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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8 21:17 수정 : 2009.03.21 16:45

예술이 사랑한 제주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미술 작품 속에 담긴 제주도의 매력…미술관·갤러리만 다녀도 2박3일이 훌쩍

제주는 미술로 가득 찬 섬이다. 정방폭포가 떨어지는 태평양 해안 서귀포에도, 한라산 기슭 중산간의 오름 밑에도 미술관이 있다. 호텔에는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 걸려 있고, 갤러리 카페에서는 채식 식사를 팔며, 젊은 작가들은 냇가 언덕의 산동네 골목에 그림을 그린다.

제주에서 세상 뜬 김영갑, 제주에서 태어난 변시지

이일호의 <색즉시공>(제주신라호텔)
그래서 유명 작가들은 제주로 내려왔다. 유명해서 제주로 내려온 작가들도 있지만, 제주에서 유명해진 작가들도 있다. 소를 그린 화가 이중섭이 제주도에 머문 것은 1951년이었다. 그는 서귀포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산동네 초가의 셋방에서 살았다. <섭섬이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아마도 그의 집 앞마당에서 그린 풍경 같고, 게를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의 모습도 여기서 잡은 풍경 같다. <화가 이중섭> 평전을 쓴 시인 고은이 “월남 이후 중섭이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한 시절이다. 혼신으로 사랑하는 아내 남덕과 아이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섭은 아들 태현과 함께 정방폭포 밑으로 게를 잡으러 가곤 했다. 가족은 그해 12월 부산 범일동 판잣집으로 이주했고, 이듬해 아내와 자식들은 궁핍한 생활 탓에 일본으로 떠났다. 중섭은 간난을 해결하지 못했고, 1956년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숨졌다. 무연고자로 처리된 주검은 사흘 만에 이중섭으로 밝혀졌다. 사인은 영양실조였다.

사진가 김영갑은 1985년 가족, 친구들과 이별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줄곧 제주만 찍었다. 초기엔 마라도를 찍다가 대부분은 중산간 용눈이오름과 둔지봉 들판을 찍었다. 제주의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런 사진을 보고 어떤 이는 바람을 담으려고 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고독을 담으려고 했다고도 했다. 세간의 관심을 받을 무렵, 어느 순간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지 않았다. 루게릭병이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는 사진가의 절망이 온몸을 갉아먹는 동안 죽음이 엄습했다. 그는 멸망 전 사과나무를 심듯 폐교를 빌려 갤러리와 정원을 만들었다. 2005년 9월 그는 숨졌고, 그의 뼈는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이중섭의 <파란 게와 어린이>(이중섭 미술관)
변시지의 <풍파>(기당미술관)

제주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 변시지의 작품에는 바다와 섬, 초가집 그리고 노인이 등장한다. 노인은 말과 함께 놀다가, 말과 함께 일하다가, 어느 그림에서는 혼자다. 노인이 선 곳은 제주도일 것이다. 제주 미술여행을 하다 보면 그의 그림이 없는 곳이 없다. 이처럼 그는 제주 미술의 마스코트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그의 그림이 걸릴 때, 말린 왜그너 남캘리포니아대학교 부학장은 “현대인의 고립감, 고독 그리고 고단함을 반영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제주도는 우리 내면의 풍경을 비추는 섬일지 모른다.


경기도 출신 화가 이왈종은 1990년 대학교수 직을 박차고 제주로 내려왔다. 민화적인 색채와 도상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 세계는 단란하다. <제주 생활의 중도> 연작에는 동백과 엉겅퀴가 피고, 개와 사슴, 닭이 한가롭게 놀고, 집 안의 가족이 행복하게 차를 마신다. 단란함과 유유자적은 제주 풍경의 힘일 것이다. 그는 2008년 한 인터뷰에서 “처음 제주도 와서는 서울 생각이 많이 나서 힘들었는데, 제주의 나무와 풀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김영갑의 <중산간>(두모악)

산과 바다를 봤다면 이번에는 미술 작품 속으로

제주 여행의 이유는 눈 쌓인 한라산, 한여름 비췻빛 해변, 테마파크 등 인위적인 볼거리였다. 하지만 제주도를 여행할 다른 이유가 생겼다. 이중섭, 김영갑, 변시지, 이왈종뿐만 아니라 제주를 사랑한 화가·사진가들의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만 둘러봐도 이틀 일정이 빼곡하다. 제주도로 미술 여행을 가 보자.

이왈종의 제주 생활의 중도(제주현대미술관)

매혹적인 오브제, 오름

“20년 전 중산간 오름들에는 찾는 이가 없었다. 온종일 돌아다녀도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운이 좋은 날에나 목동들과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약초꾼들마저 찾지 않는 중산간 오름은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이곳의 풍경을 완성하는 이들은 농부들이다.” <김영갑> (김영갑 지음, 다빈치 펴냄)

제주의 오름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오브제로 활용됐다. 사진가 김영갑도 용눈이오름을 줄기차게 담았는데,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용을 볼 수 있다. 대낮과 해질 녘, 봄과 겨울의 서정이 다르다. 김영갑은 용눈이오름을 제주에서 가장 선이 아름다운 오름으로 꼽았다고 한다. 용눈이오름은 지금은 여행자의 발길을 타는, 가장 유명한 오름이 되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다. 해발 247미터. 오르내리는 데 30분이면 족하다.

제주=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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