라연대’가 있다. 트위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대다. 그 이름도 비장하다. 마라탕의 빨간 맛을 널리 전하고픈 마음이 담겼다. 범마라연대의 기원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처럼 마라탕 인기가 높았던 때가 아니다. 선지자의 미각을 가진 사람들일까? 궁금해졌다. 범마라연대의 핵심 구성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결론, 이 사람들 정말 마라탕에 미쳤다.

“마라탕만 먹다 보니 서서히 혈관에 마라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1혈중 마라 농도’, ‘마라 디톡스’, ‘마라연대’. 온갖 마라탕 신조어들이 대화에 쉴 새 없이 오간다. 이미 그들에게는 신조어가 아니다. 마라탕은 삶이고, 영혼이다. 마라탕 없는 인생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는 진짜배기 마라탕 덕후들과 지난해 12월29일 인터뷰했다. 2016년 ‘마라탕에 미친 사람들’(마미사)로 출발해 2017년 여름 ‘범마라연대’를 만든 네 사람 가운데 진소연(27)씨와 직장인 금혜지(26)·노서정(25)씨와 ‘마라탕 덕후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가운데 진소연씨는 독일 유학 중이어서 온라인 채팅을 통해 대화를 진행했다.

“2016년이었다. 중국 상하이에서 해장을 하기 위해 마라탕을 처음으로 맛봤다. 그 자극에 정말 충격을 받았다. 그 뒤 다니던 국내 대학의 식당에 마라탕이 등장했다. 별생각 없이 점심마다 마라탕을 먹었다. 어느새 중독돼서 ‘공강’(강의가 없음)인 날에도, 주말에도 마라탕을 먹으러 학교에 갈 정도가 됐다.“(진소연) “원래 그곳이 중국 음식을 파는 곳이면서 쌀국수가 주력 메뉴였다. 그런데 우리가 하도 마라탕을 사 먹고 난리를 치니까 나중에 가게 이름을 ‘마라마라탕’으로 바꿨다.”(금혜지) “중국에 산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비 오는 날 마라탕을 꼭 챙겨 먹었다. 한국에 와서는 가끔 먹다가 학교 내 마라탕 식당이 생긴 뒤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노서정) “마라의 중독성은 대체 불가능한 자극적인 맛이다. 이 세상 자극이 아니다.”(금혜지) “충격적인 자극이다. 이 자극이 나는 좋다. 살아 있는 느낌이다.”(진소연)

마라탕 전문점 ‘마라마라탕’의 마라탕. 사진 범마라연대 제공
그렇다. 이야기의 시작은 학교 내 식당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 사이다. 만약 이들 사이에 ‘마라탕’이라는 끈끈한 매개가 없었더라면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학업 또는 생계에 바쁜 지금까지 과연 그 우정이 유지되었을지 궁금해질 정도다. 마라탕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 위에 쌓아 올린 우정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다 뛰어넘는다.

마라탕. 매운맛과 입안이 얼얼해지는 향신료의 맛이 자극적이다. 입안에 작은 염증이라도 생기면 마라탕 국물을 머금기가 어렵다. 그러나 진정한 마라탕 덕후들은 그 고통 따위 아무렇지 않다. 노서정씨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나는 사랑니를 뺀 다음 날 피 흘리면서 마라탕을 먹었다. 입안에 거즈를 문 채.” 상상만 해도 어금니 안쪽이 쓰라린 느낌이다. 그런데 다른 구성원들은 고통 속의 마라탕 섭취가 당연하다는 눈치다. 진소연씨는 “위염에 걸려도 마라탕은 먹었다. 먹든 안 먹든 이미 위는 아프니까”라고 답했다. 때로는 마라탕이 주는 고통을 다른 기쁨으로 승화한다. “마라탕을 먹으면 그다음 날 화장실에서 심판을 받는데(설사를 하게 된다는 뜻) 나는 그것을 ‘마라 디톡스’(마라 해독)라고 부른다.” 노서정씨의 증언이다.

진소연씨가 그린 웹툰 <적절한 교환일기>. 사진 네이버 만화 갈무리
그들의 삶에 마라탕 냄새는 얼마나 진할까? 정말 마라탕이 일상의 주식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마라탕을 먹는 기자는 여전히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금혜지씨는 “나는 어제도 마라탕 컵라면을 먹고, 엊그제는 마라탕을 포장해 와 집에서 먹었다”며 “너무 맛있는 마라탕 맛집이 있어서 몇 개월 동안 한 곳에서만 100만원 넘게 썼다”고 말했다. 그는 마라탕 때문에 다른 사람과 싸웠던 일화도 소개했다. “어떤 선배가 마라탕에서 비누 맛이 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친한 사람의 욕이라도 들은 것처럼 화가 나서 결국 싸웠다.” 독일에 사는 진소연씨는 마라탕 컵라면으로 혈중 마라 농도를 유지하면서 독일 곳곳의 중국 음식점을 탐방 중이다. “어제는 베를린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 가서 마라탕은 아니지만 훠궈를 먹었다. ‘여기가 천국이다’는 말을 백 번 정도 했다.” 사랑니 발치 뒤 마라탕 섭취 에피소드를 들려줬던 노서정씨는 지난여름 휴가에 마라탕 맛집 여행을 했다. ‘대림’에서였다. 중국 어딘가에 있을 법한 지명 ‘대림’이다. 그러나 이 대림은 그 대림이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대림동’이다. 중국 현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노서정씨는 “일주일 동안 대림동 근처에 숙소를 잡고, 날마다 대림동까지 걸어가서 마라탕과 마라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다”고 말했다.

