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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04 11:46 수정 : 2018.10.05 21:18

채식인이 즐기는 신선한 각종 채소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SC] 커버스토리 | 채식
동물복지·환경·건강 관심 커져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채식
전 세계 채식 인구 1억8천만여명에 달해
한국도 꾸준히 느는 추세
채식영화제도 열려…내년엔 박람회도

채식인이 즐기는 신선한 각종 채소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채소를 그냥 끓이는 게 아니라 구워서 끓이면 훨씬 더 깊은 맛이 나요. 처음엔 센 불로 굽다가 김이 올라오면 약한 불로 줄인 뒤, 채소가 노릇노릇해지면 물과 맑은 조선간장, 소금을 넣고 다시 끓여주세요.”

지난 9월18일, ‘샘표 우리 맛 클래스’에서 채소요리 강사로 나선 이홍란 연구원의 말에 수강생 12명의 눈빛이 반짝였다. 조리대 위에는 무와 배추, 양파, 버섯 등이 담긴 냄비가 끓고 있었다. 뭘 만드는 거냐고? 채수, 채소로 만든 밑국물. 그때까지 ‘채수’는 낯설기만 한 단어였다. 한식은 모름지기 국물 맛이건만, 채소로만 만든 국물이라니. 고기는커녕 멸치 한 마리 안 넣는 건 너무하지 않아?

웬걸, 너무하지 않았다. 완성된 채소 전골을 한입 뜨는 순간,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 이 맛이야!”

돌이켜보면 그랬다. 채수보다는 육수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로 식탁은 고기 중심이었다. 고깃국물로 맛을 낸 평양냉면이나 김치찌개는 말할 것도 없고, 칼국수나 잔치국수도 멸치육수가 기본이었다. 3년간 ‘페스코 채식’(해산물을 먹는 채식)을 한 적은 있었으나, 삼겹살과 설렁탕이 일상인 직장 문화에서 자구책을 찾지 못한 이후로 고기는 다시 주요 식단이 되었다. 평일이면 순댓국을, 주말이면 ‘치맥(치킨+맥주)’을 즐겼다.

고윤정(21)씨도 예전에는 “고기의 품질을 따져 먹을 정도로” 고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고기와 해산물은 물론 우유·달걀 등 동물성 식품도 일절 먹지 않는 ‘비건(완전 채식)’ 식단을 고수한다. 교육 및 여성운동을 하는 그에게 채식은 “일상에서 동물권과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길이자 소수자와 약자의 차별에 반대하는 방식”이다. “다른 차별 문제와 같은 화두를 던지게 됐어요. 기득권으로서 인간이 동물에 대해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특권, 무지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지난달 19일에는 서울 망원동 한 비건 식당에서 유기견 문제를 다룬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같이 읽는 세미나도 열었다. “저 하나 고기 안 먹는다고 세상이 바뀌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육류소비량이 43㎏인데, 10년이면 430㎏, 딱 소 1마리 무게죠. 이걸 다른 사람과 함께하면 소 1마리 이상을 살릴 수 있고, 달걀이나 우유까지 먹지 않으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어요.” 실제로 비건 채식을 하면 매일 쌀을 약 20㎏, 물을 약 2785ℓ 아낄 수 있고, 숲을 약 915㎠살릴 수 있다. 사육장의 소나 돼지가 먹는 곡식과 물이, 그 곡식을 재배하려고 잘려나가는 숲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채수 만들기 등 각종 조리법을 가르쳐주는 연구소 ‘우리 맛 공간’. 이홍란 연구원이 채소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들뿐 아니라 건강이나 다이어트를 이유로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채식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채식연맹(IVU)에 따르면 전 세계 채식 인구는 약 1억8천만 명에 달하고,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육류를 대체할 ‘식물성 고기’의 시장규모가 오는 2020년 약 3조2600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채식 시장을 뜻하는 ‘베지노믹스(Vegenomics: 채소와 경제를 합친 신조어)’의 총 규모는 최근 3년 새 연간 50% 이상 성장해 2조원 대다.

한국은 어떨까. 9월29~30일 열린 ‘제1회 채식영화제’는 국내 최초 채식영화제라는 점에서 반가운 행사였다. 1300여명이 모여 <고기를 원한다면>, <잡식가족의 딜레마> 등 영화 관람 물론, 친환경 음식을 맛보고 공정무역 제품을 살 수 있는 ‘에코마켓’과 명상 및 드로잉 수업을 즐겼다. 2019년 1월에는 채식 박람회인 ‘서울 베지노믹스 페어-비건 페스타’가 열리는데, 이 역시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다. 국내 채식 인구는 150만명으로, 유동적으로 채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까지 합하면 1천만명 정도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채식

고기를 먹지 않거나 가급적 멀리하는 식생활. 음식의 섭취 범위에 따라 대략 이렇게 나뉜다. ▲플렉시테리언(주로 채식을 하되 유동적으로 육식을 함)▲폴로(포유류는 먹지 않고 조류는 먹음)▲페스코(포유류·조류를 먹지 않고 해산물은 먹음)▲락토오보(육류·해산물을 먹지 않고 우유·달걀은 먹음)▲비건(채소와 과일만 먹음)▲프루테리언(채소도 먹지 않고 과일과 견과류 같은 열매만 먹음)으로 나뉜다. ‘비덩주의’는 덩어리진 고기는 먹지 않되 육수로 우려낸 국물이나 양념은 먹는 채식으로, 국물음식이 발달한 한국에 많다. 최근에는 ‘로 푸드'(Raw food) 열풍이 불며 가공하거나 조리하지 않은 채소만 먹는 ‘생채식’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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