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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06 13:40 수정 : 2018.09.06 13:52

2015년 9월 개봉한 코믹 탐정 영화 <탐정:더 비기닝>의 한 장면. 주인공 노태수(성동일·사진 왼쪽)와 강대만(권상우). <한겨레> 자료 사진

커버스토리 : 탐정
추리소설 작가 곽재식이 알려주는 한국형 탐정
“부동산 탐정·선거 탐정 등 9가지일 듯"

2015년 9월 개봉한 코믹 탐정 영화 <탐정:더 비기닝>의 한 장면. 주인공 노태수(성동일·사진 왼쪽)와 강대만(권상우). <한겨레> 자료 사진
어느 나라 탐정 소설이건, 탐정이 일상적으로 맡는 의뢰 중 인기가 높은 것은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주는 일이다. 고양이 이야기라면 일단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추리 소설 독자 중에도 얼마든지 있으므로, 고양이와 추리 소설이 있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고양이 탐정 이야기가 늘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특히 더 많이 등장할 탐정 이야기 아홉 가지를 상상해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중에서 골라 본 것이므로, 독자께서는 이 소재들로 자유롭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기를 바란다.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첫 번째로 생각해 본 것은 단연 부동산 탐정이다. 한국인은 일평생 모든 재산을 대체로 집이나 땅에 쏟아붓는다. 집값이나 땅값은 어느 날 저녁 정치인이 별생각 없이 몇 마디 계획을 발표하면 하루아침에 뒤집혀 출렁인다. 그렇다 보니 투기꾼이 한탕 돈을 벌고자 뛰어들기에 이만큼 안성맞춤인 분야도 없다. 이 때문에 부동산 판은 항상 뜬소문과 헛소문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믿음직한 탐정이 부동산에 관한 소문의 진위를 조사해 줄 수 있다면 주택 구매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판의 수요자는 최대한 남이 모르게 조사한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동산 정보 조사는 사립탐정이 하기 좋은 일이다. “정치인 누가 어디 어디 개발 계획은 원안대로 추진한다고 외치지만, 사실은 선거만 끝나면 뒤집을 계획이라고 한다” 같은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여기에 소위 ‘알박기’나 ‘먹튀’ 같은 다양한 부동산 투자의 왜곡이 추가되면,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동은 자주 일어날 것이므로 좋은 탐정 소설이 될 것이다.

비슷한 측면에서 다음으로 생각해 본 것(두 번째)은 선거 탐정이다. 과거 한국의 선거에선 한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나름대로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이보다 세속적인 흑심을 품은 이가 판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정치인들은 상대 후보의 흠결이나 부모와 혈족에 대한 단점을 찾아내어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았다. 부실한 경쟁과 부실한 후보라는 두 가지 문제는 철컥철컥 아귀가 딱 들어맞았다. 그런 이일수록 탐정을 고용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선거판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승부를 거는 선거판에서 좋은 정책 실현을 위한 목적이든 아니든, 나쁜 의도이든 아니든, 조사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이는 필요하다. ‘선거 탐정’이 그 역할을 할 확률이 높다.

세 번째는 인터넷에 개인의 사생활이나 헛소문을 유포한 사람을 찾아 주는 탐정이다. 전혀 사실이 아닌 허황된 소문이 인터넷에 걷잡을 수 없이 유포되어 큰 해를 입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며, 개인의 내밀한 삶이 인터넷 회선 너머의 장난 소재가 돼 존엄과 명예가 손상되는 일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공권력의 조치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사람들이 다급함을 느끼는 현장에서 공권력의 조치가 부족하다면, 사립탐정이 끼어드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벌어질 것이다. 사설 조직이 유포자를 찾아내고 유포를 막거나 유포자를 처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야기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네 번째는 학교 폭력 전담 탐정이다. 아직도 학교에서 친구에게 두들겨 맞을까 두려워 떨고 있는 아이가 있다. 입시 제도를 이렇게 바꾸거나 저렇게 바꾸거나 하는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교육 당국이 정작 학생의 삶을 뿌리부터 파괴하는 학교 폭력에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학교 폭력위원회는 전문성은 부족하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폭력사건을 조사하거나 폭력을 막는 탐정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는 이야기를 나는 상상해 본다.

<탐정:리턴즈> 포스터. <한겨레> 자료 사진
다섯 번째는 이주민 전담 탐정이다. 한국에 정착하는 이주민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당국은 더 많은 지원 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주민 중에 약자가 정작 심각한 피해를 봤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제도와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언어와 문화의 장벽 때문에 제대로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주민을 위해 활동하는 탐정이 일할 기회는 충분하다. 현재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이민자 숫자를 고려하면, 중국계 경찰이나 베트남계 검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섯 번째는 실종 배우자를 찾는 탐정이다. 예로부터 실종된 가족을 찾는 사립 탐정 소설이 많았다. 결혼해서 한국에 온 이주민 배우자가 갑자기 실종된 이야기는 그 조사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드러낸다.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살펴보고 고민을 나누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일곱 번째는 실종 노인을 찾는 탐정이다. 빠르게 증가하는 한국의 노인 인구를 고려한다면, 갑자기 사라진 노인을 찾아 가족의 품에 인도하거나 희미해진 기억력 때문에 자신의 집을 못 찾는 노인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이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탐정 이야기에 어울리는 소재다. ‘효의 나라’라지만 노인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와 사회가 오히려 관심이 적다. 탐정이 나설 수 있는 배경으로 충분하다.

여덟 번째는 휴대전화 탐정이다. 온갖 개인 정보와 비밀이 들어 있는 고가의 기계 장치가 있는데, 그것이 작아서 들고 다니다가 잃어버리기가 쉽다니. 휴대전화만큼 추리와 수사에 좋은 소재가 될 만한 물건도 드물다. 지금은 첨단 기술과 공식적인 정보망을 이용한 수사가 발전한 때다. 전문 장물아비와 휴대전화 불법 거래 조직을 속속 알고 있는 경험 많은 업자가 휴대전화를 잘 찾는다는 것도 한국 탐정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아홉 번째는 탐정을 위한 탐정이다. 실업 대책 없이 넋 놓고 있다가 갑자기 자영업자의 길에 들어서서 고생하는 이가 많은 지금이다. 실제 사업하는 사람보다는 사업을 지원하고, 도와주고, 관리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익을 보는 상황도 초래되고 있다. 탐정사무소를 차리는 자영업자들이 많이 생긴다면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외식업계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식당 창업자보다 창업을 돕는다고 나선 프랜차이즈 본점이 더 큰 수익을 남기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만약 한국에서 사립탐정 사업이 인기를 얻는다면, 사립탐정 학원이나 사립탐정 사무소를 차리는 데 도움을 주는 업자들이 큰 기회를 잡으리라 생각한다.

정부가 공약으로 탐정 산업진흥위원회, 탐정 산업 감독원, 대통령 직속 국가탐정산업윤리심의회 같은 기관을 만들겠다고 하면, 그곳에 인재가 몰릴 것이다. 그러면 훌륭한 한국의 탐정 이야기가 완성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곽재식(에스에프·추리소설 작가)

탐정 (detective.探偵)

국어사전의 탐정은 드러나지 않은 사정을 몰래 살펴 알아냄,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직 우리나라 법은 탐정업을 허용하지 않는다. 2000년도 초반부터 탐정을 대신하여 민간조사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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