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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15 18:03 수정 : 2009.04.1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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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저에게 대학 진학, 일류 대학교 합격의 꿈을 펌프질한 건 부모님도 학교 선생님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맥가이버>와 함께 저의 수험 생활 동반자였던 <퀴즈 아카데미>였죠. 경제학과니, 신문방송학과니, 금속공학과니 하는 ‘과’ 이름마저 (고딩이 보기에는) 근사하던 대학생 오빠들이 까다로운 정답을 척척 맞히는 모습에는 장동건과 이병헌이 나오던 캠퍼스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던 캠퍼스의 낭만이 풀풀 쏟아졌습니다.

프로그램 끝날 때 나오던 노찾사의 ‘사계’는 또 얼마나 대학생스러웠던지 소방차에 열광하던 내 음악 취향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합격은 저에게 목표가 아니라 <퀴즈 아카데미> 출연을 위한, 아니 7승 최종 우승 뒤 시청자의 갈채를 받으며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기 위한 관문에 불과했습니다.

프로그램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 퀴즈쇼에는 고 최진실씨 같은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이 문제 출제를 위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인기 최고였던 1989년 신년 특집에는 88년 청문회로 스타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국회의원)이 출연했죠. 노 전 대통령은 여기서 대학생들에게 “경험상 사법고시 공부할 때 다르고 되고 나서 마음이 달라지더라”면서 “초심을 잃지 말기”를, 그리고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향해서도 가져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비판의식보다는 낭만이 더 당겼던 고딩이었지만 어쩐지 가슴에 새기고 싶었던 근사한 충고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뒤 <퀴즈 아카데미>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고 고딩 때 꿈꾸던 캠퍼스의 낭만에 대한 환상도 지워졌습니다. 노무현 의원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여느 정권 때보다 ‘도덕적 청렴성’을 자신했지만 검은돈 문제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됐습니다. <퀴즈 아카데미>에서 전국 고딩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우승자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살까요? 그들은 당시 노무현 의원이 충고했던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김은형 〈esc〉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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