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0 19:52
수정 : 2018.06.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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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기농배움터 곡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이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는 등 귀촌 경험을 하고 있다. 한겨레교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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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라이프 레시피│ 이기적인 은퇴
한겨레 우리농배움터의 귀농·귀촌 프로그램
곡성군이 지원하는 3개월짜리 과정
30대~60대까지 고른 연령대의 참가자들
“귀촌에 실질적인 조언 얻을 수 있어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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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기농배움터 곡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이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는 등 귀촌 경험을 하고 있다. 한겨레교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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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6시30분, 전남 곡성군 죽곡면 강빛마을 문화관. 창 안으로 쏟아지는 새벽빛이 단전호흡을 하기 위해 바닥에 몸을 뉜 귀촌 체험 참가자들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이슬이 걷힌 뒤 피어나는 풀 향기, 지저귀는 새소리, 안개구름 걸린 산 풍경도 스며들었다. 자연과 혼연일체가 돼 명상에 잠긴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게 힐링이지!’
귀촌을 꿈꾸는 은퇴도시인 10가구는 지난달 12일부터 ‘한겨레 우리농배움터’가 마련한 귀농·귀촌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이미 몇 년 전 귀촌해 사는 선배 귀촌인도 이 마을엔 30가구가 있다.
신록의 향연 속에서 강가를 산책하고 여유롭게 텃밭을 가꾸는 전원생활은 은퇴세대의 로망이다. 그러나 막연히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고 해서 성공적인 귀촌 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평생 살아온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한 귀농 생활의 실패담이 이미 쏟아진 지 오래다. 그런 면에서 먼저 귀촌 생활을 경험해보는 프로그램은 도움이 된다.
‘한겨레 우리농배움터 곡성’은 한겨레교육이 기획하고 곡성군이 지원하는 3개월 체험형 귀농·귀촌 프로그램이다. 귀농·귀촌 전담팀을 운영하는 곡성군은 예비 귀농·귀촌인에게 임시 거주지인 ‘귀농인의 집’을 제공하고 ‘선도농가 현장실습교육’ 등을 지원한다. 곡성군청 지역활성화 김영호(55) 과장은 지원 배경으로 “직접 귀촌 생활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과 귀농보단 귀촌에 초점을 맞춘 취지”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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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열린 강빛마을 축제. 한겨레교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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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이곳 강빛마을에서 산 예비 귀촌인들의 생활은 큰 변화가 있었을까?
30여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정태성(64)씨는 지난해 몸이 아프고 난 뒤 삶의 목표가 뚜렷해졌다. ‘오직 쉬자’는 것. 귀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그때였다. 그런 이유로 아내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정씨는 “아름다운 산과 강이 있어 경관이 좋고, 교통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아 만족한다”며 “현재에만 몰두할 수 있어 스트레스가 적은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정씨 부부는 ‘서울 토박이’지만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강빛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강빛중창단’에 객원 멤버로 참여해 지역 축제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귀촌에 성공한 선배들과의 만남도 즐거웠다. 정씨는 “실질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거주 마을인 강빛마을을 전남 일대의 탐색기지로 삼는 이들도 있다. 2년 전 은퇴한 이문엽(62)씨는 아직 인생 후반기를 보낼 귀촌 지역을 정하지 못했다. 막연히 도시의 때가 덜 탄 전라도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막상 콕 집어 ‘여기다’란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그가 사는 곳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 차로 최소 3~4시간인 전남 일대를 둘러보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그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전남 일대를 주말마다 다닐 생각에 벌써 흥이 난다고 말했다. “이곳은 베이스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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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열린 강빛마을 축제. 한겨레교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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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은 비단 은퇴세대만의 일은 아니다. 출판계에 몸담았던 문현경(32)씨는 얼마 전 사표를 내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미루고 미뤘던 전원생활을 직접 경험해보기 위해서였다. 문씨는 “가족이 함께 텃밭 일도 하고, 거기서 수확한 것으로 저녁을 먹는다”며 “한 달간 이렇게 사니 정말 행복하다”며 웃었다. “젊을 때는 돈이 없고, 나이 들어서는 시간이 없고, 돈과 시간이 다 있으면 젊음이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자급자족하며 가족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저희 목표예요.”
‘막상 도시인이 귀촌하면 할 게 없다.’ 귀촌 생활에 대한 선입견이다. 귀촌에 성공해 이미 수년째 이곳에 사는 귀촌인들은 이런 생각은 편견이라고 한다.
귀촌 생활 3년째 접어든 고광덕(66)씨는 오히려 생활 반경이 넓어졌다. 금융업 종사자였던 고씨는 ‘클래식 광’이다. 고씨는 “광주전남 가곡 부르기 모임과 강빛중창단도 창단해 2년째 마을사람과 취미 활동을 이어오고 있어 은퇴 전보다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주민들에게 국선도도 가르친다. 고씨는 “스스로 활동의 정도를 조절하면서 살 수 있는 게 귀촌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동현(50)씨는 13년 경력의 베테랑 귀촌인이다. ‘지역 활성화'를 주제로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다가 37살의 다소 이른 나이에 가족과 함께 곡성에 있는 한 폐교에서 귀촌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2월엔 이곳 강빛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이씨는 “아침 5시에 일어나 8시까지 농사를 짓고, 그 이후론 농업회사 대표로 일한다”며 “연구도, 강의도 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도 보내면서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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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열린 강빛마을 축제. 한겨레교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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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도 귀촌 생활에 즐거움을 더한다. 지난 9일 열린 강빛마을 축제도 그중 하나다. 올해 2회를 맞은 축제는 강빛마을을 주축으로 근처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다. 축제 당일 저녁, 우리농배움터 참가자들과 강빛마을 주민들과 죽곡초등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홀로 아리랑>을 불렀다. 사물놀이패의 장단에 맞춰 술래잡기하는 아이들, 소시지와 국수를 팔며 축제를 즐기는 학생들, 장기자랑에서 노래 실력을 뽐내는 주민들,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춤사위를 펼치는 이들까지, 축제는 북적거렸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어느 노래말처럼 강빛마을 사람들은 자연을 만끽하며 잘 익은 인생을 촘촘히 꾸려가고 있다. 귀촌으로 마치 젊음을 되찾은 것처럼 말이다.
귀촌·귀농, 직접 경험해 봐야
“직접 경험해봐야 압니다.” 성공적으로 귀촌 생활에 안착한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이동현씨가 귀촌했던 13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귀농·귀촌 교육이 드물었다. 이씨는 “막연하게 블로그와 카페 등의 글을 통해 간접 경험만으로 귀촌을 시도하다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체험 없이 이론으로 중무장한 채 귀촌을 시도하면 반드시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는 얘기다. 거주지 선정 등 외적인 선택을 마쳤더라도 지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고광덕씨도 “일단 와서 단 몇 개월이라도 체험해봐야 한다”며 체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느 지역사회나 집단 고유의 삶의 방식이 있다. 지역주민들의 삶에 녹아들기 위해선 그들의 생활 방식을 탐색하고 이해하는 작업이 필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를 통해 지자체별로 지원하는 체험형 귀농·귀촌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한겨레교육은 오는 9월 제2차 ‘한겨레 우리농배움터 곡성’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을 모집할 계획이다.
곡성/김서이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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