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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바이칼 호수 종단 탐험에 나서는 김영미 탐험가를 출발지인 쿨툭 마을에 사는 개가 배웅하고 있다. 사진 강레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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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탐험
한국 대표 탐험가 남영호·김영미
세계 최초 타클라마칸 사막 종단 남영호
김영미, 7대륙 최고봉 완등···곧 남극 갈 예정
“탐험, 걷는 것부터 시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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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바이칼 호수 종단 탐험에 나서는 김영미 탐험가를 출발지인 쿨툭 마을에 사는 개가 배웅하고 있다. 사진 강레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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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탐험가들은 겉모습이 아주 강해 보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달랐다. 한국인 평균 정도이거나 더 작았다. 호기심이 더 커졌다. 세계 또는 국내 최초의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탐험가들을 마주하고 나서다. 그들의 체격은 작았지만, 눈빛은 아주 강렬했다. 2009년부터 세계 최초 10대 사막 무동력 탐험을 진행 중인 사막 탐험가 남영호(41)씨와 국내 여성 최초 남극 단독 탐험을 목표로 삼은 산악인 출신 탐험가 김영미(38·㈜영원무역)씨를 각각 지난 4일과 5일 만났다.
강렬한 눈빛과 함께 이 둘 사이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모두 강원도 출신이다. 남영호씨는 동강이 흐르는 영월에서 태어났다.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동강을 뗏목 만들어서 타고 내려가고, 오르지 말라는 산엔 기어코 오르고.” 언제인지 정확히 모를 만큼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탐험가의 꿈을 키워갔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도 세계 지리나 역사에 관심이 컸다. 대학 때 사진 전공도 나중에 탐험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영미씨는 평창에서 나고 자랐다. 탐험가의 꿈을 가졌던 적은 없었다. 그러다 미술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 뒤 동아리 산악부에 우연히 가입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 인생 경로가 바뀌었다. “여성 동기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내가 그만둔다고 하니까, 울더라. 그 친구가 그 뒤에 설악산을 갔다가 다쳤다. 병원에 찾아가니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일본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의 <내 청춘 산에 걸고>였다. 대학 산악부 출신으로 5대륙 최고봉을 오른 사람의 자서전이었다. 그 책을 집어 들었고,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운동회가 너무 싫었던 김씨는 그렇게 8000m 고지를 수십 번 등반한 산악 탐험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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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아라비안사막 도보 횡단에 성공한 남영호 탐험가. 이 사막은 단일 모래사막으로는 최대 규모다. 사진 남영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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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탐험 기록은 화려하다. 이제까지 그 기록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게 이상할 정도다. 김영미씨는 2003년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한 뒤 2008년 에베레스트에 올라 국내 최연소 7대륙 최고봉 완등 기록을 세웠다. 2013년에는 히말라야 암푸 1봉 세계 초등(최초 등정)을 이뤄냈다. 지난해에는 723㎞의 얼어 있는 바이칼호수 위를 혼자 걸어 건넜다. 남영호씨는 2009년 세계 최초 450㎞ 타클라마칸사막 종단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뒤로 10대 사막 가운데 6개를 탐험했다. 가장 최근 탐험은 2016년 1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진행한 3400㎞에 이르는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 탐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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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4일 만난 남영호 탐험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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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렇게 그들의 등을 떠미는 것일까? “2010년 갠지스강을 탐험하면서 무장 강도를 두 번이나 만났다. 그 뒤 1년 동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를 겪었다. 