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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2 20:22 수정 : 2018.09.12 22:25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식당 ‘플레이팜’. 지난 3일 외국인 요리사의 한식 취향을 공유하는 소셜다이닝이 진행됐다. 사진 이향아 15스튜디오 실장.

커버스토리┃퇴근 후 놀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식당 ‘플레이팜’. 지난 3일 외국인 요리사의 한식 취향을 공유하는 소셜다이닝이 진행됐다. 사진 이향아 15스튜디오 실장.

퇴근 후 집에 일찍 들어가기는 허전하다. 밖에서 저녁을 먹자니 혼자는 왠지 외롭다. 자주 보는 친구들을 또 만나기도 부담스럽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 낯선 이들과 특별한 저녁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지난 3일 저녁 7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식당 ‘플레이팜’. 20~40대 직장인 5명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외국인도 섞여 있었다. 오늘 다들 처음 본 사이다.

“돼지고기 수육과 3년 묵은 고추장이에요. 곁들어 먹어 보세요.” 캐나다인 요리사 더스틴 버사가 준비한 요리를 영어와 한국어로 설명했다. 겉으로 보면 외국인 요리사가 차려준 한식을 먹는 소셜 다이닝이다. 그러나 버사는 한식 전문 요리사는 아니다. 자신이 8년 간 한국에 머물면서 좋아하게 된 한식을 직접 만들어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날 참여한 직장인 이규진(27)씨는 “단순히 타인과 저녁 한 끼 먹으며 시간을 보내려는 게 목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버사가 만든 한식은 그저 버사의 취향일 뿐이다. 낯선 이의 취향을 경험하려고 모인 것이다.

‘남의 집 마그넷’ 모임. 사진 김성용 제공

이씨처럼 타인의 취향을 체험하려는 이들이 최근 늘었다. 실제로 일일체험 플랫폼 ‘밋업’, ‘프립’ 등에서는 낯선 이의 집을 방문해 같이 저녁을 먹는 프로그램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집을 보면 집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소통 플랫폼 ‘남의 집 프로젝트’ 운영자 김성용(36)씨는 지난해 1월부터 ‘고수 음식 마니아’, ‘마그넷 수집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마니아’ 등 다양한 취향을 가진 이들의 집을 방문하는 ‘남의 집 프로젝트’를 개설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17일엔 여행하면서 마그넷을 수집한 박혜진씨 집이 공개됐다. 마그넷을 매개로 여행 추억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지난 7월7일엔 고수를 좋아하는 최은희씨 집에서 고수가 들어간 음식을 여러 사람이 나눠 먹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등의 표지를 디자인한 북 디자이너 정지현씨 집 방문은 유독 인기가 많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표지 디자인까지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디자인조차 그의 허락이 있어야 출간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정씨가 하루키와 쌓은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다. 술술 에피소드를 풀어놓자 정씨 집을 찾은 이들이 환호했다 한다.

‘남의 집 슬램덩크’ 모임. 사진 김성용 제공

한마디로 집주인의 취향을 나누는 ‘거실 여행’ 서비스인 셈이다. ‘남의 집 프로젝트’는 에어비앤비와 유사하다. 자신의 집을 공개하려는 이들과 낯선 집을 체험해보고 싶은 이들을 이어준다. 지난 2년간 개방한 집이 60곳이다. 이용자만 390여명이나 된다. 15일엔 그동안 집을 공개한 호스트 50명과 조촐한 개업식도 한다. 김씨는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가 아니라 타인의 집을 통해 그 사람의 취향을 배우는 서비스라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이들처럼 낯선 이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하다면 그 사람의 집을 찾는 것도 방법이지만 역시 기본은 ‘대화’를 하는 거다. 진솔한 대화 속에 배움이 싹 튼다. 그러나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에 가도 타인과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군중 속에 고독을 느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늘 문이 열려 있는 곳에서 언제든지 편하게 타인과 대화할 수 있는 곳은 없을까. 그렇다면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문화 살롱 ‘취향관’에 가보자.

‘남의 집 영화관’ 모임. 사진 김성용 제공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타인의 집에 사람들이 모여 영감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힌트를 얻어 취향관을 만들었다는 박영훈(32) 대표는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시작부터 ‘회원제 사교 클럽’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대화하려면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보이겠다’는 합의를 해야 한다. 회원이 되고 나면 3개월간 이곳을 자유롭게 찾아 우연히 만난 또 다른 회원과 대화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이곳에서 대화할 때만큼은 직업이나 소득, 외모로 상대방을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 오직 대화에만 집중한다”고 강조한다.

취향관에서는 정기적으로 예술가 등 전문가를 초청하는 행사도 한다. 박 대표는 “강의나 세미나처럼 대화, 토론을 강요하는 문화가 아니라 수평적인 대화가 이어지는 장이다. 제대로 된 살롱 문화가 정착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놀이

인간으로서의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의지적인 활동이다. 따라서 막연한 휴식은 놀이가 아니다. 일정한 육체적·정신적인 활동을 통해 정서적 공감과 정신적 만족감이 전제돼야 한다.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저녁의 삶이 보장되면서 요즘은 ’심야 놀이’가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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