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08 09:18
수정 : 2018.11.08 09:27
|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
커버스토리|농담
꿀잼·빅잼·유잼 등 웃음 관련 신조어 봇물
코미디 공연 찾는 이들도 많아져
세태 각박할수록 농담이 인기
위트는 대중 스타가 되는 조건 중 하나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 유머 감각
|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
언제부턴가 친구들과 마주 앉아도 좀처럼 웃을 일이 없었다. 직장, 진로, 돈 문제를 한탄하는 것만으로 바빴다. 부장의 허무개그에 억지로 짜내는 웃음이라면 모를까, 회사에서는 더욱더 웃음이 귀했다. 윤선경(34)씨가 친구들과의 ‘불금’을 포기한 대신 금요일마다 챙겨보는 건 <문화방송>(MBC)의 <나 혼자 산다>다. 윤씨는 코미디언 박나래의 팬이다. “센스 넘치는 ‘드립(즉흥적 농담)’이 ‘꿀잼’이라 킥킥대면서 봐요.”
최근 몇 년 새 너나 할 것 없이 쓰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단연 ‘꿀잼’이다. 비슷한 말로는 ‘빅잼’, ‘유잼’, ‘꾸르잼(꿀잼을 늘인 말)’이 있으며, ‘노잼’과 ‘엄근진’은 반대말이다. ‘엄근진’은 ‘엄격·근엄·진지한 척 한다’는 뜻의 신조어로, 용례는 이런 식이다. “왜 혼자만 엄근진?”, “엄근진 사람 노잼!” 진지한 표현이나 사회적 담론보다는 농담과 유머를 추구하는 세태가 고스란히 반영된 말이다.
사람들이 ‘잼’ 찾기에 몰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등록금과 집값은 치솟고 고용불안은 끝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이 비극적일수록 농담에 대한 갈망은 커진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농담을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정서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존재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말했다. “유머는 아스피린처럼 아픔을 달래준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보니것의 전쟁경험이 담긴 소설 <제5도살장>은 블랙 유머로 가득하다.
지난달 17일, 서울 미포구 서교동 ‘제이디비(JDB)스퀘어’에서 열린 코미디 공연 <투깝쇼> 관객석에는 유독 눈에 띄는 여성이 있었다. 서울 관악구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온 신명희(46)씨였다. 신씨는 무대에 선 개그맨들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에 시종일관 적극적으로 답했다. “딸의 학원 시험이 끝나 머리 식힐 겸 같이 왔다”는 신씨는 “평소에도 농담을 즐기는 편”이라며 웃었다. “뭐 웃어서 나쁠 게 있나요? 농담을 하면 애들과 격의 없이 지내기 좋은 데다, 아이들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데도 좋다고 생각해요.”
|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투깝쇼>의 출연자들. 사진 왼쪽부터 김승진·홍윤화·김민기·김영. 사진 강나연 객원기자
|
맞는 말이다.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환영받는다. 딱딱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에 농담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시의적절한 농담은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만들뿐더러 유머가 섞인 말은 그렇지 않은 말보다 설득력이 강하다. 생각해보라. 한때 국회의 ‘독설가’였던 유시민 작가가 ‘호감형 지식인’으로 거듭난 이유가 무엇인지,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이 화제가 됐던 이유가 무엇인지, 외식업체 대표 백종원의 방송이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유머가 그 답이다.
유머 감각은 리더의 자질을 논할 때도 빼놓을 수 없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유머 감각을 분석한 책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에 따르면, 성공적인 지도자들은 유머 감각의 소유자였다. 스트레스가 심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웃음이 부정적 감정의 안전밸브 역할을 해줬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머가 풍부한 미국 대통령 1위로 에이브러햄 링컨을 꼽았다. “나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웃는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치르며 한 말이다.
그 의도가 농담일 뿐이라면 ‘아무 말 대잔치’도 상관없을까? 물론 안 되고말고. 타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유머가 아니다. 혐오의 언어일 뿐이다. 농담과 모욕은 다르며, 풍자와 조롱도 다르니 주의해야 한다. ‘섹드립’을 성희롱과 구분하기 힘들다면 차라리 시도하지 않기를 권한다.
때로는 덕담만으로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 <티브이엔>(tvN)의 <코미디 빅리그>와 코미디 공연 <투깝쇼>에 출연 중인 코미디언 김민기씨의 말을 들어보자. “유머가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고 기분 좋게 하는 말이라면, 다른 사람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하는 것만으로도 유머를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우, 선배님 바지가 멋지네요, 모자가 예쁘네요’, ‘아, 진짜?’ 이러고 서로 웃는 것도 유머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꿀잼&농담: 남을 웃기려는 말, 유머가 섞인 말을 뜻한다. 유머의 라틴 어원은 ‘수액, 흐르다’로 상황을 유연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시의적절한 농담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지만, 부적절한 농담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재미있는 농담은 ‘꿀잼’, ‘유잼’, ‘빅잼’, ‘레전드’로 표현하며, 채팅식 반응은 주로 ‘ㅋㅋㅋㅋㅋㅋㅋㅋ’다. 문화권마다 비슷한 형태의 채팅 용어가 있다. 영미권은 ‘lololoololololo’, 'kekekekekekeke', 타이(태국)는 ‘5555555555', 인도네시아는 ‘wkwkwkwkwkwk’, ‘kwkwkwkkwkw’, ‘hahahhahahaha' 등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