일반 회사에 취직해 일도 했지만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탐험을 통해 얻는 도전과 긍정의 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신념으로 버텨왔지만, 정신적 스트레스에 쓰러질 뻔했던 남영호 탐험가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때 멘토로 여기는 탐험가 선배에게 ‘나도 형처럼 살고 싶다’며 상의를 했다. 하지 말아더라. 너무 낙담해 울면서 집까지 1시간 넘게 걸었다. 집에 도착해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자기가 뭔데 하라, 하지 말아야!’ 동석했던 다른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꿈을 잃지 말라고 했다. ‘정말 탐험을 해 보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진짜 탐험을 시작했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하며 봤던 타클라마칸사막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사막 탐험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도중에 마음 약해져도 그만두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세계 10대 사막 탐험이라는 목표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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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5일 만난 김영미 탐험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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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탐험가는 등반하며 마주한 ‘자연의 힘’에 이끌려 지금까지 왔다. “간간이, 그러나 꾸준히 일기를 쓴다. 그런데 대학 때 산악부에 든 이후로 일기장 이야기는 죄다 산 이야기다. 내가 뭘 어떻게 하려고 해서 기록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여러 선배의 노력과 끝없는 훈련이 보탬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나를 이끈 가장 큰 힘은 자연의 힘이었다.” 자연의 품 안에서 탐험을 이어가길 갈망하는 그에겐 별명이 하나 있다. 자신이 직접 지은 별명이다. ‘비박소녀’다. 비박은 산속에서 텐트 없이 침낭만으로 밤을 보내는 것을 일컫는다. “지난 추석 연휴에도 비박을 했다. 원랜 등반 장비만 해도 무거워서 텐트를 안 갖고 다니다 보니 비박을 하게 된 건데, 지금은 비박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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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탐험가의 일기장. 산악부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일기장에는 탐험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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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탐험가는 30번이 넘는 원정을 떠났었고, 남영호 탐험가가 동력 없이 걸은 거리는 3만4천여㎞에 이른다. 그 높고, 긴 여정에 생존의 위기가 없었을 리 없다. 김영미 탐험가는 스스로를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우연히 등산을 시작해서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고, 탐험의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많은 동료들이 탐험 중에 돌아가시기도 했다. 그래서 ‘탐험가’, ‘산악인’, ‘선수’ 등 내 이름에 뒤따르는 여러 말이 있지만, 스스로를 아직까지 살아남은 사람, 아직 길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밝고 웃는 낯에 살짝 그늘이 드리우는 듯했다. 그는 2011년 고 박영석 대장의 등정팀에 합류해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었다. 그때 고 박영석 대장은 등반 완료를 코앞에 두고 눈사태를 만나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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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호 탐험가의 위성전화기와 구조요청장비.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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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호 탐험가는 탐험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다만, 눈앞에 닥친 일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지난 탐험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파타고니아 탐험 때 3분의 2 지점 즈음에 1인용 카약을 타고 호수를 건넜다. 말이 호수지 길이가 200㎞가 넘는, 바다나 다름없는 호수였다. 그때 돌풍을 만났다. 파고 2m가 넘는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호수의 물은 빙하가 녹아 흘러들어 아주 차가웠다.” 카약 안으로 물이 차오르고, 결국 배가 뒤집혀 빠졌다가 다시 기어오르길 반복했다. “‘죽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죽겠다’라는 말은 내뱉기 싫었다. 탐험 떠나오기 직전에 둘째가 태어났다. 미친 사람처럼 웃으면서 딸 이름을 외쳤다.” 결국 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다. 남씨의 체온은 32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심정지까지 와 정신을 잃었지만 목숨은 건졌다.
