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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9 10:04 수정 : 2018.11.09 19:17

<나는 농담이다> 등을 펴낸 김중혁 소설가.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커버스토리|농담

위트 넘치는 글쓰기 대가 소설가 김중혁
2년 전 <나는 농담이다> 펴내기도
앨리 웡·트레버 노아·유재석…그가 좋아하는 희극인
“재밌는 글 쓰는 법 들어보니
삶의 태도와 관련”…“유머도 치밀한 배치 필요”

<나는 농담이다> 등을 펴낸 김중혁 소설가.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어떤 책은 그저 의무감으로 읽는다. 커피를 연거푸 들이켜며,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읽는다. 김중혁(48) 작가의 책은 아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순간에도 읽을 수 있다. 누워서 읽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 김중혁 작가의 글이다. 소설이건 산문이건 그의 글은 유머로 빛난다.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에 빈틈을 만드는 유머,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 없이는 구사할 수 없는 유머다. 그랬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카페 ‘다산북살롱’에서 김중혁 작가와 마주 앉게 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글은 읽기보다 쓰기가 어렵고, 유머는 말보다는 글로 담아내기 어렵다. 궁금했다. 2016년 장편소설 <나는 농담이다>를 펴낸 그가 생각하는 농담의 의미는 무엇이며, 등단 이후 18년간 줄곧 위트 있는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지. 그는 지금까지 4권의 장편소설과 4권의 소설집을 썼고, 동인문학상(2015)과 이효석문학상(2012), 김유정 문학상(2008) 등을 받았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나 <비티브이>(Btv) ‘영화당’, <한국방송>(KBS)의 <대화의 희열>에서 그의 입담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공개하는 그와의 대화가 얼마나 즐거웠을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유머가 있는 소설을 주로 쓴다. 그 이유는?

“소설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소설을 통해 세상의 미세한 틈을 찾아내고, 그 틈을 같이 얘기하면서 조금이라도 세계가 바뀌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내 소설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최대한 부드럽게, 유머러스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사가 구어 같고 느슨해서 더 재밌다.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심각한 얘기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농담이나 쓸데없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나. 그런 순간들을 포착하고 싶어서 의미 없고, 쓸모없고, 하찮아 보이는 대사를 쓴다. 그런 점 때문에 읽는 분들은 좀 웃기다거나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무겁지 않으니까. 대사를 제일 많이 고친다.”

이를테면 그의 대사는 이런 식이다. ‘우주 가면 뭐가 제일 좋은지 알아?/넓은 거?/아니/깊은 거?/아니/어두운 거?/아니/ 그럼 뭔데?/ 위아래가 없는 거.’(<나는 농담이다> 87쪽) 이 소설의 주요 화자는 낮에는 컴퓨터 수리공, 밤에는 아마추어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일하는 송우영이다. 그는 어머니를 잃고 우주비행사인 형이 사고로 실종된 상황에서도 어머니와 형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다. 그의 코미디는 재미있고 천연덕스러워서 오히려 비통하게 느껴진다. 농담이 만들어내는 페이소스라고 할까.

-어쩌다 <나는 농담이다> 같은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나?

“인간이 발명한 것 중 제일 숭고한 게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와 웃음을 통해 고통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말을 정말 많이 하는 직업이다. 거기서 느껴지는 이상한 슬픔 같은 게 있다.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제가 소설가 커트 보니것을 좋아하는데, 정말 심각한 주제를 심각하지 않게,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세련된 농담을 하느냐가 그 사회의 문화를 판가름하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매우 척박하다. 세련된 농담을 하기 위해서는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다양한 말 속에서 뉘앙스를 만들어내고 찾아내는 일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고통 받는 걸 보면서 터지는 웃음 말고, 누군가를 가해하지 않으면서도 만들어낼 수 있는 웃음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나는 농담이다> 등을 펴낸 김중혁 소설가. 지난 5일 합정동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최근 한국도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 극장이 많이 생겼다. 그가 소설을 쓸 때까지만 해도 직접 스탠드업 코미디를 볼 수 있는 곳은 적었다. 그는 미국식 스탠드업 코미디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로 주로 봤다. 그가 본 영상 중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소재를 개발하려고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장면이 있었다. 누군가를 코미디 소재로 삼으려면 그 대상을 아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데, 그는 그게 소설 쓰기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저도 소설을 구상할 때 사람들 말투와 미묘한 행동들을 관찰하니까요.”

-좋아하는 희극인이 있다면?

