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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31 09:35 수정 : 2018.08.31 10:47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인간 대 인공지능 간의 스타크래프트 대결. 이스포츠 강국인 한국은 인공지능과의 실험도 진행 중이다. 호주, 노르웨이 로봇도 이 대결에 참가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커버스토리 / E스포츠

가상공간에서 치열한 승부, E-스포츠
한국이 종주국···임요환·이상혁 등 배출
독특한 피시방 문화 네트워크 인프라 등이 이유
외국 게이머들 한국 피시방 전지훈련 예사
최근 중국 급성장, 한국에 도전 중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인간 대 인공지능 간의 스타크래프트 대결. 이스포츠 강국인 한국은 인공지능과의 실험도 진행 중이다. 호주, 노르웨이 로봇도 이 대결에 참가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신문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수도 있겠지만, ‘국뽕’ 이라는 말은 이제 신조어라기보다는 익숙한 범주에 들어가는 단어이기도 하다.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한국팀의 선전이 펼쳐지면 한국 관객들은 차오르는 흥분감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주모~!!!”를 외치며 국뽕 한 사발씩을 들이키기 시작한다. 배제와 차별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적당한 엔도르핀으로서의 ‘국뽕’이 갖는 의미는 나름 생활의 활력소이기도 하다.

기왕의 ‘국뽕’ 이라면 한국이 강세를 드러내는 종목이 어울릴 것이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2002년을 기점으로 대폭발을 일으켰던 축구는 아쉽게도 세계 무대에서 강국이라 불릴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야구나 농구도 그 인기에 비해서는 절대적 ‘국뽕’을 일으킬 레벨은 아니다. 압도적 강세 종목이라면 역시 양궁을 꼽을 텐데, 양궁은 또 그 성과만큼의 보편적 인기는 담보되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 전 국민적으로 퍼져 있고 국제 무대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함에도 의외로 대한민국 대표종목으로 쉽게 꼽히지 않는, 숨겨진 종목이 하나 있다.

바로 이스포츠((E-Sports·일렉트로닉 스포츠)다. 컴퓨터 게임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승부는 가상의 공간이기에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는 현장감을 만들어내곤 한다. 20세기에는 에스에프(SF)에서나 볼 법하던, 사이버상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볼거리의 향연은 21세기에 정말 현실로 다가와 버렸다. 그리고 그 새로운 스포츠의 정상을 논할 때 한국의 위상이란 마치 축구의 브라질이나 농구의 미국만큼이나 압도적인 지위를 자랑한다. 적어도 ‘국뽕’을 논하는 상황에서라면, 이스포츠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현재 한국의 위상이다.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하고 있는 게이머들. 2007년 풍경. <한겨레> 자료 사진

이스포츠계의 최강자, 대한민국

이스포츠는 게임의 종류가 무한정인 만큼 리그와 대회 또한 수없이 많은 장르지만, 적어도 세계적 주류를 이루는 인기 종목들에서 한국은 이스포츠 종주국의 위상을 드러내는 중이다. 공전의 히트작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사실상 세계 1부 리그가 한국 리그였다. 수많은 외국 게이머들은 마치 축구 팬들이 이엘피(EPL.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라리가(최상위 스페인 프로 축구 리그)를 챙겨보는 것 마냥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챙겨보곤 했다. 한국 선수들이 사용한 전략이 곧 세계 표준이 되던 시대였다.

‘스타크래프트’ 이후 최대 게임리그 자리를 꿰찬 ‘리그 오브 레전드’ 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강한 존재다. 게임사는 북미, 유럽, 아시아 등 지역 시드를 배정하고 지역 최강자를 초청해 전 세계 결승전을 치르는데, 한국은 아시아 소속이 아니라 아예 별도로 ‘케이알(KR)’ 지역을 부여받을 정도로 압도적이며, ‘롤드컵’ 이라 불리는 세계 대회에서 한국은 2013년 이래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은 무적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발군의 성적을 보이며 세계 최강이 된 한국 이스포츠는 가히 ‘국뽕’의 중심을 자처하며 성장하는 중이며, 그 위상은 보다 대중적인 영역을 향하기 시작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이스포츠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됨에 따라 최초로 지상파에서 이스포츠 결승전을 생중계했다. 게임을 직접 하지 않는 사람들도 아시안게임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한국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사이버 ‘국뽕’의 매력에 빠질 기회가 열렸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세계 최대의 게이밍 ‘유스 팜’, 피시방

