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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6 20:46 수정 : 2018.06.06 20:52

피엔차 중앙에 있는 사다리꼴 모양의 피오 2세 광장과 그 뒤에 위치한 피엔차 대성당(산타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ESC] 커버스토리┃경험여행

중세 이탈리아 흔적 고스란히 간직한 토스카나 눈길
도시 성곽 아래 초록색으로 펼쳐진 발도르차 매력적
관광객 많은 도시와 대비…‘힐링’·‘웰빙’ 장소로 각광
고대 에트루리아 문명 발상지로 유물·유적도 볼거리

피엔차 중앙에 있는 사다리꼴 모양의 피오 2세 광장과 그 뒤에 위치한 피엔차 대성당(산타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애초 쓸모없는 척박한 벌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간은 광활한 자연을 쓸모없이 내팽개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14~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인간 중심의 통치 이념을 반영한 아름다운 풍경을 갈망했고, 땅을 개발했다. 언덕 위의 요새처럼 자리잡은 성곽 도시 아래 펼쳐진 구릉지대 발도르차가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주요 관광지이자 자랑거리가 된 이유다. 관광지 엽서로 이미 익숙한 로마나 밀라노 따위와는 다른 생경한 풍경에 경외감마저 드는 이 지역은 색다른 여행 경험을 추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시골과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를 둘러보는 여행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지난달 8일부터 일주일간 이 도시들을 둘러봤다.

몬테풀차노, 시나룽가, 토리타 디 시에나, 트레콴다, 피엔차, 키안차노 테르메, 키우시, 사르테아노, 체토나, 산 카시아노 데이 바니등 10개 도시는 발도르차를 매개로 성장했다. 발도르차는 오르차와 키아니 강을 중심으로 길이 100km에 달할 정도로 넓은 지역이다. 푸르른 하늘과 광활하게 펼쳐진 사이프러스 나무 같은 자연과 중세 시대 도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점은 이 지역의 자랑거리다.

고흐, 피카소, 샤갈, 세잔이 반한 그곳

“피렌체가 아니라 시골마을을 둘러본다고?” 솔직히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 나폴리 같은 도시가 아니라 이름도 낯선 토스카나 시골 마을이라니! 출국 전부터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오는 두오모 성당을 보고 오겠노라 큰소리쳤던 것이 원망스러웠다. 구찌, 프라다, 돌체앤가바나 등 명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도심의 패션 흐름을 엿볼 기회도 물 건너갔다. 그나마 위안인 건 방문하게 될 도시들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차로 2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짧은 이동 시간이 마음을 놓이게 했다.

실망은 숙소가 있는 키안차노 테르메에서 하룻밤을 묵고 난 직후 흥분과 감탄으로 바뀌었다. 이른 새벽 호텔 밖으로 자욱하게 내려앉은 희뿌연 안개에 파묻혀 있는 중세풍 건축물의 고즈넉한 전경에 흠뻑 매료되고 말았다. 지명에 ‘온천’이란 뜻의 ‘테르메’가 들어 있는 키안차노 테르메는 물론 몬테풀차노, 사르테아노 등의 지역에는 온천이 많다. 한국 온천이 관광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면 이탈리아는 의사까지 상주하는 치료 개념으로 생성됐다. 이탈리아에서도 널리 알려진, 1960년대 개관한 ‘몬테풀차노 테르메&스파’만 해도 15명의 의사가 상주하며 피부, 관절, 부인과 질환 등의 치료를 담당한다.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며, 이용료 55유로(한화 6만8000원)로 언제든 이용이 가능하다.

구릉 위에 성곽 형태로 세워진 시골 도시들의 외곽으로 펼쳐진 발도르차.

도시 외곽으로 펼쳐진 발도르차는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발도르차가 더욱 특별한 의미와 영감으로 다가왔다. 예부터 고흐, 피카소, 샤갈, 세잔 등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이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는 생애 마지막 불꽃을 토스카나에서 태웠다고 전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구릉 사이로 늘씬한 자태를 뽐내는 사이프러스 나무 역시 장관 중의 하나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주인공 막시무스가 마지막에 자신의 집을 향하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토스카나 지역이 천혜의 자연환경과 온천에다 와인, 올리브유, 키아니나(흰소) 같은 먹거리가 더해져 ‘힐링’과 ‘웰빙’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각광받는 이유일 것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 길, 한적한 중세의 도시를 걷는 경험은 그 자체로 도심에서 짬을 내 즐기는 커피 한 잔처럼 짜릿함을 선사했다. 나를 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느끼는 해방과 자유를 만끽했다고 할까.

