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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2 09:19 수정 : 2018.08.02 16:24

우주에서 라면을 먹을 때는 빨아서 먹어야 한다. 사진 박미향 기자

[커버스토리] 우주
국내 유일 우주라면 ‘우주신라면’
우주인 이소연 박사 맛 칭찬
직접 시식해 보니 염도 강해
특수한 환경 고려 제작한 맛
전 세계적으로 330가지 우주식 개발돼

우주에서 라면을 먹을 때는 빨아서 먹어야 한다. 사진 박미향 기자
우주에서도 사람이 산다. 그들도 먹고 자고 싼다. 우주에서의 체류 기록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겐다니 파달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우주에서 머문 사람이다. 5차례 국제우주정거장에서의 임무를 수행하며 2년이 넘는 879일을 우주에서 보냈다. 내가 우주인으로 살아야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결 과제는 ‘식생활’이다. 그래서 먹어봤다. 우주에 갔던 라면, 우주신라면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한국식 만찬을 했다. 라면, 김치, 고추장 인기가 좋았다.… 귀환할 때 좀 남으면 러시아 우주인에게 선물하고 가려고 한다.” 10년 전인 2008년 4월8일 한국인 최초로 우주에 간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정말 남겨두고 왔을까? 그는 우주에 다녀온 지 10년을 맞아 열린 한 강연에서 그 뒷이야기를 밝혔다. “우주에서는 멀미가 심하다. 그래서 모든 음식이 맛이 없다. 그런데 라면은 맛있었다. 우주정거장에 있던 우주인이 남겨 달라고 해서 가져갔던 라면 10개 중에 9개는 두고 왔다.”

이 정도 되니 정말 궁금해진다. 우주에 갔던 라면. 그 실체를 확인하기는 정말 어렵다. 2008년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탄생 이벤트가 거의 전 국가적으로 시행됐다. 각종 연구원과 식품기업이 손을 잡고 우주로 보낼 우주식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 중 하나가 2007년 8월 농심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손잡고 개발 완료한 ‘우주신라면’이다. 라면업체가 개발에 나선 것은 이해가 가지만 원자력연구원은 생뚱맞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주신라면은 방사선멸균기술을 활용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 우주신라면은 다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지 사진 몇 장을 통해 그 겉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부피와 무게를 줄인 우주라면. 사진 박미향 기자
‘우주에 간 라면’을 맛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 지난 7월20일 ESC가 농심에 ‘우주신라면’ 제작을 의뢰했다. 열흘 뒤인 31일 우주신라면이 드디어 도착했다. 총 중량은 50g에 불과하다. 우주에 가져갈 때 최대한 부피와 무게를 줄여야 하므로 용량을 줄였고, 납작하게 진공 포장을 했다. 겉모습만 감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시식을 해보기로 했다.

우주에서는 물을 펄펄 끓일 수 없다. 공기압이 지구보다 낮아 끓는점도 낮다. 물의 최고 온도는 70도에 불과하다. 또 무중력 상태에서 액체는 공간에 둥둥 떠다니기 때문에 냄비에 담아 먹을 수도 없다. 특수 제작한 진공 비닐 용기에 우주신라면이 담긴 이유다. 우주에서 먹는 라면은 비빔면이라고 보면 된다. 포장지의 가장 윗부분을 자르고, 수프가 버무려진 건조된 면에 좁은 관으로 70도의 물을 약 45㎖ 주입한 뒤 10분 동안 불려 먹는다. 지상에서의 시식 때는 일반 주전자를 활용했다.

우주라면은 70도의 물을 넣어 10분간 두면 비빔면처럼 된다. 사진 박미향 기자
10분이라니! 면이 너무 불어버리지 않을까? 조리를 마친 우주신라면의 겉모습을 봐서는 많이 불지 않았다. 우주에서는 라면이 든 특수 용기에 입을 대고 빨아들이며 먹지만, 지상에서의 시식은 그릇에 놓고 먹어봤다. 입술이 살짝 얼얼해지려는 찰나, “어? 맛있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린 시절 읽은 과학만화의 영향으로 생긴 ‘우주식은 괴식’일 거라는 선입견이 단번에 깨졌다. 한국식품연구원 가공식품연구단 김성수 책임연구원은 “무중력 상태, 비좁은 공간, 스트레스가 심한 심리 상태 등의 영향을 받아 우주인들은 더 짜고 자극적인 맛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우주 공간에서 미각에 변화가 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농심 쪽도 “우주 공간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극도로 저하된 입맛을 살릴 수 있도록 기존 신라면에 기반을 둔 매운맛을 이용하고, 영양을 고려해 고단백 소재를 적용해 비빔면으로 만들었다. 또 식욕촉진의 소재로 발효 조미 원료를 적용해 우주신라면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국물이 적고 일반 신라면보다 약 10% 더 짠 우주신라면. 사진 박미향 기자
우주신라면은 예상했던 대로 자극적인 맛이었다. ‘면’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건더기 수프도 꽤 먹음직했다. 함께 시식한 음식전문기자 박미향 ESC팀장은 “수프를 두 개 정도 넣은 강한 풍미가 느껴진다. 면은 10분이 지나서 먹었는데도 불지 않고 잘 삶아진 파스타 같다”고 말했다. ‘수프가 2개 든 것 같은 맛’은 높은 염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농심 관계자는 “우주신라면의 염도는 일반 신라면보다 약 10% 높다”고 말했다. ’잘 불지 않는 면’에도 비법이 있다. 면에 구멍을 많이 만들어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의 물에 오래 두더라도 복원이 쉽게 되도록 만들었다는 게 농심 쪽의 설명이다.

2008년 이소연 박사가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렀을 때 함께 실어 간 우주식품들. 사진 한국식품연구원 제공
2008년 당시 우주신라면만 우주에 갔던 것은 아니다. 된장국, 김치통조림 등 10여 가지 한국 ‘출신’ 우주식이 우주로 갔다. 지상에서의 우주 체류 실험에도 공급된 바 있다. 2009년 러시아연방우주청의 요청으로 러시아에서 주관하는 520일간의 유인화성탐사 모의시험(프로젝트 마스 500) 때는 잡채, 불고기, 비빔밥 등 10여 가지의 한식 기반 우주식을 메뉴에 반영해 평가받기도 했다. 우주식 개발에 참여한 김성수 책임연구원은 “우주식의 목표는 개발 초기인 1960년대에는 생명 유지와 연명이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부피, 무게, 안전성 등만을 고려해 만들었다. 맛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우주식 트렌드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까지 개발된 우주식만 330가지가 넘는다. 이제 우주에서도 음식을 통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우주에서 각 나라의 전통 식품 경쟁이 된다. 특히 최근 우주 기술의 개발에 아주 적극적인 중국은 중국 전통 식품을 우주 식품화해서 실용화 단계까지 나아갔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우주: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끝없는 공간의 총체. 올 여름 밤하늘, 별들의 잔치가 이어진다. 8월 밤하늘에는 별똥별이 우수수 떨어지고, 크고 밝은 화성도 볼 수 있다. 맑은 날 빛 공해가 적은 교외로 나가면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를 만날 수 있다. 닿을 수 없어 한없이 낭만적인 우주. 이제 인간은 우주여행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낭만도, 환상도 깨질지 모르지만, 우주를 향한 탐사선에 몸을 실어 화성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깊어만 간다. 한낮의 열풍에 갇힌 인간은 우주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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