이렇게 탐험가들은 탐험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목숨을 걸기 위해 탐험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지만, 생존을 위한 판단도 정확하게 내려야 하는 게 탐험가의 과제다. “흔히들 탐험은 목숨 걸고 한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목숨은 살릴 수 있을 때 살려야 한다. 그 시점을 잘 판단해야 한다.” 남영호씨는 열정 가득한 탐험 경험을 들려주다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김영미씨는 “탐험을 떠나기 전에 원정 계획서를 제출할 때가 있다. 내가 그 계획서를 쓸 때 항상 맨 위에 이걸 적는다. ‘안전을 기본으로 하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 원정대’ 탐험은 살아야 한다. 다치면 안 된다. 그래서 안전이 가장 기본이고 우선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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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사막을 걷고 있는 남영호 탐험가. 사진 박현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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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탐험이라는 공통의 지향을 가진 두 탐험가가 당장 목표 삼은 탐험지를 놓고 보면 정반대의 세계를 향하는 듯하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막과 한없이 차가운 얼음 위. 김영미 탐험가의 다음 탐험지는 ‘남극’이다. 내년 목표지다. 국내 여성 탐험가로는 최초 도전이다. “남극점 도달 관련 기록을 살펴보니 성공한 여성은 6명뿐이다. 30대 들어서 시야의 전환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대는 수직의 세계를 탐험했다면, 30대에는 수평의 세계에 도전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3년에 세운 계획이니 벌써 5년이 지났다. 원래 계획은 올해 떠나는 거였다. 내년에 도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지난해 723㎞ 바이칼 호수 도보 종단 탐험은 일종의 남극 탐험을 위한 훈련이었다. “자신감을 얻으러 갔다. 얼어 있는 바이칼 호수 위를 걸어 건너는 동안 얻어지는 느낌이 최악이 아니고, 여유롭게 이겨낼 수 있는 순간이어야 했다.” 그렇게 23일을 걸었다. “충분한 자신감을 얻었다. 바이칼 호수나 히말라야에서의 경험이 남극 탐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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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 중단 중안 김영미 탐험가. 사진 김영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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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위를 걷는 남영호 탐험가는 그의 책 <내게 사막은 인생의 지도이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막에도 비가 내린다. 축 처져 있던 나뭇가지가 흔들렸고, 나뭇잎과 모랫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둔탁하지만 흥미로운 리듬을 만들었다.’ 비가 내리는 사막을 상상한 적이 없다. 사막은 기자인 나에게 ‘고독’과 ‘죽음’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13년 전 중국 네이멍 자치구에 가 고비사막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사막의 복판도 아니고, 주변에서 사막을 보며 중얼거렸다. “난 사막에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이런 내 이야기에 남영호 탐험가는 “사막을 볼 때 두려움을 느낀다고들 한다. 그런데 안 가보고 무서울 것 같아서 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막에 서 봐야 내가 또 사막을 탐험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며 응원의 말을 건넨다.
언젠가 탐험을 나설 수 있을까? 스스로 의문을 품는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그들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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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탐험가는 723㎞ 바이칼 호수 종단에 성공한 뒤 남극점 도달 탐험을 준비 중이다. 사진 김영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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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걸어보라. 한 걸음씩. 탐험을 떠나면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진짜 힘들다. 어느새 공포감이 덮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거기에서 달아나기 위해 또 걷는다. 그 노력 자체가 탐험인 것이다. 당장 가까운 산이라도 꼭 올라가 걸어보길 바란다.”(김영미 탐험가)
“탐험이 모두 극한이고, 심각할 필요는 없다. 낯선 곳으로 나서보길 바란다. 탐험이라는 행위 이전에 전혀 새로운 곳이라는 탐험 대상지가 주는 신비로운 설렘이 있다. 탐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는 곳, 그곳으로 떠나라.”(남영호 탐험가)
의문과 정체 없는 두려움을 거두자. 두 탐험가의 조언을 따라보자. 그래, 내일 낯선 곳으로 떠나 걷자. 탐험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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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탐험: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곳에 가 살펴보고 조사하는 행위. 산악, 극지, 사막, 정글 등을 탐험하는 탐험가들은 스스로 ‘살아남은 사람’이라 일컫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13일(현지시각)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탐험대 5명이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 구르자히말 원정 중 눈 폭풍에 목숨을 잃었다.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활동이지만, 최근에는 <정글의 법칙>, <거기가 어딘데?> 등의 예능을 통해 ‘탐험’과 일반인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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