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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05 10:46 수정 : 2018.10.06 13:06

완전 채식 식당 그라시아스 마드레의 멕시코식 샌드위치 `템페 초리조 토르타'. 이정연 기자

[ESC] 커버스토리 | 채식
다양한 인종·정체성이 모여 사는 샌프란시스코
채식과 채식 문화는 유행, 트렌드를 넘어선 일상
멕시코·미얀마·중국 채식 즐길 수 있는 식당들
도시 어느 곳에서도 완전 채식 쉽게 접할 수 있어

완전 채식 식당 그라시아스 마드레의 멕시코식 샌드위치 `템페 초리조 토르타'. 이정연 기자

샌프란시스코. 미국 서부 지역에서 ‘혁신’, ‘진보’라는 열쇳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다. 1800년대 말 금이 있다는 소식에 순식간에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다양한 인종에 더해, 1960년대 말 기성 권력과 질서에 반기를 든 세계 여러 지역의 청년 운동인 ‘68운동’ 정신이 넓고 깊이 영향을 끼친 히피의 도시. 시민권을 차별 없이 확장하는 데 가장 앞섰던 미국 내 도시이기도 하다. 그 ‘권리’에 대한 고민과 고려는 인간에 멈추지 않고 ‘비인간 동물’로도 이어졌을 테다.

그 시작은 ‘사랑의 여름’에서 시작됐다. 샌프란시스코채식협회는 누리집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랑의 여름’을 경험한 사람들은 우리와 아름다운 행성을 공유하는 동물 동반자에게 그 친절을 전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랑의 여름은 1967년 1월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공원에서 물질 만능주의를 비롯한 기성체제에 대한 회의를 느끼던 이들이 가진 모임이 폭발적으로 확장하며 그해 여름 10만명의 청년이 모여든 사건을 일컫는다. 이 단체는 그 직후인 1968년 세워졌고, 올해로 50돌을 맞았다. 이런 역사를 지닌 샌프란시스코에서 채식은 ‘유행’이 아니다. ‘메가 트렌드’를 넘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 도시들은 해마다 꼽는 ‘채식주의자에게 가장 친화적인 미국 내 도시’ 상위권에 빠짐없이 오른다. ‘샌프란시스코 채식’이라는 검색만 간단하게 해봐도 추천 식당이 수십 개다. 놀라운 것은 정말 다양한 나라의 채식 식당이 곳곳에 있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1979년 문을 연 미국식 채식 레스토랑 ‘그린스’가 있지만, 눈을 돌려 미국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채식 식당들을 찾아 세계 채식 여행을 떠나봤다. 샌프란시스코관광청 추천과 여행지 평가 사이트 ‘트립 어드바이저’ 등을 참고해 3곳의 채식 식당을 방문했다.

‘그라시아스 마드레’의 실내 전경. 이정연 기자
지난 8월30일 오후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지역에 들어서자 눈길이 가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강렬한 원색의 벽화가 나른한 평일 오후의 거리에 생기를 더한다. 미션 지역은 멕시코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그 복판에 완전 채식 멕시코 음식 레스토랑 ‘그라시아스 마드레’가 있다. 멕시코 요리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타코’, ‘케사디아’, ‘엔칠라다’와 다진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주로 들어간 것들이다. 그러나 이곳은 완전 채식을 지향한다. 일체의 고기와 유제품, 해산물을 쓰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주재료 중 하나인 ‘토르티야’를 만드는 데 쓰이는 옥수수도 유전자변형작물(GMO)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식재료는 이 식당과 연계된 농장인 ‘비 러브드 팜’에서 가져온다.

식당에 들어서자, 개방형 주방에서 매콤한 음식 냄새가 풍겨온다. 바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은 1, 2명 정도 앉기 좋다. 4인 이상 테이블도 여럿이다. 개방형 주방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음식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든지, 기름 연기나 냄새에 음식을 먹기도 전에 느끼함이 느껴진다든지 하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은 기분 좋은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식당 직원 앨리슨은 인기 메뉴 중 하나라며 ‘템페 초리조 토르타’를 추천했다. ‘토르타’는 멕시코식 샌드위치다. 살짝 질기면서도 고소하고 푹신한 빵 사이에 갖은 재료를 넣어 만든다.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입안에 매콤함과 새콤함이 번지면서 쫄깃한 식감이 난다. 정체는 ‘템페 초리조’였다. 템페는 콩을 발효해 만든 식재료로, 겉은 두부처럼 생겼으나 맛은 더 고소하다. 이 템페를 활용해 소시지처럼 만든 게 템페 초리조다. 토르타를 입에 넣고 씹을수록 궁금함이 커진다. 살짝 진한 크림 맛, 치즈 맛 같은 게 또 느껴진다. 앨리슨은 “캐슈너트에 마늘, 허브, 콩 등을 넣어서 크림처럼 만든 것이다”고 말했다.

