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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04 20:51 수정 : 2018.07.04 21:02

빙체리와 레이니어체리(사진 오른쪽).

전세계 체리 70% 생산하는 미 북서부
빙하수·큰 일교차 등 천혜의 조건
노란 체리가 빨간 체리보다 더 고급
파이·셰이크·소스 등 다양하게 활용

빙체리와 레이니어체리(사진 오른쪽).
미국산 체리는 최근 들어 국내에서 사랑받는 대표적인 수입 과일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자료를 보면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미국산 체리 수입액은 꾸준히 늘어 대략 385.2% 급증했다. 지난해 이마트가 실시한 판매 과일 매출 신장률 조사에서도 체리(8.5%)는 딸기(21.2%), 바나나(9.0%)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체리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걸까? 그 매력을 찾기 위해 전 세계 체리의 70%를 생산하는 미국 북서부 일대를 지난달 6일간 일정으로 방문했다.

지난달 1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주 야키마에서 체리 생산업체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고 꼽히는 ‘도멕스 슈퍼프레시 그로어스’가 운영하는 한 체리농장에 도착했다. 오전 7시30분. 이른 시간이었지만 농장 직원 20명이 분주히 체리를 따고 있었다. “새벽 4시부터 나와서 체리를 따기 시작했다”고 한 직원이 말했다. 일교차가 큰 이 지역은 정오 무렵이면 불볕더위가 밀려온다. 그런 이유로 새벽 4~5시부터 오전 11시까지 체리 수확 작업을 한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따는 체리는 ‘워싱턴 체리’라고 불린다.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수확한다.

이 농장의 대표 프레드 로페스는 “우리 농장은 6월12일부터 ‘빙(bing)체리’를 수확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빙체리는 체리 중에서 과실이 단단하고 과즙이 풍부하며 익었을 때 적갈색 빛이 나는 체리 품종이다. 현재 한국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것이다. 씹으면 살짝 시큼한 맛이 껍질 사이로 묵직한 단맛과 함께 터져 나오는 게 특징이다.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두어닝크 체리농장.
끝없이 펼쳐지는 청록색의 체리 농장지대를 좇다 지평선에 시선이 닿으면 순백의 만년설로 뒤덮인 레이니어산의 웅장함이 눈에 들어온다. 체리 재배 시 땅의 조건은 습한 게 좋다고 한다. 레이니어산에서 농장지대로 흘러나오는 풍부한 빙하수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체리 성장에 도움되는 기름진 화산재 토양이기도 하다. 특히 당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기상 조건인 큰 일교차가 연중 내내 유지되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워싱턴주에서 체리농장이 가장 많이 밀집된 야키마의 낮 기온은 35도인데 반해 밤은 17도로, 일교차가 무려 18도다. 체리 재배를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는 미국 워싱턴주의 체리농장지대는 이렇듯 거대한 자연 속에서 붉은 열매를 잉태하고 있었다.

미국북서부체리협회 박선민 이사는 “현재 미국에서 체리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은 미국 북서부지역 5개 주(워싱턴, 오리건, 아이다호, 유타, 몬태나)”라며 “전 세계 체리 생산량의 70%(약 240만톤)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지역 체리는 미국에서도 당도가 높아 과일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린다”고 덧붙였다.

수확은 보물단지 다루듯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체리 표면에 작은 흠집이라도 나면 금방 무르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한다. 로페스는 “체리를 아래로 잡아당기지 말고 올려 따야 내년에도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체리 알마다 차례대로 익기 때문에 추가적인 관리도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수확하기 3~4일 전부터는 체리나무 밑에 은박지를 까는데, 햇볕을 반사시켜 덜 익은 체리도 최대한 익게 하기 위해서란다. 줄기마다 체리 2~3알이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은 마치 이슬처럼 아름답다.

워싱턴주 야키마의 한 ’체리 세척-포장’ 공장.

체리는 당도에 따라 가격 차가 난다. 로페스는 “과거엔 체리나무를 키워 듬성듬성 심었다면 최근에는 작게 개량해 일렬로 촘촘히 심는 추세”라고 말했다. 키 작은 체리나무에서 자라는 체리의 당도가 더 높다고 한다. 옛날식으로 운영되는 체리 농장에는 약 3966㎡(1200평)당 131그루가 자라지만, 개량된 체리나무를 심은 농장은 1030그루를 보유하고 있다. 나무 높이가 낮아 수확할 때도 안전하다. 일꾼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수확한 체리는 인근의 ‘체리 세척-포장’ 공장으로 보내져 당일 오후 1~2시까지 물 세척과 분류 포장을 마친다. 상자에 포장된 체리는 곧바로 수출국으로 항공 배송된다. 오늘 딴 ‘워싱턴 체리’를 12시간 이내에 서울에서 먹을 수 있단 얘기다.

