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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1 09:22 수정 : 2018.12.21 10:08

배구선수 이효희. 사진 한국배구연맹 제공

커버스토리│마흔
마흔, 직업 운동선수는 은퇴할 나이
마흔 넘은 축구선수 이동국, 30대는 월드컵 굴욕의 역사
문태종 농구선수, 40살 때 38점 넣어 승리 이끌어
내년 40살 배구선수 이효희, 뒤늦게 국가대표 돼
마흔 앞둔 여자농구선수 임영희 맹활약 중
이들의 투혼은 삶에 대한 숭고한 격려

배구선수 이효희. 사진 한국배구연맹 제공

요즘 유행하는 칼럼 투에 따라 ‘마흔이란 무엇인가’하며 글을 시작할 깜냥은 안 되지만 몸에 근육을 붙이듯 질문에 구체성을 부여하면 조금은 할 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직업 운동선수에게 마흔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은 은퇴했을 나이일 것이다. 운이 좋다면 지도자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현역 시절 모아둔 돈으로 고향에 식당을 차렸을지도 모른다. 남들과 비슷한 일상의 굴레에 이제야 접어들어 바쁘게 살다가 가끔은 소싯적 환호와 응원, 경쟁과 훈련을 떠올리며 추억할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나이 마흔은 대부분 운동선수 이후의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20대에 이르러 신체 능력이 최고조에 이르고 30대까지 그럭저럭 유지되다가 40대에 하락세를 맞이한다. 보건 당국에서는 이를 두고 ‘생애 전환기’라 하여 건강검진을 권유한다. 몸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운동선수에게 이러한 전환기가 더 치명적이리라는 짐작은 자연스럽다. 일반 직장인은 운이 좋으면 65살 정년을 모두 채울 수가 있는데, 나이 40살까지 현역인 운동선수는 그러니까, 65살이 넘어서도 그 일을 해내고 있다는 뜻이다. 아래의 40대들처럼.

케이(K)리그의 절대 강자 ‘전북 현대모터스’에는 1998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가 아직도 현역으로 뛴다. 1979년생으로 당시 10대 스트라이커였던 이동국은 내년이면 41살이 된다. 40살로서 경기에 나선 올 시즌, 열세 골을 넣었다. 이는 리그 공동 6위의 기록이며, 국내 선수로만 한정하면 월드컵 대표 선수 문선민에 이은 2위의 성적이다. 그와 함께 트로이카로서 2000년대 초반 리그 붐을 이끌던 안정환과 고종수는 각각 방송인과 지도자로의 생애 전환을 받아들였다. 지금이야 리그 최강팀의 공격수이자 대박이 아빠로 통하지만, 그는 여러 굴곡(특히 월드컵에서)을 거쳐 ‘40’에 이르렀다. 1998년 혜성처럼 나타났지만, 2002년 월드컵에서는 감독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고 발탁되지 못했다. 게으르다, 뛰지 않는다, 하는 오명 속에 2006년 월드컵에서 복귀를 꿈꾸지만, 그해 리그 경기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한다. 2010년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를 밟지만 백업 멤버였고,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는 폭우 속에 단 한 번 찾아온 결정적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후 월드컵은 그의 무대가 아니었다. 잠시 이피엘(EPL.·프리미어리그·영국 최상위 리그)에 진출하지만, 골을 기록하지 못했으며, 국내에 복귀할 시점에 그를 필요로 하는 팀은 거의 없었다. 그가 어렵사리 ‘전북’에 자리를 잡았을 때, 40살을 넘어 41살까지 경기를 뛸 거로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태 뛰고 있다. 그것도 리그에서 손꼽히는 골 사냥꾼으로.

축구선수 이동국. 연합뉴스
케이비엘(KBL.한국프로농구) 팬들에게 문태종의 별명은 ‘타짜’다 원래부터 훌륭한 슈터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승부처에서는 어김없이 나타나 슛을 꽂아 넣는다. 접전이 벌어지는 4쿼터에서 그 진가는 더욱 크다. 1975년생인 그는 올해 한국 나이로 44살이다. 생애 전환기에서 4년이란 시간이 더 지났고, 그 시간만큼 그의 기량도 예전 같지는 않다.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선 뛰는 문태종의 이번 시즌 기록은 평균 5.65득점, 0.95어시스트, 2.9리바운드. 그러나 여전히 승부처에서는 그가 기용된다. 어머니가 한국계인 문태종은 이른바 혼혈인 드래프트를 통해 국내 무대에 데뷔한다. 그때가 벌써 30대 후반이었지만, 국내에 그만한 클러치 슈터는 없었다. 특별 귀화를 통해 국적을 얻게 된 그는 곧장 국가대표로 선발되는데, 위급한 순간이면 외국인 선수에게 패스를 하는 습관에 젖어버린 국내 선수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특히 40살일 때 출전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그는 금메달을 획득해 동료들의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모두가 이란과의 결승전을 기억하지만, 토너먼트 최대의 위기는 필리핀전이었고, 그 경기에서 40살 맏형 문태종은 무려 38점을 쓸어 담아 1점 차 승리를 팀에 선사한다. 역시 타짜는 타짜.