‘버마 러브’의 찻잎 샐러드 `라페트'와 미얀마식 커리. 이정연 기자
다음은 미얀마(버마) 음식이다. 2015년에야 50년이 넘는 군부 독재 시대에서 벗어난 미얀마는 아직 미지의 세계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다소 익숙하다. 미얀마의 옛 이름 ‘버마’를 단 레스토랑이 여럿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미얀마의 독재 정권을 피해 이주해 온 난민들이 살아, 그 전통과 음식이 샌프란시스코에 스며들었다. 그라시아스 마드레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버마 러브’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민주화 뒤 국가자문 겸 외무장관을 맡은 아웅산 수치를 그린 그림이었다. 2015년 1월 문을 연 ‘버마 러브’는 1992년에 문을 연 버마 음식점 ‘버마 슈퍼스타’의 자매 식당이다.

‘버마 러브’의 내부 모습. 이정연 기자
버마 러브는 완전 채식 식당은 아니다. 그러나 메뉴에 있는 많은 음식을 완전 채식으로 주문할 수 있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음식 선정에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다. 점심 메뉴로 샐러드와 주요리를 더한 세트 메뉴가 있어서다. 미얀마 전통 음식 가운데 하나로, 발효 찻잎을 넣어 만든 전통 샐러드 라페트와 미얀마식 커리를 주문했다. 이 두 요리는 모두 완전 채식으로 주문할 수 있다. 커리에는 닭고기나 소고기를 넣을 수도 있지만 완전 채식 경험을 위해 ‘가지’를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라페트는 새콤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나서 놀랐다. 상추 등의 채소가 와삭 씹히는 사이에 고소한 견과류와 콩이 오독오독하고 씹혔다. 미얀마식 커리는 따뜻한 국물에 많이 짜지 않은 반투명의 수프 같았다.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는 제이미 홀먼은 “여름이 지나면 더 많이 찾게 되는 식당이다. 커리는 몸이 따뜻해지고, 찻잎 들어간 샐러드는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채식 중국 식당 ‘엔조이 베지테리언’. 이정연 기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의 중국 공동체는 크고, 강력하다. 샌프란시스코 인구 중 20% 이상이 중국계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시내 중심지에 차이나타운을 이루고 있는데, 이 거리를 지날 때면 영어보다 중국어가 더 크게 들린다.

한국에서 주로 찾게 되는 중식을 떠올려 보니, 채식과 중국 음식과의 연결이 쉽지 않다. 그러나 오산이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엔조이 베지테리안’은 중국계 미국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채식 식당이다. 그들은 “불교의 뿌리에서 영감을 얻는 다채롭고 풍성한 메뉴를 갖고 있다”고 소개한다. 메뉴에는 고기가 들어갈 법한 요리들이 많은데, 이는 모두 콩고기 등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 새콤한 산라탕과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에 견과류가 들어가는 궁보계정, 가지·줄기 콩 볶음과 볶음밥을 시켰다.

엔조이 베지테리언의 볶음밥. 이정연 기자
닭고기 대신 콩고기가 들어간 궁보계정의 맛은 조금 아쉬웠다. 미국에 현지화한 탓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맛이었고, 그래서 그만큼 중국 현지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온 볶음밥은 지금도 다시 떠오를 정도로 짭짤함과 고소함, 감칠맛이 제대로 어우러졌다. 고슬고슬하면서도 윤기를 잃지 않은 쌀밥에 사이사이 잘게 잘라 넣은 콩고기가 동시에 씹힐 때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글·사진 샌프란시스코(미국)/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채식

고기를 먹지 않거나 가급적 멀리하는 식생활. 음식의 섭취 범위에 따라 대략 이렇게 나뉜다. ▲플렉시테리언(주로 채식을 하되 유동적으로 육식을 함)▲폴로(포유류는 먹지 않고 조류는 먹음)▲페스코(포유류·조류를 먹지 않고 해산물은 먹음)▲락토오보(육류·해산물을 먹지 않고 우유·달걀은 먹음)▲비건(채소와 과일만 먹음)▲프루테리언(채소도 먹지 않고 과일과 견과류 같은 열매만 먹음)으로 나뉜다. ‘비덩주의’는 덩어리진 고기는 먹지 않되 육수로 우려낸 국물이나 양념은 먹는 채식으로, 국물음식이 발달한 한국에 많다. 최근에는 ‘로 푸드'(Raw food) 열풍이 불며 가공하거나 조리하지 않은 채소만 먹는 ‘생채식’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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