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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28 10:32 수정 : 2018.06.28 10:56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 서킷 위를 달리고 있는 이정연 기자. 케이티엠(KTM) 제공

[ESC] 커버스토리 모터바이크
이정연 기자의 KTM 레이스스쿨 체험기
25년 프로 모터바이크 스포츠 레이서의 지도
두려움과 긴장에 잔뜩 힘이 들어간 팔과손
시속 240㎞ 질주 뒤 터져 나온 웃음과 눈물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 서킷 위를 달리고 있는 이정연 기자. 케이티엠(KTM) 제공
모터바이크를 즐기는 방법은 라이더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스포츠 레이싱’이다. 모터스포츠(엔진·모터가 달린 것으로 하는 스포츠)는 일반도로가 아닌 전용 경기장에서 할 수 있다. 지난 5월 말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린 인제모토스피드페스타에서 체험 주행을 통해 경기장에서 모터바이크로 달리는 ‘맛’을 봐버렸다. 모터바이크에 (대부분) 후진 기어는 없다. 그렇다면 전진 또 전진. 모터바이크 브랜드 케이티엠(KTM)코리아가 6월6일부터 8일까지 레이스스쿨을 연다는 소식을 접하고 5월의 그 맛을 잊지 못해 7일 전남 영암의 코리아인터내셔널 서킷으로 갔다.

지난 7일 아침 8시30분. 포뮬러 원(F1) 경기가 열렸던 전남 영암의 코리아인터내서널 서킷에 들어섰다. 6월 초였지만 이날의 예보된 한낮 기온은 30도였다. 해가 높이 떠오르지 않았는데도 이상하리만치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기온 탓은 아니었다. 오늘 하루 내달릴 경기장을 바라보니 아드레날린 분비가 치솟아서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첫 번째 넘어야 할 산은 경기장이 아닌 강의실에서 만났다. 서킷 주행을 위해서는 별도의 라이선스(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경기장은 일반도로와 다른 신호 체계 아래 운영되기 때문에 서킷 라이선스를 따는 것은 필수다. 정말 따기 어렵다는 2종소형 운전면허(배기량 125cc 이상의 이륜차를 타기 위해 필요한 면허)가 있다고 해도 필수적으로 따야 한다. 오전 8시40분부터 이뤄진 실내 강의는 1시간가량 이어졌다. 경기장은 대부분 깃발을 이용해 상황을 전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확한 교육이 필요하다.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모터바이크의 배기음에 엉덩이가 들썩거렸지만, 꼭 붙이고 앉아 들어야 했다. 간단한 필기시험을 치른 뒤에는 신호 체계를 확실히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경기장 내 실기 시험을 치렀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서면 될 줄 알았는데 웬걸,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나댄다.

이정연 기자.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아마 경기장에서 꼭 갖춰야 할 안전 장비를 모두 착용해 더 흥분됐는지 모른다. 서킷에서는 헬멧과 레이싱 슈트와 부츠, 장갑, 척추보호대 등을 꼭 착용해야 한다. 레이싱 부츠나 슈트는 속도를 극대화해 한계 주행을 하는 스포츠 레이싱의 특성상 안전과 공기 역학 등을 고려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편하지만은 않다. 슈트를 모두 착용하면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가 나오기 마련이다. 소재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무겁다. 라이선스 실기 시험에 앞서 슈트를 입자마자 몸의 열기는 2배가 됐다. 이것은 흥분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레이싱 슈트를 입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실기 시험까지 무난하게 통과했다.

준비를 마친 뒤 본격적인 레이스스쿨 교육장에 들어섰다. 이 교육은 제러미 맥윌리엄스(Jeremy McWilliamse)의 지휘로 진행됐다. 그의 이력은 탄탄하고 또 화려하다. 모터바이크 스포츠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월드그랑프리(WGP), 모토지피(MOTOGP)의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지금도 경기에 나선다. 54살인데도 말이다. 지난 5월에도 ‘노스웨스트200’이라는 대회에 나가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레이스스쿨을 진행한 25년 경력의 모터바이크 레이싱 선수 제러미 맥윌리엄스. 케이티엠(KTM) 제공
그러니까 모터바이크 서킷 주행은 처음인 학생과 세계적인 무대에서 25년 경력을 쌓은 선생님이 만난 것이다.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는 덧붙여 설명하기가 어렵다. 본격 교육을 앞두고 ‘나 같은 초보자는 선생님의 능력을 허비하게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교육을 시작한 뒤에는 그 생각이 쑥 들어갔다. 왜냐하면 익숙하지 않은 스포츠 레이스 관련 용어를 섞어가며 설명하는 제러미 맥윌리엄스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 데다, 서킷 주행 교육이 잡생각 할 새 없이 빽빽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날은 케이티엠의 듀크 390이라는 바이크로 교육을 받았다.