구릉 위 요새처럼 자리 잡은 중세 도시

이 지역 도시들의 건축물은 르네상스 양식을 고스란히 따랐다. 돔형 지붕과 아치형 벽을 떠받드는 기둥, 토스카나 로마네스크 건축법을 빌려서 잘 정리한 듯한 비율 등이 특징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의 시골 마을로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관광객들이 북적이지 않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천천히 도시를 음미하며 걷는 것만으로 휴식과 재충전 효과는 충분했다. 그뿐인가. 건축물 뒤에 숨어 있던 발도르차 언덕으로 눈을 돌리니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그간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싹 날아갔다.

이탈리아 유명 작곡가 치로 핀수티 출생지인 시나룽가의 한적한 골목 풍경.
10개 도시 중에서는 첫 방문지인 피엔차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 지역 출신인 교황 피오 2세가 건축가 베르나르도 로셀리노를 시켜 1459~62년 사이 건설한 도시다. 현재 원형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인구 800명에 불과하지만, 도시 설계부터 르네상스 인본주의 개념을 도입한 대표적인 도시다. 사다리꼴 모양의 중앙 광장인 피오 2세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피엔차 대성당(산타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교황 궁, 주교 궁, 시청사를 비롯한 궁전 등의 건물을 배치한 형태로 르네상스 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치와 경제, 종교 등의 건물의 동선을 고려해 사람들이 쾌적하고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돋보였다. 훗날 미켈란젤로가 피오 2세 광장에 영감을 얻어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을 사다리꼴로 설계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여행 기간 동안 하루 1~2개 도시를 차량으로 이동했다. 피엔차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른 도시들의 규모와 형태가 피엔차와 흡사해서다. 마을 입구의 커다란 돔 형태 출입문을 지나 펼쳐지는 도로와 중앙에 자리잡은 광장, 그 주변의 거대한 건축물과 그 사이로 보이는 발도르차 언덕까지 말이다.

목가적인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덕분이었을까. 이 지역 도시들은 <인생은 아름다워>, <레터스 투 줄리엣>, <트와일라잇>, <뉴문> 등 수많은 영화 속에 등장했다. 인구가 수백~수천명에 불과해 간혹 한적함을 넘어 적막감이 밀려올 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각 마을이 품고 있는 독특한 문화·종교·음식·음악 등의 개성과 매력을 엿보고, 차이점을 찾아가는 여정들이 새롭고 유익했다. 몬테풀차노에서는 7월 오페라 축제, 토리타 디 시에나에서는 3월, 5월, 6월에 ‘당나귀 달리기 대회’·북·재즈 페스티벌, 체토나에서는 5월 피치(파스타의 일종) 파스타 페스티벌을 관람하자. 사르테아노에는 옛 수도원을 개조한 산타 키아라 호텔에서 하룻밤을 경험할 것도 권하고 싶다. 트레콴다에는 외벽을 체크무늬로 꾸민 피에트로 안드레아 교회를, 시나룽가에서는 7개에 이르는 교회와 이탈리아 작곡가 치로 핀수티의 흔적을 모아놓은 치로 핀수티 극장을 둘러보길 바란다.

외벽을 체크무늬로 꾸며 이채로웠던 트레콴다의 피에트로 안드레아 교회.
이 지역 주민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와인이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와인의 대표 품종 가운데 하나인 산지오베제(산조베세)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몬테풀차노에서 맛과 품질을 자랑하는 ‘그라차노’ 등의 와이너리를 반드시 방문해 볼 필요가 있다. 와이너리마다 시음코스를 운영하는데, 10~20유로(한화로 약 1만2000~2만5000원) 안팎이면 와이너리 관광과 함께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귀족적이고 우아한 비노 노빌레 와인을 맛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 하겠다. 키안티 지역의 키안티 글라시코도 이 지역의 대표 와인이다.

에트루리아 문명의 발상지, 그 자부심

토스카나는 에트루리아 문명의 발상지다. 로마인은 이 지역 사람들을 투스키, 이들이 살던 지역을 투스키아라고 불렀다. 오늘날 토스카나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로마인보다 앞서 기원전 8~2세기까지 이탈리아 반도에 최초로 독자적인 문화를 남긴 에트루리아 문명은 불행히도 현재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리스, 로마 문명과 달리 그들이 사용했던 금석문자(金石文字)의 90% 이상이 해독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토스카나 지역에서 당시에 만들어졌던 토기 등의 유물과 무덤 등의 유적이 출토·발굴될 뿐이다. 도시마다 에트루리아 관련 유적과 유물을 잘 보존해 놓았는데, 그만큼 에트루리아 후손으로서 주민들의 자긍심은 매우 커보였다.