인구 규모로만 봤을 때 한국 이스포츠의 위상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왜 한국인은 게임을 잘할까? 자칫 이상한 연구들이 ‘김치를 먹으면 게임을 잘한다’, ‘젓가락을 쓰는 민족이 게임에 능하다’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 비결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한국 특유의 문화, 피시(PC)방이다.

비싸 봐야 2000원을 넘지 않는 저렴한 이용 요금으로 한국 놀이 문화에서 압도적인 가성비를 자랑하는 피시방이 전국 도처에 널리 보급된 한국의 게임 환경은 마땅히 다른 놀거리가 보장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수많은 청소년의 몇 안 되는 오락거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말 그대로 두터운 ‘유스 팜(Youth Farm)’ 형성에 기여한 것이다.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발달한 네트워크 인프라와 놀이 문화에 대한 보편적 투자가 없는 환경 속에, 몰려든 수많은 청소년 중에서 뽑힌 최상위급 게이머들은 게임단의 투자와 트레이닝으로 세계적인 플레이어로 거듭날 수 있었다.

‘스타리그’ 에서 전설의 별이 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머 ‘박서’ 임요환, 그리고 그의 뒤를 이으며 미국인들로부터 ‘게임계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평가마저 받아내며 <이에스피엔>(ESPN. 미국의 스포츠 전문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메인을 박찬호, 박지성보다 먼저 차지한 ‘페이커’ 이상혁까지 이어지는 한국 이스포츠 플레이어들의 빛나는 업적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만큼이나 두터운 한국의 게이밍 인프라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세계 최고의 게이머를 두고 ‘임요환 대 페이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어쨌든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와 함께 이스포츠도 어느새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역사성까지도 드러내는 논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재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한국의 게이밍 환경 또한 세계 곳곳에서 궁금해하고, 또 동경하는 환경임도 부인할 수 없다. 해외 게이머들이 전지훈련 차 한국 피시방에 방문해 한국 게이머들과 겨뤄볼 정도로 세계 최상의 수준에 이른 한국 게이밍 환경은 네트워크 시대 한국의 브랜드에 ‘게임 강국’이라는 새로운 특성을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후광을 내뿜는 무언가가 되었다.

2001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크래프트II 리그’ 결승전. <한겨레> 자료 사진

21세기 새 시대의 사이버 ‘국뽕’을 만끽해 보자

최근 인구빨(?)로 급성장하는 중국 이스포츠계의 도전에 한국이 무엇으로 응수할 것인가가 관건이 될 ‘2018 아시안게임’에서 이스포츠는 여러모로 새 시대의 관전형 스포츠로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인다. 간혹 이스포츠가 무슨 스포츠냐며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축구관람 또한 시청자가 직접 칼로리를 태우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관전형 스포츠로서 이스포츠의 의미는 이미 차고도 넘치는 조건을 확보한 것만은 분명하다.

기왕에 치맥(치킨+맥주)과 함께 ‘국뽕’을 즐기는 스포츠 관람이라면 이미 세계 정상에 도달해 있는 종목을 새롭게 받아들이며 아드레날린 폭발의 기쁨을 느껴보는 것도 새로운 여가의 장을 열어 주는 일일 것이다. 가상공간이기에 더욱더 짜릿하고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만끽할 수 있는 이스포츠에 첫발을 들이기에 이번 아시안게임의 이스포츠 시범 종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스포츠 피시(PC)게임으로 상대와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 경기와 관중이 있는 스포츠의 면모를 갖춰가게 된 것은 1990년대 스타크래프트가 크게 유행하면서부터다. 신체의 움직임에 기반을 둔 스포츠가 아니어서 ‘E스포츠가 과연 스포츠인가’ 하는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시범 종목으로 선정됐다. 한국 프로게이머들은 E스포츠의 다양한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리그 오브 레전드에선 한국 국가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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