진소연씨는 직접 그린 웹툰 <적절한 교환일기>에서 처음으로 마라탕을 먹었던 경험을 소개했다. 사진 네이버 만화 갈무리
국내에서 마라탕은 대유행 중이다. 최근 편의점업체에서도 ‘마라탕면’을 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내놓았을 정도다. 마라탕의 정반대 편에 있는 음식, ‘평양냉면’의 인기에 비견할 만하다. 그러나 마라탕 덕후들은 그 비교를 거부한다. 진소연씨는 “마라탕이 인기를 끌게 된 건 놀랍지 않지만, 힙스터(최신 유행을 따르는 사람) 음식이 된 걸 보고 좀 화가 났다”고 말한다. “맞다. 마라탕은 (다른 힙스터 음식인) 평양냉면 따위와 비교할 음식이 아니다”며 금혜지씨는 맞장구를 친다. 진씨는 “마라탕은 이제 소울푸드, 언제나 가장 좋은 음식이지 멋으로 소비할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노서정씨는 마라탕이 유행을 넘어 일상의 음식이 되는 날이 머지않았을 거라 여긴다. 그는 “이제 마라탕이 김밥○○의 메뉴가 될 때가 되지 않았냐는 말을 트위터에서 봤는데, 정말 공감했다”고 말했다.

3년 전 외로웠던 마라탕 덕후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2017년 여름에는 ‘범마라연대’의 깃발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올렸다. “퀴어축제 때 연대하는 단체로 후원을 하고 싶었는데, 별다른 소속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마라탕 사랑을 알리고, 많은 사람에게 마라탕을 전도하면서 퀴어 축제에 후원도 하자는 생각이 들어 ‘범마라연대’를 결성하게 됐다.“ 퀴어축제 참여 아이디어를 냈던 금혜지씨의 설명이다. 이들은 퀴어 축제에 후원을 하고, 축제 소개 책자에 범마라연대 광고를 냈다. 거금 30만원이 들었다. 노서정씨는 “2017년 탄핵 집회 때 여러 재미있는 깃발들이 나왔다. 범고양이연대 등. 그런 느낌을 주는 ‘좀 있어 보이는 이름’을 짓고 싶은 마음도 반영했다”고 말했다.

범마라연대가 2017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낸 후원광고. 사진 범마라연대 제공
범마라연대의 핵심 구성원이 직접 맛본 마라탕 맛집 정보는 진소연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정리돼 있다. ‘마라탕의 노예가 쓰는 마라탕집 후기’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이 처음 쓰인 건 2016년 9월로, 현재까지 마라탕 정보를 덧붙여 오고 있다. 서울의 25개 마라탕 음식점 정보가 망라되어 있다. 진소연씨는 “독일에서 맛 본 3곳의 정보도 추가해야 할까 싶다”고 말했다.

“마라탕에 질리는 날이 올 거라 보나?” 기자의 질문에 노서정씨는 “절대 안 올 거다. 마라탕을 먹기 위해 장 건강을 지킬 것이다”고 말한다.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는 말만 들으면 행복해진다.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 같다”고 진소연씨는 말했다. 금혜지씨는 “올해 여름에 진소연씨가 한국에 오면 마라룽샤(마라 양념을 한 가재 요리)를 먹기 위해 지난 11월부터 매달 3천원씩 저금을 하기로 했다. 나는 좀 더 많이 시켜 먹고 싶어 매달 5천원씩 저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괜한 질문이었다. 이들에게 마라탕 없는 삶이란 없다. 아니, 삶이 마라탕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마라 얼얼하고 매운맛. 중국을 대표하는 맛 중의 하나. 마라탕이 대표적인 음식. 마라탕은 중국 쓰촨성이 고향인 음식으로, 충칭과 청두가 유명하다. 중국 베이징 대학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마라탕이 최근 2~3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얼하게 매운 ‘마라’는 라면, 치킨, 편의점 간편식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마라탕의 얼얼한 맛을 내는 향신료는 화자오(花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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