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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05 10:11 수정 : 2018.07.05 10:25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ESC] 커버스토리 / 반찬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는 쓴잔을 마셨지만 지난번 우승국인 독일을 이겨 자존심을 회복했다. 축구 팬들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열광했다. 한국인이 축구만큼 사랑하는 먹을거리가 반찬이다. 수십 가지가 넘는 반찬. 그 반찬을 월드컵 경기에 빗대어 맛을 비교 분석해봤다. 반찬 월드컵에서 당신이 고른 반찬 중 어느 것이 우승컵을 차지하게 될까?

현대 밥상에서 중앙 찌개 필드를 휘젓는 숟가락 플레이는 1인 밥상과 편의점 도시락의 성장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원하는 반찬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젓가락 결정력이 그날 식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대표 반찬 32가지를 모았다. 당신의 밥상에 오를 4강 반찬, 그리고 ‘최애(가장 사랑)’ 반찬을 골라보자.


조별리그 전력 분석

A조 마늘종볶음, 양념게장, 미역줄기볶음, 가지나물

고깃집 반찬 리그의 최정상에 있는 양념게장은 수월하게 16강 진출을 내다본다. 사람마다 좋고 싫음이 크게 갈리는 가지나물은 A조의 변수다. 재료의 잠재력은 충분하나 흐물흐물한 플레이와 칙칙한 팀 컬러가 약점으로 지적되는 가지나물은 튀김이나 구이로 전술 변화를 꾀할 경우 나물의 정체성을 잃을 우려가 있다. 상대적으로 취향을 덜 타는 미역줄기볶음과 마늘종볶음 간의 접전이 예상되나, 연장전으로 간다면 쉽게 상하는 미역줄기보다 마늘종볶음이 우세할 것으로 점쳐진다.


B조 달걀말이, 콩나물무침, 멸치볶음, 깻잎김치

뚝배기냐 프라이팬이냐를 두고 감독 인선에 어려움을 겪던 달걀은 “식어도 맛있다”는 반찬가게 주인의 의견을 수렴해 찜 대신 달걀말이로 출전했다. 한때 도시락 리그를 제패하던 영광을 되찾을지가 주목된다. 한편, 찬스 때마다 집요한 밀착 마크로 두 장씩 딸려 올라오는 깻잎김치는 독특한 전술로 밥 점유율이 높다. 꽈리고추를 영입해 전력을 보강한 멸치볶음은 꽈리고추가 공격에 가담하면서 멸치와 함께 득점과 어시스트를 주고받는다. 콩나물무침 역시 고기가 구워질 때 적극적으로 불판에 올라 추가 주문을 끌어낸다.


C조 오징어채무침, 오징어젓갈, 시금치나물, 메추리알조림

연고지가 같거나 라이벌 팀 간의 경기를 ‘더비 매치’라고 한다. 이번 대회는 오정어채무침과 오징어젓갈이 같은 C조에 편성되어 ‘오징어 더비’가 성사됐다. 건어물 대 젓갈. 가공방식을 두고 우열을 다투는 오징어 반찬 간의 대결이 볼 만하다. 시금치나물은 습하고 더운 여름철이면 쉽게 상한다는 약점이 있으나, 경기 전 바로 무치면 해볼 만하다는 평가다. 한편, 장조림에서 독립해 단독 반찬으로 출전한 메추리알조림이 어떤 성적을 낼지도 관심거리다.


D조 소시지달걀부침, 애호박볶음, 오이지무침, 꼬막무침

정겨운 반찬이 포진한 D조에서 유력한 16강 진출 후보는 소시지달걀부침이다. 소시지만의 전력도 상위로 치지만 달걀 옷을 입은 소시지는 추억까지 더해져 한층 맛있게 느껴진다. 최근 꼬막비빔밥이 인기를 끌며 순위가 상승한 꼬막무침, 새우젓으로 간한 애호박볶음, 입맛 없는 여름에 물 말은 밥을 만나 활약하는 오이지무침은 무리한 전술 변화 없이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본선까지 올라왔다.


