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11 20:06
수정 : 2018.07.11 20:33
|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프리바아워의 성수점. 사진 프리바아워 제공
|
[ESC] 커버스토리 옥상
|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프리바아워의 성수점. 사진 프리바아워 제공
|
‘옥상 왕’. 독특한 옥상 공유 서비스를 선보여 화제가 된 ‘프리바아워’ 양병우(38) 대표의 별명이다. 4년 전부터 그는 서울, 부산 등지에 있는 사용하지 않는 옥상만을 골라 새롭게 꾸민 뒤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일을 해왔다. 방을 빌려주는 숙박공유업체인 에어비앤비의 옥상 버전인 셈이다. 양 대표는 “단순히 옥상을 빌려주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도심 캠핑, 한복 파티 등 특별한 옥상 행사를 기획해온 게 에어비앤비와 다른 점”이라고 강조한다. 4년 전부터 650회 이상 옥상 행사를 진행했다. 그가 바꾼 옥상을 방문한 누적 방문객만도 약 2만5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시로부터 공유기업으로 선정돼 ’시민이 참여하는 옥상행사’도 진행했다.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한 건물의 옥상에서 양 대표를 만났다. 왜 그가 옥상에 꽂혔는지 궁금했다. 5층까지 계단을 올라 붉은 쪽문을 열자 탁 트인 푸른 하늘이 먼저 눈에 들어 왔다.
- 옥상 공유 서비스라는 말이 생소한데?
“옥상은 도심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고개만 들어도 하늘과 산이 보인다. 건물 위 공원인 셈이다. 이런 곳이 방치되는 게 안타까웠다. 낡은 옥상을 발굴한 다음 잘 꾸며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싶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에어비엔비처럼 프리바아워 누리집이나 앱에서 이용 가능한 옥상을 찾아 예약하면 되는데, 이용료는 옥상마다 다르다. 이때 이용료는 옥상 주인과 적정한 비율로 나눈다.”
옥상 파티는 대략 1만~1만5000원의 입장료를 내면 참가할 수 있고, 옥상 전체를 대관할 때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저녁일 때 대략 시간당 4만~8만원이라고 한다.
- 구체적으로 옥상 주인과 어떻게 나뉘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직접 투자한 직영점은 수익의 15%를 건물주에게 준다. 건물주가 투자하고 우리가 운영하는 ‘위탁운영’은 수익의 50~60%를 건물주에게 지급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옥상에 어울리는 인테리어와 행사를 잘 꾸리는 게 중요하다."
인터뷰가 진행된 장소는 몇 년 전 폐업한 한 방직공장의 버려진 옥상이었다. 2015년 그의 손을 거친 후 캠핑장 콘셉트의 문화 공간 ’프리바아워 성수동 옥상’으로 변신했다. 한동안 파리만 날렸던 옥상이 이제는 근처 회사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불판에 고기를 구우며 회식을 즐기는 명소로 거듭났다고 한다.
-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퇴사 후 러시아로 오토바이 여행을 떠났다. 해외에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끼리 밤에는 창고를 빌려 파티도 하고 잠도 자더라. 우리도 이렇게 공간을 공유하는 문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국 후 부동산을 뒤져봤는데 대부분 월세가 비쌌다. 2014년 발품을 팔아 성수동의 값싼 옥상 공간을 찾았다. 옥상이 대부분 방치되어 있더라. ‘버려진 공간을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그때 나왔다. 좁은 계단을 올라 옥상에 발을 디뎠을 때 청량한 가을바람이 볼에 닿았다. 이거다 싶었다."
그는 복지가 좋은 한 골프용품 판매업체에서 일했다. 안정적인 회사였지만 일상은 지루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본래 창업에도 관심이 컸는데 세계 오토바이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이다.
- 어려운 일은 없었나?
"자연이 좋아 옥상을 택했지만 그 자연 때문에 힘들었다. 비와 추위는 막을 수 있어도 바람은 결코 막을 수 없었다. 한번은 여름 장마 때 태풍의 영향으로 옥상의 대형 천막이 날아갔던 적이 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정말 식은땀이 나더라. 그때부터 기상청 앱을 통해 날씨를 수시로 확인한다."
- 기획한 옥상 행사마다 성공했는데, 비결이 있나?
“지역 분위기와 어울리는 행사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지난해 서울 신촌에 있는 옥상에서는 소개팅 파티를 열었다. 신촌은 대학교들이 모여 있는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청춘’ 이미지가 강하다. 서울 삼청동의 한 옥상에서는 한복 파티를 열었다. 한옥촌이 근처에 있는 데다 주변에 한복 대여점도 많다. 당시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참여해 열기가 뜨거웠다.”
지난해 5월 그는 경복궁이 보이는 한 옥상에서 한복 파티를 진행했다. 달을 닮은 둥그런 한지 조명들이 걸려 있고 국악이 흘러나왔다. 이날 준비된 음식은 김치전과 막걸리였다. 한복을 입은 이들이 모여 달 구경을 하며 막걸리 한잔 하는 조촐한 행사였다. 양 대표는 “옥상을 좀 더 한국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만든 행사”라고 했다.
현재 그는 옥상에서 즐기는 독서, 요가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짝 유행이 아니라 전 연령대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옥상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그의 목표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옥상
현대식 양옥 건물에서 마당처럼 편평하게 만든 지붕 위를 뜻한다. 그동안 옥상은 물탱크나 잡다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여 졌다가 최근 그 위상이 달라졌다. ’옥상 웨딩’ ’옥상 족구’ ’옥상 파티’ 등 연관 검색어도 수두룩하게 생길 정도다. 특히 20~30세대의 문화 집결지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에서 다양한 옥상 문화를 경험한 이들이 늘면서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옥상을 문화적으로 소비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