제러미 맥윌리엄스는 차근차근 서킷의 주행 시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줬다. “코너 구간에 라바콘(원뿔 모양의 장애물)을 뒀다. 에이펙스(apex)를 표시한 곳이다. 시선을 그곳에 두고 달리고, 그 지점에서 방향을 틀면 된다. 아주 단순하다. 처음이어도 할 수 있다.” 에이펙스는 본래 꼭짓점을 뜻하는 말인데, 모터스포츠에서는 도로의 안쪽 방향 전환을 하는 지점을 일컫는다. 제러미 맥윌리엄스 선생님을 따라 서킷에 들어섰다. 피트(모터바이크 등을 정비·수리하는 공간)에서 경기장으로 진입하자마자 연속 코너 구간이 나왔다. 코너에 들어서기 전 충분한 감속이 필요하다. 잔뜩 긴장해서는 어깨와 팔, 손에 힘을 잔뜩 준 채 감속을 했다. 계기판에 찍힌 숫자는 시속 30㎞. 과연 이 정도까지 줄이는 게 맞는 건가? 라고 생각하자마자 다음 코너가 다가왔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일단 생각하기를 그만두자. 따라가 보자!’ 제러미 맥윌리엄스는 서킷 위의 거북이나 다름없는 나를 뒤에 두고 달렸다. 그는 15분가량 이어진 첫 번째 세션 내내 목을 한껏 꺾어 뒤에 있는 초보 학생을 바라보며 달렸다. 그걸 보고는 멈춰뒀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초보자의 자격지심 같은 건 버려두자. 마지막 세션에 첫 번째 세션보다 나아지기만을 바라자.’

서킷 주행 교육이 끝나자 실내 교육장에서 바로 1 대 1 교육이 이어졌다. 첫 번째 세션 마지막 바퀴에는 제러미 맥윌리엄스의 앞에 섰다. 그가 탄 모터바이크 앞에 달린 카메라로 나의 주행 모습을 촬영했고, 그것을 함께 보며 주행 시 개선할 점과 개선 방법을 알려주는 식으로 교육이 이뤄졌다. “바이크 위에서는 몸을 유연하게 두어야 한다. 편안한 기분에서 벗어난, 가파른 기울기에 몸이 긴장하고 패닉이 될 것 같을 텐데, 지금 이 바이크를 믿어도 된다. 앞바퀴를 믿어라. 그리고 여기는 안전지대가 여기저기 있다.” 그는 내내 ‘믿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내내 깨닫지 못했다.

점심 뒤 오후 1시30분부터 일정을 이어갔다. 제러미 맥윌리엄스와 함께 달리는 두 번째 교육 시간이었다. 코너링 구간에 다가서니 오전에 달릴 때보다 몸을 더 기울이고 있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몸의 중심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때 앞서가며 나를 돌아보던 제러미 맥윌리엄스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어? 무슨 뜻이지? 설마 엄지를 든 건가? 왜? 속도를 늦추라는 뜻인가?‘ 서킷 내 교육이 끝나고서야 그의 뜻을 확인했다. “오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몸을 그렇게 움직이면 되는 거다!” 살짝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가 제안을 했다. “마지막 세션에는 내 뒤에 타봐라. 뒤에 앉아 달리면 시각적인 교육이 될 수 있다.” 세상에!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덥석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 후회가 덮쳐왔다. ‘도대체 속도를 얼마나 높일까? 그리고 코너링에서는 얼마나 바이크를 기울일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봐도, 앞으로 절대 없을 기회일 것만 같았다.

서킷을 달릴 때는 레이싱 슈트 등을 갖춰 입어야 한다. 케이티엠(KTM) 제공
오후 4시, 뜨거운 햇살은 잦아들었는데 열기는 가시지 않았다. 제러미 맥윌리엄스는 슈퍼듀크 1290을 꺼냈고, 그 뒤에 탔다. “감속을 할 때는 네가, 감싼 허리 앞에 있는 오일 탱크를 누르면 된다. 그러면 나와 심하게 부딪히지 않을 것이다.” 그의 설명에 자꾸 이어지는 물음표. ‘도대체 얼마나 가속, 감속을 하길래?’ 서킷에 들어서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직선 구간은 거의 180㎞로 달렸다. 그리고 들어선 코너에서는 거의 30㎞까지 속도를 줄였다. 감속하는 동안 오일 탱크를 밀어내느라 손에 쥐가 나고, 쇄골이 뻐근할 정도였다. 체감상 코너링 때 바이크와 몸은 거의 도로와 평행이다시피 했다. 몸이 도로에 닿는 줄 알았다. ‘어디까지 눕는 거야!’ 속으로만 외쳤다. 그러나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아마 전적으로 제러미 맥윌리엄스 실력과 모터바이크의 성능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 바퀴째 마지막 구간에서 그가 외쳐 물었다. “아 유 오케이?” “오케이!” 그리자 한 바퀴 더 달리겠다고 했다. 들어선 직선 구간에서 가속을 위해 스로틀을 계속 당겼다. 뒤에 앉았지만 공기 저항에 자꾸 몸 뒤로 밀리는 머리를 가누느라 바빴다. 당시 속도는 시속 240㎞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내가 지상의 이동수단으로 느껴본 가장 빠른 속도였다. 모터바이크에 내려서는 정신없이 웃었다. 그냥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마 다시는 가보지 못할 영역이라 느껴서일까? 완전히 다른 세계에 다녀온 느낌이여서일까?

그렇게 교육은 끝났다. 그리고 교육을 마친지 3주째, 꿈속에 펼쳐진 서킷에서 간혹 달린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영암/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모터바이크

두 바퀴에 엔진을 달아 움직이게 한 이동수단. 사륜차(자동차)보다 작고 연비도 좋지만, 도로 위에서는 무시·위협당하기 다반사다. 그러나 모터바이크 타기에 빠져든 사람들은 헤어 나오질 못함. 여행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도 하는 모터바이크. 모터바이크 웹툰 <로딩>, <100cc>를 그리고 쓴 이지우 작가는 모터바이크 문화 중 ‘모토캠핑’을 최고의 즐거움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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