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2.20 09:24 수정 : 2018.12.20 09:42

현대사회를 통상 ‘100세 시대’라고 한다. 40살은 아직 반환점도 돌기 전의 또다른 시작점인 셈이다. 마흔은 인생의 굴곡진 삶의 ‘진짜 출발점’이라는 것을 표현해 봤다.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커버스토리┃마흔

최근 ‘마흔’이 화두
<마흔에 관하여> 등 책 봇물
ESC <마흔 문학상> 공모
1등 “혹할 것 없다던 마흔, 아이에 혹하다”

현대사회를 통상 ‘100세 시대’라고 한다. 40살은 아직 반환점도 돌기 전의 또다른 시작점인 셈이다. 마흔은 인생의 굴곡진 삶의 ‘진짜 출발점’이라는 것을 표현해 봤다.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송은이·김숙의 언니네 라디오>에 한 사연이 도착했다. ‘언니, 저 마흔 생일에요.’ 그 사연을 보낸 사람에게 김숙이 “마흔에 시작했으면 마흔다섯에 뭔가를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송은이가 이어 “제가 새로 시작한 일도 마흔 넘어서 시작했고, 뭐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예요”라고 하자, 김숙이 “나 40(살)에 떴잖아”라고 너스레를 떤다. 내일모레 마흔인 기자는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일모레 마흔은 설렘은 잦아들고, 불안한 마음이 덮치려고 할 때 자기긍정과 위안을 찾아 떠나는 나이다. <마흔에 관하여>, <마흔에게>,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등의 책이 줄이어 나오고 있다. 책을 보니, 더 궁금해진다. 진짜 내일모레 마흔들의 이야기가. ESC가 <마흔 문학상>을 열고, 수다판을 깐 이유다. 40대를 앞둔, 넘은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이야기는 용기를 준다. 스포츠 선수만큼이나 건강하게 살고 싶은 사람을 위해 40대의 몸과 마음 건강에 관한 정보도 모았다.

인생의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린다. 이기는 건 큰 관심 없다. 즐거운 경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내일모레 마흔에게 ESC가 응원을 보낸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마흔 문학상> 1등 당선작

문재승(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호남로)
엉뚱한 아이 말이 마흔 고민 해결책

몇 해 전부터 간에 품게 된 혹을 제외한다면, 혹할 것이 없는 삶이었다. 마흔살 즈음의 인생은 마치 잘 설정된 자율주행 기능을 지닌 자동차 같았다. 익숙해진 일은 치열함 없이 그럭저럭 흘러갔고, 자가발전을 시작한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 핸들을 잡고 있는데, 마음대로 꺾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오죽하면 스마트폰에 축구게임을 내려받았겠는가. 스무살 무렵 친구들의 몸과 마음을 혹하게 한 게임 스타크래프트 열풍에도 꿈쩍 않던 과거는 잊은 지 오래였다. 뭐 하나라도 내 맘대로 해보고 싶었지만, 초보자 모드는 맥이 빠졌고 슈퍼스타 모드에는 혼이 털렸다. 그 중간 모드는 뭐 하나 이뤄낸 거 없이 어중간하게 인생의 전환점을 도는 것 같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자리에 누워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에는 아빠랑 말 섞기를 피하던 녀석들도, 억지로 잠을 청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면 온 마음을 다해 아빠와의 소통을 열망한다는 점을 간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밤이었다. “얘들아, 아빠 고민이 있어. 아빠 요새 너무 힘든데, 이제 어떻게 살지?”

“왜 아빠, 누가 괴롭혀? 그럴 땐 117(학교폭력 신고 번호)에 신고해!” 큰아들이 특히 신났다.

“야, 그건 너희처럼 어린이들이 그런 상황을 겪으면 전화하라고 만든 번호야…” “아빠, 키즈폰은 번호 못 눌러. 번호도 눌러지고 게임도 되는 거로 하나 사주든가” 그러고 보니 아빠의 마흔살 즈음은 아들의 열 살 즈음이었다.

며칠 더 고민을 들어주던 아이들은 힘들면 회사 가지 말라는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였고, 그 말에 혹해 1년간의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크루즈 모드(자동차의 정속 주행 기능)는 잘 기능하고 있었고, 정작 나는 표류하고 있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낮에는 기준을 심하게 낮춘 채 가사를 하고, 밤마다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자리에 누워 항상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낯선 해결책을 들려주는 식이었다. 아빠는 넋두리하고 아이들은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인생이 꺾인다는 불안감은 의외의 지점에서 야금야금 해소되었다. “지구를 지키는 게 미니 특공대만이 아니라 코보도 있다”는 말에 아빠는 외로운 가장의 부담을 얼마간 덜 수 있었다. “하나님은 (대체로) 믿지만, 매일은 안 믿는다”는 아들의 신박한 신앙 고백은, 스무살 시절 미련하게 고집했던 것들을 은근슬쩍 놓아버린 나를 발견했을 때 밀려오는 허무함의 근원이 무언지 알려주었다.

일 년간의 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돌아왔고, 나는 새로운 버릇을 하나 품게 되었다. 아이들과의 이야기 속에 솟아오르는 뜬금포를 받아 적기 시작한 것이다. 종일 그렇게 놀고도 “오늘은 많이 못 놀았는데 벌써 눈을 감아야 하냐”는 눈물 젖은 호소를 들으며, 그래, 인생이 그렇게 소중한 것임을 깨우치고, “이순신을 화살로 맞춘 사람은?”라는 아빠의 질문에 어느 나라의 나쁜 놈들도 아니고 “틀림없이 눈이 좋은 어떤 사람”이라는 아이들의 말을 곱씹으며 언젠가 남은 인생에 엄습할지 모르는 꼰대주의를 경계할 수 있게 되었다.

혹할 것이 없다던 마흔, 난 그렇게 아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빠져들었다.

▶ <마흔 문학상> 1등 당선자 문재승씨에게 1박2일간 유럽을 경험할 수 있는 르 메르디앙 서울 스위트룸 숙박권(조식뷔페 포함)과 셰프 팔레트 뷔페 식사권(2인)을 드립니다.

마흔 40살. 공자는 40살에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며 ‘불혹’이라 일컬었다. 40살 안팎의 사람을 ‘중년’이라고도 한다. 정여울 작가는 <마흔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마흔은 멀리서 그저 아련히 반짝이기만 했던 삶의 숨은 가능성들이 이제야 그 빛을 발하는 시기다’라고 한다. 설렘과 불안 사이 어디엔가 선 사람들, 마흔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