“스탠드업 코미디언 중에는 ‘앨리 웡’과 ‘트레버 노아’다. 웡은 여성이고, 노아는 흑인이다. 정말 재밌다. 그들은 소수자로서 가진 억눌림과 분노를 유머로 풀어낸다. 자신의 고통을 폭력이 아닌 말로 되돌려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유재석씨를 좋아한다. 최근 즐겨보는 예능프로그램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인데, 유재석씨가 할머니들이나 애들 붙잡고 하는 말이 정말 웃기다. 예능프로를 보면서도 많이 배운다. 사람마다 말투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르잖나. 관찰해두면 대사 쓰기, 인물구상에 유용하다. 핑계인가?(웃음)”

지난해 출간된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그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담긴 산문집이다. 내용은 내용대로, 구성은 구성대로 알차다. 글쓰기 도구가 소개되거나 수능시험처럼 문제가 나오는 페이지는 한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서문에서 말했다. “나아지려고 하는 마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오히려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는 잘하게 될 테니 지금은 부담을 내려놓고 쉽게 쓰고 그려보자.”

-읽어 보니 정말 뭐든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던데.

“그걸 원했다(웃음). 글쓰기에 대한 신화화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글쓰기란 숭고한 일이고, 위대한 일이고, 책상 막 정갈하게 해놓고 하는 거라는. 글쓰기가 그렇게 힘든 게 아니고,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 뭘 창작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고, 정말 재미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돈도 안 든다.(웃음)”

김중혁 작가가 펴낸 책들 가운데 <나는 농담이다>와 <무엇이든 쓰게 된다>. 사진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하지만 일반인들은 첫 문장부터 막힌다.

“시작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시작을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게 어차피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볍게 시작하라. 다만, 쓰기 전에 어떻게 쓸지 시뮬레이션해 보는 게 중요하다. 책상에 앉아 첫 문장을 쓰려고 하지 말고, 돌아다니고 움직이면서 머릿속으로 문장을 그려보는 연습을 많이 한다. 한 3~4개 문장까지는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막상 글쓰기를 하면 상상 속의 문장과 내가 쓴 문장이 다르다. 그때부터 내가 진짜 뭘 쓰길 원하는지 알게 되고, 그럼 자연스레 고치게 된다.”

-어떻게 해야 재치 있고, 유머와 위트가 풍부한 글을 쓸 수 있나?

“처음부터 유머가 나오진 않는다. 주제를 통째로 파악한 다음에 어디에 어떻게 유머를 넣을지,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해서 잘근잘근 씹은 뒤 어떻게 재배치할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주제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유머도 치밀하게 배치하는 것이다. 앞에 넣을 건지 뒤에 넣을 건지 고민한다. 무엇보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나는 진지한 대화만 오간다면 그걸 못 견디고 가볍게 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쪽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엄청 진지한 페이지만 몇 페이지 쓰는 건 힘들어서 어떻게든 유머를 넣는다.”

그에게는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주문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지구의 나이는 46억년이다.’ 그는 이 말을 떠올리며 “나 자신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느낀다”고 했다. “우연히 지구에 와서 48년 살았고, 46억년이라는 시간 속에 이토록 작은 대한민국에, 거기서도 서울에, 아니, 서울도 아닌 한 귀퉁이에 사는 거잖아요. 이런 하찮은 삶 속에서 제 슬픔과 고통, 인간관계에서 겪는 삐걱거림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아무렇게나 되도 괜찮지 않나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죠.”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농담으로 고통을 극복하려는 태도를 가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인터뷰는 ESC의 사행시를 부탁하는 것으로 끝났다. ESC 창간멤버로서 그는 흔쾌히 응했다.

2학년 때/ 에프를 맞았을 때/ 스무 살 인생이 끝난 줄 알았지만/ 시작도 안 한 거였어!”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꿀잼&농담: 남을 웃기려는 말, 유머가 섞인 말을 뜻한다. 유머의 라틴 어원은 ‘수액, 흐르다’로 상황을 유연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시의적절한 농담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지만, 부적절한 농담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재미있는 농담은 ‘꿀잼’, ‘유잼’, ‘빅잼’, ‘레전드’로 표현하며, 채팅식 반응은 주로 ‘ㅋㅋㅋㅋㅋㅋㅋㅋ’다. 문화권마다 비슷한 형태의 채팅 용어가 있다. 영미권은 ‘lololoololololo’, 'kekekekekekeke', 타이(태국)는 ‘5555555555', 인도네시아는 ‘wkwkwkwkwkwk’, ‘kwkwkwkkwkw’, ‘hahahhahahaha'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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