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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8 19:55 수정 : 2009.04.11 11:41

전자제품이 아닙니다 가구입니다. 그래픽 이상호 기자 silver35@hani.co.kr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빈티지·아날로그 유행
라디오 인기 부상

돌리는 튜너, 나무 소재
인테리어 소품 구실

가끔은 눈을 감을 때 더 많이 볼 수 있다. 시각이 닫힐 때 청각은 더 넓어지고, 더 넓어진 청각은 저마다 눈앞에 상상의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은 종종 현실보다 다채롭다. 그래서 소설가 박민규는 한 인터뷰에서 시각 외의 다른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소설을 쓰기 전에 며칠 동안 안대를 한다고 밝혔던 걸까?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책·신문·라디오 등 올드 미디어는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지난 2월로 한국에서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송출된 지 82년이 됐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라디오에서 위로와 기쁨을 얻는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라디오는) 고대 북의 울림처럼 작용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늦은 밤 홀로 라디오를 들어본 사람은 마음에 울리는 ‘북소리’를 안다. 인터넷 시대에 시디플레이어나 엠피3 기능도 없는 라디오 수신기가 꾸준히 팔리는 이유는 뭔지, 21세기 라디오의 생존 방식인 ‘쌍방향’ 프로그램이 뭔지 알아봤다. 라디오 진행자로 거듭난 소설가 이외수는 “텔레비전보다 라디오가 더 애착이 간다”고 털어놨다.

전자제품이 아닙니다 가구입니다. 그래픽 이상호 기자 silver35@hani.co.kr

시디플레이어 등의 기능 없는 라디오 단말기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라디오는 가구다.

서양에서 처음으로 라디오가 상품화한 1920~30년대에 라디오는 하나의 가구로 여겨졌다. 이런 생각에서 ‘라디오 캐비닛’ 디자인이 출현했다. 당시 라디오 디자인은 라디오의 모든 부품을 하나의 상자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20년대 초까지 라디오는 전선·밸브·확성기를 한데 모아 붙인 데 지나지 않았지만 나중에 이 부품들을 캐비닛 안에 정돈해 고정했다. 라디오 제작사들은 라디오 캐비닛 모양을 아름답게 하려고 건축가·미술가를 고용했다. 30년대가 되면 라디오 디자인은 구식 가구 모델에서 벗어난다. 이탈리아 카스틸리오니 형제들이 선구적인 디자이너다.

33년 거의 모든 독일 가정의 응접실을 지켰던 폴크스엠펭거(국민 라디오)는 대표적인 라디오 제품이다. 발터 마리아 케르스팅이 디자인한 이 제품은 당시 가장 뛰어난 산업재인 베이클라이트(합성수지. 플라스틱의 시초)로 만들어졌다. 디자인은 선진적인 디자이너 집단인 바우하우스의 철학을 따랐다. 첨단 기술재료를 사용해 대량생산할 수 있었다. ‘국민 라디오’를 만들어내려는 생각은 모순적이게도 바우하우스를 비게르만적이라며 폐쇄한 나치당에서 나왔다. 가장 앞선 디자인의 라디오는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가장 퇴행적인 정당의 ‘주둥이’ 노릇을 했다. 당시 이 제품의 별명은 ‘괴벨스(나치당 선전책)의 주둥이’였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트랜지스터가 발명돼 라디오가 작아졌다. 소형화로 라디오가 집 안에 두는 가구의 하나라는 생각은 끝났다. 사람들은 사무실과 야외에서 들고 다니며 라디오를 들었다. 다른 오디오 장비와의 결합은 이런 경향을 가속했다. 1956년 독일 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레코드플레이어와 라디오를 결합시킨 브라운 포노슈퍼 에스케이4를 내놨다. 장식을 모두 없앤 흰색의 제품에 사람들은 ‘백설공주의 유리관’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텔레비전, 시디플레이어, 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과 매체가 속속 등장하며 라디오는 음악과 정보를 전달하는 ‘첨단 매체’의 지위를 잃었다. 라디오 단말기는 팔리지 않고, 시디플레이어나 엠피3 플레이어에 달린 부가 기능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라디오를 다시 가구로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생겼다. 나무 질감의 고풍스런 디자인의 라디오 제품이 대표적이다. 지마켓은 우든라디오 제품이 올 1~3월에만 2만2500개 팔렸다고 밝혔다. 이들 제품은 라디오 수신과 시계·자명종 기능이 전부인데도 인기를 끈다.

인기의 힘은 디자인에서 나온다. 아날로그 튜너와 나무 질감은 고풍스런 느낌을 준다. 앞에서 보면 납작한 모양의 이들 라디오는 마치 눕혀진 책처럼 나무 책장과 잘 어울린다.

티볼리는 오디오광 사이에 유명하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다녔던 헨리 클로스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했다. 그 사랑은 그를 오디오 시스템 개발에 빠져들게 하였다. 티볼리 라디오 모델 원은 40여 년 동안 오디오·라디오를 디자인해 온 헨리 클로스가 말년에 디자인한 제품이다. 티볼리 라디오 모델 원은 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나무 질감의 캐비닛은 미적인 측면과 음향학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 제작됐다. 2002년 처음 수입된 뒤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판매가 증가한다.

영국제 로버츠 라디오는 가죽 가방 모양의 디자인이 특징이다. 1932년 설립된 로버츠는 처음부터 휴대용 라디오로 유명했다. 한국에 수입된 모델은 가죽 가방 모양의 50년대 복고 스타일이다. 지난 1월 처음 수입됐고 아직 판매량은 많지 않지만 수입사는 곧 판매가 늘 것으로 예상한다.

장진택 <지큐> 차장은 “히틀러 시대 독일에서 라디오가 가구로 취급됐다. 과거 셔터처럼 여닫는 텔레비전 제품같이, 라디오뿐 아니라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기능적 완성도가 높아지면 인테리어 소품화한다”고 설명했다.

예쁜 라디오 어디서 살까

⊙ 디자인에버 ㅣ 디자인에버(070-7571-7544/www.designever.co.kr)의 우든라디오 제품은 2만~15만원으로 다양하다. 대부분 엠피3나 시디플레이어와 연결할 수 있는 단자가 있어 스피커로도 사용 가능하다. 축음기 모양을 한 장식적인 디자인의 제품도 있다. 이외에 지마켓에 레브까사·다라데코·시나브로 등 업체의 우든라디오 제품도 있다. 값은 1만~2만원대.

⊙ 티볼리 라디오 ㅣ 한스무역(02-484-3773/www.tivoliaudio.co.kr)에서 수입한다. 용산 전자랜드 등 전국 8곳에 판매점이 있다. 모델 원은 25만원이며 색깔별로 6종류가 있다. 시디 플레이어와 연결 단자가 있어 스피커로 사용할 수 있다. 모델 투, 모델 스리, 휴대용 팔(PAL) 등의 제품도 있다.

⊙ 로버츠 라디오 ㅣ 가죽 가방 모양의 로버츠 라디오는 30만~47만원. 디자인과 무늬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02-310-5317)에서 판다. 일본 명품 오디오인 아마다나도 같은 매장에서 판매된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참고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83>(폴커 알부스 외·미술문화),<20세기의 디자인과 문화>(페니 스파크·까치)·촬영협찬 디자인에버, 로버츠 라디오, 한스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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