E조 김, 간장게장, 연근조림, 도토리묵

필드 위의 모든 반찬이 압박하는 한정식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는 간장게장은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다. 짜면서도 짜지 않은 신묘한 맛으로 입안을 돌파할 때, 팬들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경의를 표한다. 갈색 반찬이 모인 E조 2위 싸움도 볼거리다. 들기름 특훈을 받아 한층 바삭해진 김, 쫀득함과 아삭함의 절묘한 균형을 이룬 연근조림, 이들 사이에서 양념장에만 의존한 안일한 플레이를 펼치는 도토리묵이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F조 감자채볶음, 느타리버섯볶음, 콩자반, 볶음김치

도시락에서 급식으로 이어지는 세대교체에 무리 없이 성공한 감자채볶음과 볶음김치가 F조의 강자로 꼽힌다. 편의점 도시락 리그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는 두 팀에 비교해 고질적인 딱딱함을 극복하지 못한 콩자반이 ‘단짠(단맛+짠맛)’의 장점을 살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장신의 감자채볶음과 견주면 집어 올리기 힘든 콩자반은 공중 젓가락 다툼에서도 불리하다. 최근 새송이버섯 등으로 팀을 재건 중인 버섯볶음은 이번 대회에 관록 있는 느타리버섯이 주축이 되어 출전했다.


G조 잡채, 어묵볶음, 양파장아찌, 고사리나물

주전 멤버 고기가 원가 문제로 빠졌고 여름 시즌 시금치의 출전이 불투명해지는 등 악재가 겹쳤는데도 잡채는 여전히 강팀이다. 메인 요리들이 경쟁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했던 당면이 고향 팀인 잡채로 돌아와 팀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상대 팀에 따라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유연하게 팀 컬러를 교체하는 어묵볶음도 잡채의 전력 누수를 기회로 삼아 조 1위를 노리는 상황. 제사 등 이벤트 경기에 자주 오르나 성적을 내지 못하던 고사리나물과 ‘건강에 좋다’는 전력을 내세우는 양파장아찌는 16강으로 가는 길이 험난하다.


H조 제육볶음, 마요네즈샐러드, 장조림, 파김치

살코기와 비계가 적절히 섞인 뛰어난 덩치의 돼지앞다리는 스타 삼겹살에 가려 몸값이 저평가돼 왔다. 돼지앞다리가 고추장 양념을 만나 최전성기를 맞은 제육볶음 역시 유력한 우승 후보다. 한편 가장 피하고 싶은 상대와 만나게 된 또 다른 고기반찬 장조림이 조 편성의 불운을 딛고 16강에 진출할지도 관심을 끈다. 간이 센 반찬들이 포진한 H조가 마요네즈샐러드에게는 호재다. 경기 초반이나 불판 교체 타이밍에 적극적으로 찬스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번 상에 깔리면 좀처럼 일어날 줄 모르는 파김치는 무기력을 탈피하는 것이 숙제다.

약팀으로 평가되던 팀이 전통의 강호를 누르고 16강에 진출하기도 하는 월드컵대회처럼,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소박한 반찬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16강이나 8강 신화를 쓸 수 있다. 이변의 주인공이 어떤 반찬이 될지 궁금하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반찬

밥과 함께 먹는 부식을 일컫는 말이다. 식단을 짜는 가사 노동자의 고민거리였던 반찬은 손이 많이 가고 낭비가 심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한식의 본령은 반찬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6일 방송을 시작한 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은 화려한 일품요리에 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반찬의 가치를 다시 보게 한다. 반찬을 만드는 배우 김수미의 손맛을 극찬하면서도 이를 엄마만의 일이나 재연 불가능한 영역에 두지 않고 눈대중, 손대중을 계량화해 전수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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