농구선수 문태종. <한겨레> 자료사진
2017-2018 V리그 여자부 배구 우승팀인 ‘성남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제니스’의 주전 세터 이효희는 37살이 돼서야 국가대표로 첫 부름을 받는다. 1980년생인 이효희는 내년에 40살이 되지만, 포지션 라이벌이었던 김숙자, 김사니가 차례차례 은퇴한 이후에야 국가대표의 기회가 찾아온다. 다소 늦게 꽃피운 그의 기량을 넘어설 후배는 많지 않아 보인다.(올 시즌 그의 세트 순위는 전체 2위로 그 위로는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이다영뿐이다) 이효희는 최근 굵직굵직한 국제 대회에 주전 세터로 나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속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1998년 실업배구에서 경력을 시작한 이효희는 2005년이 돼서야 팀의 주전 세터가 된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이적 후 두 번째 우승을 일구지만, 2010년 팀과 계약에 실패하고 프로에서 은퇴 아닌 은퇴를 해야 했다. 한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린 그에게 창단팀인 ‘화성 IBK 기업은행 알토스’가 손을 내밀었고, 이효희는 복귀한 팀에서도 우승을 만들어낸다. 이윽고 에프에이(FA. 자유계약선수)로 이적한 ‘한국도로공사’에서도 우승을 하니, 과연 이효희를 두고 우승청부사 세터라는 별명이 허언은 아닌 셈.

배구선수 임영희. <한겨레> 자료 사진
여자 농구 ‘아산 우리은행 위비’의 포워드 임영희는 1980년생으로 내년에 40살이 된다. 그는 39살인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남북 단일팀의 주장으로 출전해 에이스 노릇까지 도맡게 된다. 비록 결승전에서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 속에 석패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지만, 짧은 시간 만들어진 팀이 다른 국가대표팀 못지않은 단단함을 과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에이스이자 맏언니인 임영희의 역할이 컸을 테다. 그가 데뷔 때부터 국가대표였던 것은 아니다. 국가대표는커녕 소속 팀에서도 주전이 아닌 식스맨이었다. 팀 동료 신정자는 리그를 대표하는 센터가 되고, 동갑내기 변연하가 대한민국 슈터 계보를 잇는 동안 무명에 가까웠던 임영희는 33살이 된 2012-2013시즌에 와서야 각성하여 지금에 이른다. 혹독하기로 유명한 위성우 감독 아래에서 일곱 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는 임영희는 마흔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만큼 맹활약 중이다. 두 자릿수 평균 득점에, 경기당 어시스트와 리바운드는 모두 3개가 넘는 선수는 흔치 않다. 임영희는 귀한 선수로 리그에 군림 중이다.

다시 묻는다. 직업 운동선수에게 마흔이란 무엇인가. 40이란 무엇인가. 운동선수는 세상이 던지는 여러 질문에 몸으로 답할 때가 많고, 그것을 사람들은 플레이라고 부른다. 선수 생활의 황혼을 더욱 붉게 물들이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좋은 플레이어가 되는 관건은 플레이의 지속성에 있다. 40대가 되어서도 20대의 경기력과 정신력을 유지하는 것, 세월의 흐름에 따라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농익은 실력을 보여줘야 할 나이가 바로 마흔이다. 그것이 어려울 때, 생애전환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준은 바로 실력의 지속성에 있을 것이다. 다시 우리의 삶으로 돌아온다. 국가대표 운동선수와 나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가혹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비슷한 또래가 최고의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은 삶에 대한 숭고한 격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흔이여, 40대여, 생애 전환기에 선 당신이여, 밀어냄과 밀려남의 중간에 서 있는 그대여, 이 굴곡의 끝에 무엇이 있더라도 오늘은 오늘의 슈팅을 날릴 일이다. 지속하거나 전환되는 우리의 삶을 위해.

서효인(시인·출판업자)

마흔 40살. 공자는 40살에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며 ‘불혹’이라 일컬었다. 40살 안팎의 사람을 ‘중년’이라고도 한다. 정여울 작가는 <마흔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마흔은 멀리서 그저 아련히 반짝이기만 했던 삶의 숨은 가능성들이 이제야 그 빛을 발하는 시기다’라고 한다. 설렘과 불안 사이 어디엔가 선 사람들, 마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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