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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30 10:15 수정 : 2018.08.30 11:15

지난 21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e스포츠 한국대표팀 출정식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이상혁 선수. 이정연 기자

커버스토리 │ E스포츠 세계 최강 수준 이상혁 선수
아시안게임 은메달…화려한 기술 선보여
"이스포츠에 대한 인식 바꾸고 싶다"
아재 개그도 선수급인 유쾌한 청년

지난 21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e스포츠 한국대표팀 출정식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이상혁 선수. 이정연 기자
‘세최미(세계 최고 미드라이너)’, ‘마왕’. 이스포츠(E-Sports·일렉트로닉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으로 그의 이름이 떠오를 것이다. ‘페이커’(Faker)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이자 이스포츠 프로팀 `에스케이(SK)텔레콤 T1’에서 미드라이너(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할 때 게임 내 공간에서 가운데에 위치하는 포지션)를 맡고 있는 이상혁 선수다. 그는 세계적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최고 선수로 꼽힌다. 이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도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이상혁 등 한국 국가대표팀은 29일 열린 중국팀과의 결승에서 아쉽게 져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저력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아시안게임 출전에 앞서,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있었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시범 종목 이스포츠 국가대표 출정식에서 이상혁 선수를 만났다.

“언젠가 명상을 해보고 싶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세계에서 이상혁(22) 선수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2012년 고등학생 때 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처음으로 했던 그는 1년 만에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하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세계 순위 1위에 올랐던 2012년 당시 그는 ‘고전파’란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그의 뛰어난 실력이 소문이 나면서 '에스케이텔레콤 T1'은 2013년 그를 영입했다. 이후 그는 ‘페이커’로 닉네임을 바꾸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이름이 날개를 달아 준 것일까, 지금까지 승승장구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리오넬 메시, 마이클 조던이 그의 별명이다.

게임 속 공간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그가 ‘명상’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는 의아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의 장점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평정심’이다. 이상혁 선수는 “경기 중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한다. 평소에도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경기에서도 이런 그의 장점은 도드라졌다.

하지만 그의 이런 평정심은 기실 하루 12시간 이상 연습에 몰입하는 성실성에 기인한 것이다. 대회에 나가면 하루 15시간 게임에 몰입한다고 한다. 여자친구도 사귈 시간이 없다는 그다.

의자에 사인을 하고 있는 이상혁 선수. 이정연 기자
이토록 차분한 그이지만,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출정식에서는 달랐다. 살짝 흥분해 있었다. 가슴에 단 태극마크 때문이리라.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쏟아지는 질문에 차분하게 답하던 그는 ‘이스포츠에 대한 인식 개선’을 강조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배울 게 많을 것”이라며 “좋은 성적까지 거둔다면 이스포츠가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가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다. “학부모도 아시안게임을 챙겨볼 것이다. 이를 통해서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자녀에 대한 시선이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출정식엔 이 선수의 부친도 있었다. 이 선수를 바라보는 부친의 표정은 흡사 팬의 눈빛과 비슷했다. 대견함을 넘어 국가대표가 된 아들의 모습에 감격스러워했다. 부친의 눈에는 살짝 눈물마저 비쳤다. 이 선수는 효자다. 2015년엔 4가족이 사는 집을 좀 더 넓은 집으로 옮기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용돈도 20여만원, 타 쓴다. 수십억원 연봉인 프로 선수 치곤 소박하다. 이 선수는 부친을 보면서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제가 국가대표 경기복을 입은 사진으로 해놓으셨더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날 기자들은 경기에 대한 다짐만큼이나 색다른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알려진 그는 선수가 된 후로는 ‘이상혁표 아재 개그’, 앞구르기 퍼포먼스 등을 펼치는 재밌고 위트 넘치는 청년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아이유가 뭐 하는 아이유?’, ‘왜 우리가 이상한지 알아? 치약이 없어서 이가 상하지’ 같은 아재 개그는 이미 팬들 사이에서 기도문처럼 암송되고 있다. 앞구르기는 2015년 독일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입장식에서 “즉흥적으로” 한 퍼포먼스다.

“아시안게임에서도 앞구르기를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그때(2015년) 이후로 심적인 여유가 없고, 경기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기에 퍼포먼스는 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했다.

그는 최근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된 6부작 다큐멘터리 <에스케이티(SKT) T1:더 체이스>에 등장했다. ‘에스케이텔레콤 T1’팀의 비시즌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프로 게이머들의 노력과 패배의 쓴잔을 치유하는 내용을 다뤘다. 그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얘기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스포츠 심리 상담을 받는 와중에 나온 장면이었다.

