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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8 19:50 수정 : 2018.11.28 19:57

커버스토리│지도
강나연 객원기자 멕시코 여행기
충동적으로 바칼라르행 버스 타
인터넷 검색이 안 되는 오지
당황한 바람에 길을 잃어
우연히 한국인 간신히 만나
지도 앱 맵스미 이용 정보 얻어 구사일생

강나연 객원기자가 멕시코 바칼라르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여름, 멕시코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바칼라르’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황홀한 풍경 사진에 이끌린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숙소 예약은 가는 길에 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완벽한 오판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데이터로밍은 수십 번 끊겼고, 간신히 검색해낸 인기 숙소는 만실이었으며, 괜찮은 ‘까사’(멕시코식 민박)는 스페인어로만 예약을 받았다. 5시간 남짓 달렸을까. 바칼라르에 도착하니 자정이었다. 아아, 스산해라. 보이는 건 희끄무레한 가로등뿐,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나치려던 택시가 용케도 멈춰 섰다. 뒷좌석에 배낭을 밀어 넣는데 왜 하필 그곳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호스텔이었으나, 불개미와 베드버그(빈대) 천국이라는 후기 때문에 제쳐둔 곳이었다. 뭘 따져, 이 판국에. 나는 생각했다. 불개미니 빈대니 따지다간 흙먼지를 왕창 뒤집어쓴 채 자갈밭에서 쭈그리고 자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호스텔은 꽤 멀었다. 대문으로 들어서자 장대한 기골에 턱수염을 기른 무뚝뚝한 남자가 빈방을 내주었다. 어째서인지 뒤돌아 나가고 싶었지만, 택시는 이미 떠난 뒤였다.

날이 밝자마자 문제가 불거졌다. 불개미 떼가 사랑스럽게 기어 다니는 식탁에서 식빵과 우유를 먹고 있을 때였다. 무심코 스마트폰을 켠 나는 인터넷이 먹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와이파이도, 데이터로밍도 터지지 않았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하고, 스마트폰을 껐다 켜도 마찬가지였다. 현지 통신사를 바꿔 봐도 소용없었다. 프런트 데스크에는 ‘와이파이’와 ‘인터넷’을 제외한 모든 단어를 스페인어로 쏟아내는 직원만 있었다. 그가 벽에 달린 공유기와 내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씨름하며 오전 시간을 탕진한 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바칼라르가 지금껏 거쳐 온 멕시코 도시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캉쿤’과 플라야 델 카르멘은 도로에서도 인터넷이 팡팡 터졌다. 여긴 아니었다. 숙소의 와이파이 여부와 상관없이 바깥으로 나가면 인터넷이 뚝 끊기는 동네였다. 길치에 방향치인 나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보다 구글 맵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구글 맵은 최고의 가이드북이자 길벗이었다. 구글 맵이 식당을 추천하고, 유원지를 알려주고, 가는 길을 안내했다. 내게 치약·칫솔보다 더한 여행필수품이 있다면 그건 바로 구글 맵이었다.

당장 급한 건 현금이었다. 직원에게 현금입출금기(ATM)가 어디 있냐고 물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파파고’(네이버 번역기)를 쓸 수 없으니 최소한의 소통도 되지 않았다. 그가 미안한 표정으로 건넨 마을 지도를 쥐고 바깥으로 나갔다. 투명한 햇살, 에메랄드빛 호수, 어디론가 끝없이 굽어 들어가는 비포장도로. 여느 때였다면 평화롭게 만끽했을 풍경이었지만, 막막한 두려움이 밀려들면서 신경이 곤두섰다. 마을 지도는 조악하고 알아보기 어려울뿐더러 내가 원하는 정보가 없었다. 현금입출금기를 찾으려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다운타운으로 가는 게 그나마 현명해 보였다.

바칼라르의 거리는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아 헤매기 쉽다.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갔는데도 좌회전할 만한 길이 보이지 않았다. 불안했다. 지도를 다시 봤다. 아직 삼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10분 정도 더 페달을 밟았다. 땀이 쏟아지고, 목이 탔다. 이윽고 왼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와 핸들을 꺾었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어야 할 곳에 이국적인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디서 개인지 늑대인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울고 싶었다.

아, 또다시 이 모양 이 꼴이구나! 인도 ‘조드푸르’에서,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타이(태국) ‘빠이’에서, 하물며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도 길을 잃어 호되게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길 찾기에 탁월한 사람은 헤매는 사람의 심정을 모른다. 가도 가도 멀어지기만 하는 기분,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 모를 굴레에 갇혀 허우적대는 그 기분 말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주택가의 주민들에게 지도를 내밀었다. 그들은 돕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같아 보였고, 나도 그런 그들이 고마웠지만, 끝내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다.

구글 맵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구글 맵을 쓰면 길을 잃어도 지피에스(GPS)로 현재 위치를 찍어볼 수 있기에 어렵지 않게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구체적인 정보가 최신 버전으로 총망라돼 있으니 현금입출금기건 환전소건 다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다운타운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른다. 배도 고파 죽겠다. 현금입출금기는 과연 찾을 수 있을까? 타코와 세비체가 맛있다는 그 식당은? 적어도 반나절은 수영하겠다던 그 신비한 세노테(천연 싱크홀)는?

멕시코 음식은 담백하면서도 소박하다.
풍광이 아름다운 멕시코 바칼라르.
문득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놀랍게도, 그리고 너무나 기쁘게도, 한국인이 드문 이곳에 한국인 여성 세 명이 있었다. 오, 나의 구세주들이여! 황급히 그들에게 다가가 길을 물었다. “다운타운이요? 저긴데요.” 그랬다. 바로 코앞에서 나는 헤매는 중이었다. 그들이 나를 현금입출금기까지 데려다주며 말했다. “맵스미(오프라인에서 사용 가능한 지도·길 찾기 앱) 쓰세요, 맵스미. 오프라인 지도인데, 구글 맵 뺨쳐요.” 그들은 쿠바에서 건너온 여행자들이었는데, 쿠바는 국가 전체에 인터넷이 되지 않아 맵스미가 필수라고 했다.

셀카로 자신을 찍고 있는 강나연 객원기자.

와이파이가 터지는 식당을 찾아가 맵스미를 다운받았다. 그 후로는 맵스미 덕분에 잘도 먹고 놀았다. 지리를 익히고 나니 바칼라르는 지상낙원 그 자체였다. 호스텔도 옮기지 않았다. 인터넷과 격리된 채 늦은 밤까지 호숫가에 누워 물소리를 듣는 삶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끝내기 전,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게 있다. 한국에서는 구글 맵보다 네이버 지도가 정확하다는 점이다. 한국이 휴전국이라는 이유로 위치정보를 구글 측에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리더라도 믿거나 말거나.

글·사진 바칼라르(멕시코)/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지도 지형을 기호·문자 등 객관적인 형식을 사용해 실제보다 축소된 형태로 평면상에 나타낸 것을 뜻한다. 종래의 지도는 대부분 종이로 만들어졌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는 웹 지도, 지도 앱 등으로 형식이 다양화됐다. 최근에는 ‘채식 지도’, ’반려동물 지도’ 등 개인의 취향을 담은 지도 앱도 등장했다. 거주지 일대를 직접 다니면서 스스로 지도를 제작하는 이들도 생겼다. 이른바 ‘지도 라이프’가 일상에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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