키우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스핑크스 모양의 에트루리아 유물.
아직은 미지로 남아 있는 에트루리아 문명을 접하고 싶다면 반드시 토스카나에 가야 한다. 특히 온천을 개발하며 발굴한 20개의 무덤을 재현한 물 박물관이 있는 키안차노 테르메, 선사시대 흔적을 찾고 싶다면 벨베데레 선사 유적 박물관이 있는 체토나, 벽화가 남아 있는 에트루리아식 무덤인 ‘콰드리가 인페르날레’가 있는 사르테아노, 18세기 저장고를 만들 목적으로 땅속을 파다 발견한 에트루리아인의 지하 도시로 꾸민 ‘지하도시 시립박물관’과 국립박물관이 있는 키우시를 반드시 둘러보길 바란다. 그리스, 로마 문명에 뒤지지 않는 문명국가를 이뤄놓고도 에트루리아 문명이 흔적 없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오만과 탐욕 때문이 아니었을까. 에트루리아인들의 발자취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어쩌면 느긋한 마음으로 느리게 사는 것이 바쁘게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더 값진 인생일지 모른다.

토스카나 지방 시에나 시골마을 여행 팁

가는 법-항공

인천국제공항에서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까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이탈리아 국적기인 알리탈리아항공이 주 4회 운항한다. 알리탈리아항공은 이탈리아 곳곳을 여행하는 데 매우 편리하다. 전 이탈리아에 실핏줄처럼 노선이 있다. 색다른 기내식과 고급 이탈리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여행객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다. 지난해까지 8년 연속 세계적인 비즈니스 여행 전문지 <글로벌 트래블러> 선정 ‘최고의 기내식상’을 수상했다. 이코노미석 요금의 20~30%만 더 내면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의 중간 등급인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이용할 수 있다. 좌석이 120도까지 기울어져 편안할 뿐 아니라 기내 와이파이도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알리탈리아항공은 한국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기내 영화 및 뉴스의 한국어 자막 서비스를 늘릴 계획이다.

가는 법-대중교통

시골 정취를 만끽하는 토스카나 지방의 시에나 인근 시골 여행은 유명한 여행지만 눈도장 찍고 다니는 여행과는 다르다. 경치에 흠뻑 취해 “와~”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다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좋다. 토스카나 일대는 대부분 왕복 2차선 도로여서 초보자도 운전하기 편리하다. 시골 마을 입구마다 공용 주차장도 잘 갖춰져 있다. 차량 대여는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열차를 타고 시에나의 키우시역으로 이동한 뒤 빌릴 것을 권한다. 키우시에서 몬테풀차노, 키안차노 테르메, 체토나, 사르테아노 등의 마을까지는 차량으로 1시간 남짓 거리다. 올해 안에 키우시에 정차하는 고속철도가 개통한다고 하니, 토스카나 시골여행은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이탈리아 대표 스쿠터인 ‘베스파’를 이용해도 좋다. 특히 몬테풀차노에서 20분 남짓 거리에 있는 피엔차까지 이동할 때 유용하다. 신선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다 보면, 마치 한 폭의 풍경화 속 주인공이 된 듯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베스파 외에 시트로엥과 친쿼첸토 대여도 가능하니 참고하자. 대여 문의는 빈티지 투어.(www.vintagetour.it)

잘 곳

토스카나 지방의 시에나 인근 시골 마을에는 마을마다 중세 느낌의 고풍스러운 숙소들이 많다. 숙박비도 하루에 100유로(한화 약12만원)여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현대식 호텔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싶다면 온천이 밀집해 있는 키안차노 테르메나 몬테풀차노에 가는 게 좋다. 이 두 마을은 토스카나주 시에나현 중심부에 있어 이동이 쉽고, 관광객도 많아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마트, 식당, 온천, 박물관 등이 모여 있어 도보로 여행하기 좋다.

취재 협조/이탈리아관광청(E.N.I.T), 토스카나 프로모션(Toscana Promozione), 알리탈리아항공, 노빌레디몬테풀차노 와인 & 발디키아나 지역 음식협회

토스카나 발도르차(이탈리아)/글·사진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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