이상혁 선수가 팬과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다. 이정연 기자
비단 경기만이 스트레스일까?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 중퇴는 그가 제아무리 세계 최강이라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표찰이다. 대학에 갈 생각은 안 했을까? 과거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프로 게이머가 되면서 제 또래보다 공부가 뒤처졌다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지금은 이 생활에 충실하려고 한다. 이미 난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큰 아쉬움은 없는데, 그래도 대학교에서 공부하면 어떨지는 궁금하다”고 했다. 서면 인터뷰에서 “독서가 취미”라고 한 그는 가장 최근 읽은 책을 꼽으라고 하자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했다. 2년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뇌 과학 공부를 종종 해보고 싶다고 했다. 스물두살 청년의 10년 뒤가 궁금해진다.

기자간담회가 끝나자 그는 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 어린이 팬은 직접 그린 응원 카드를 가져와 이 선수에게 건넸다. 그는 무릎을 굽혀 어린이 팬과 나란히 서 사진을 찍으면서 활짝 웃었다. 차분함과 냉정함 뒤에 엉뚱함과 따스함이 살짝 내비치는 순간이었다.

‘리오넬 메시’, ‘마이클 조던’ 같은 인물과 동급에서 찬사를 받는 그다. 팬들은 그들처럼 오랫동안 최고 선수로 활약해주길 바란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진짜 금메달을 놓고 이스포츠 경기가 열린다. 정식 종목이 된 이스포츠에서 금메달을 따보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다. “프로게이머의 수명은 짧다. 4년 뒤에 어떤 플레이를 하고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페이커, 그는 역시 냉정했다.

정민석 교육 연수생,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스포츠

피시(PC)게임으로 상대와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 경기와 관중이 있는 스포츠의 면모를 갖춰가게 된 것은 1990년대 스타크래프트가 크게 유행하면서부터다. 신체의 움직임에 기반을 둔 스포츠가 아니어서 ‘E스포츠가 과연 스포츠인가’ 하는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시범 종목으로 선정됐다. 한국 프로게이머들은 E스포츠의 다양한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에선 한국 국가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냈다.

[ESC] 조금은 ‘색다른’ 이스포츠(E-Sports) 규칙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본선을 앞두고 한국 이스포츠(E-Sports. 일렉트로닉 스포츠) 국가대표팀은 다른 정식 종목들과 마찬가지로 금지 약물 검사를 받았다. 국제 스포츠로서 위상을 갖춰가는 셈이다. 이스포츠는 체력이 승패를 가르는 축구나 40여분 내내 뛰는 농구와 다르다. 한 자리에 앉아 현란하게 키보드들 두드리는 작동이 신체 활동의 다인 이스포츠는 이런 이유로 규칙도 일반 스포츠와 다르다.

축구나 농구는 경기 내내 감독이나 코치가 소리치거나 독특한 제스처로 작전을 지시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스포츠는 경기가 시작되면 코치가 선수 주변에 있을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상대 팀 상황을 알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또 선수들은 대형 화면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경기 상황이나 상대 선수의 플레이를 보는 게 금지되어 있다. 경기가 시작되면 오로지 승패는 선수만의 몫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화면 갈무리

경기 중에 모욕적인 메시지를 상대 선수에게 보낸다거나 소리를 치는 등의 행동도 경고 대상이다. 경고는 주심, 부심이 한다. 종목의 특성 상 부심이 4~5명이 되기도 한다. 기록원도 경기 임원에 속한다.

전자 환경의 오류나 선수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주심은 경기 중단을 명령할 수 있다. 경기가 일시중단 되면 같은 팀 선수들이라도 게임의 공정성을 위해 서로 의사소통할 수 없다. 다만 중단된 사유를 확인하고 지시가 떨어졌을 때만 선수들은 심판과 의사소통은 할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2’. 화면 갈무리

경기용 피시(PC)에 설치된 프로그램 외에 보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거나, 헤드폰을 제외한 보조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 사항이다. 하지만 키보드나 마우스와 같은 게임 장비들은 자신의 것을 지참할 수 있다. 본인에게 익숙한 장비가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아시안게임 본선 경기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와 ‘스타크래프트2’는 경기 제한시간이 없다. 상대편의 진영을 다 파괴하거나 상대 선수가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게임은 지속된다. 종목에 따라 제한시간이 있는 것도 있다. 클래시 로얄과 페스(PES) 2018 등이 해당된다.

정민석 교육연수생

정민석 교육 연수생,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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