물 세척을 마친 체리들은 당일 상자 포장돼 항공 배송된다.

체리는 재배 역사가 긴 과일이다. 미국북서부체리협회 자료를 보면 신석기 시대부터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에서 재배되기 시작해 선사시대에 이르러 유럽에 전파됐다. 고고학자들이 유럽의 동굴과 아메리카 대륙의 절벽에서 체리 씨를 발견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미국에는 1600년대 초반 유럽 이주민들에 의해 보급됐는데 현재 그 종류만 해도 1000종이 넘는다. 가장 널리 보급된 품종은 빙체리다. 미 북서부지역에서 체리농장을 운영하던 헨더슨 루엘링이 1875년 개발한 품종으로, 그의 중국인 일꾼의 이름 ‘빙’에서 따왔다고 한다. 빙체리는 레이니어체리와 함께 미국 북서부체리 생산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 품종이다.

레이니어체리는 최근 국내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 일명 ‘노란’체리다. 단맛의 빙체리와 새콤한 맛의 밴체리를 교배시켜 탄생된 레이니어체리는 껍질이 노란색이어서 ’덜 익은 체리가 아니냐’는 오해도 받지만, 실상은 일반 체리보다 당도가 30% 이상 높은 고급 체리다. 가격도 빙체리보다 30% 비싸다. 카로티노이드(광합성을 돕는 식물 색소)라는 성분 때문에 껍질이 노랗다고 한다. 빙체리가 묵직한 단맛이라면 레이니어는 좀 더 청량한 단맛이다. 체리 생산업체 도멕스 슈퍼프레시 그로어스의 마케팅 담당자 캐서린 스튜어트는 "레이니어체리 인기가 점점 높아져, 물량을 구하기 어렵다"며 웃었다.

체리 생산업으로 유명한 야키마에서 체리는 어떤 의미일까. 스튜어트는 “한국에 김치가 있듯이 이 지역에선 체리가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집집마다 체리파이를 굽거나 우유와 바닐라아이스크림을 체리와 함께 믹서에 갈아 만드는 체리 셰이크를 해먹는 건 흔한 일이다. 남미 출신 주민은 체리 살사소스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부드럽고 상큼한 체리 디저트.

체리도 품종별로 즐기면 그 맛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다. 얼린 빙체리는 여름철 별미다. 설탕에 조려 채소 샐러드와 같이 먹어도 빙체리 특유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이어 그는 "레이니어체리는 칵테일에 얹혀 먹으면 단맛이 더욱 살아난다"며 "하지만 빙체리보다 비싼 만큼 웬만하면 생으로 먹는 게 좋다"고 권했다.

지난달 20일 저녁 체리 요리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 시애틀에 있는 식당 ‘블루리본’을 찾았다. 지역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비정기적으로 체리 요리수업이 진행되는 식당이다. 이날은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정보기술(IT)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직원들이 체리 요리법을 배우고 있었다. 블루리본의 대표 요리사인 앤서니 코소바는 “이 지역에서 체리는 가장 흔한 과일이다. 그만큼 요리법이 다양하고, 이를 배우려는 지역주민들도 많다”고 말했다. 특히 연어, 돼지고기 스테이크 등에 뿌려 먹을 수 있는 체리 소스를 배우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팬에 올리브유와 꿀을 넣고 끓으면 체리를 넣는다. 몇 분 후 발사믹 식초를 넣고 1분간 더 끓이면 완성된다.

가장 맛있는 체리를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표면에 주름이 없는 탱탱한 체리를 골라라.” 코소바가 말하는 팁이다. 실제로 체리는 알이 단단하고 탱탱하며 광택이 날수록 싱싱하고 맛있다고 한다.

워싱턴주에 있는 두어닝크 체리농장에서는 최근 새로운 체리 품종을 개발 중이다. 농장 대표 짐 두어닝크는 “밴체리를 개량하는 중”이라며 말랑한 질감의 체리 한 알을 건넸다. 단맛이 매우 강했다. 그러나 껍질이 단단하지 않아 품질이 떨어져 체리 캔을 만들 때만 사용한다고 한다.

영화 <체리향기>의 주인공 바그헤리는 삶을 포기하기 직전에 체리를 맛보고 생의 기쁨을 발견한다. 자살을 결심하고 체리나무에 밧줄을 걸다 우연히 손에 닿은 체리 한 알. 입안에 넣고 톡 깨무니 시큰한 맛의 달큼한 과즙이 터져 나온다. 몇 알을 더 맛보는 사이 어느새 산등성이에 태양이 떠오르고 청록의 잎사귀 사이마다 붉은 체리 알들이 반짝거린다. 순간 그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초여름이 시작되던 지난 6월 끝자락, 그 행복의 열매를 미국 워싱턴주에서 발견한 듯하다.

야키마(미국 워싱턴주)/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미국북서부체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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