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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8 20:57 수정 : 2009.03.21 16:55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아래 있는 이중섭의 생가.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작품으로 승화된 바람과 오름·들판… 이중섭·살바도르 달리 등 유명작가들의 작품도 감상

“상상과 환상의 무언극을 위한 무대를 표현”(문화예술위원회 ‘500인의 공간’ 작가 정보)하는 작가 정일의 판화 <꿈> 아래에서 잠을 깼다. 제주 중문 제주신라 호텔의 디럭스룸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3~5층 로비를 기웃거렸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우주 비너스>의 토르소가 보인다. 여성의 아름다운 몸에 시계가 늘어져 있고 개미 두 마리가 기어 다니고 황금빛 알이 골반을 깨고 나왔다. “유한한 시간 아래 개미가 죽음을 재촉하지만, 결국 생명은 부활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라고 컨시어지의 이정민 주임이 말했다. 반대편에는 누보 레알리슴(신사실주의)의 대표 작가 아르망의 <무희>가 서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우주 비너스>.
제주신라호텔에 전시된 데이비드 쇼의 <무제1>.

이중섭미술관 앞에선 예술+벼룩시장도

제주에서는 호텔도 미술관이다. 500여점을 소유한 제주신라는 유명 작가의 작품을 많이 소장한 호텔 가운데 하나다. 팽창을 거듭하다 캔버스의 모서리에 부딪혀 멈춘 듯한 꽃 그림 화가 김홍주의 <무제>, 이왈종의 <생활 속의 중도>, 전국광의 추상 조각 <생의 기원> 등 30여점을 로비와 연회장을 돌아가며 둘러봤다.

중문단지 여미지식물원 옆에는 갤러리 찰나(gallerychalla.com)가 있다. 제주 작가 김재경의 수채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중문에 묵는 여행자들은 갤러리 옆 ‘찰나 쉼터’에서 채식 식사와 일리 커피로 점심을 먹는다. 식물성 국물로 끓인 ‘찰나찌개’, 콩으로 만든 ‘소이빈 치킨’ 등이 메뉴다. 6천~1만원.


강지혜, 손희정이 그린 서귀포 걸매마을의 공공미술 작품 <사탕나무>.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한경면의 도립 제주현대미술관(jejumuseum.go.kr)에 들렀다. 한글서예가 현병찬의 진돗개가 꼬리를 흔들며 마중 나왔다. 미술관 뒤편으로 예술인 마을이 조성돼 있다.

제주에선 작품 규모로 제주현대미술관이 최대다. 제주 미술을 ‘다이제스트’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제주를 작업 무대로 삼은 작가 말고도 변관식, 이응로 등 걸출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걸렸고 김흥수 특별전시실도 있다. 구상과 추상을 결합한 하모니즘을 완성한 김흥수의 작품을 이렇게 한꺼번에 볼 수 있다니 좋다. 사진가 김옥선이 제주에서 사는 21세기의 하멜(외국인)들을 찍은 사진도 눈길을 끈다. 미술관을 나와 예술인 마을의 올레(골목)길을 산책했다.

서귀포는 제주 예술의 고향이다. 기당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등 시립미술관, 변시지의 작업실과 갤러리 그리고 젊은 작가들의 공공미술 현장이 있다. 서흥동 기당미술관(gidang.or.kr)은 소담한 시립미술관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로 이름을 떨쳤던 제주 사람 강요배의 <바리메의 유골>이 걸려 있고, 제주 화가 변시지의 상설 특별전이 열린다. 제주에서 변시지의 작품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파도> <풍파> <태풍> <더불어> 등을 보면, 변시지 미술의 구성 요소를 알 수 있다.

서재철 갤러리 자연사랑의 나무에 관람객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튿날은 이중섭 문화의 거리에서 출발했다. 이곳은 1960~70년대 서귀포의 중심 거리였다. 옛 모습을 복원한 서귀포 관광극장 옆에 갤러리카페 미루나무, 이중섭이 살았던 목련꽃 핀 초가집과 이중섭미술관이 있다. 이중섭미술관의 이중섭 소장품은 많지 않다. 모두 9점 가운데 6점이 전시중이다. 하지만 한국의 ‘아고리’와 일본의 ‘아스파라가스’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보면 가슴이 찡해진다. 전은자 학예사가 설명했다. “일본 유학 당시 선생님이 교실에서 ‘이군’을 부르니까 조선인 세 명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긴 턱을 가진 이중섭을 ‘아고(노)리’로 불렀죠. 아스파라가스는 큰 손과 발을 가졌다고 해서 이중섭이 붙인, 일본인 아내 남덕의 별명이죠.”

평범한 풍경을 지역 정체성으로 확장시킨 김영갑의 사진들

서재철 갤러리 자연사랑. 가시초등학교를 개조해 전시장으로 꾸몄다.
아고리는 아이들과 함께 일본에 사는 아스파라가스에게 가족사진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썼다. ‘하야쿠 하야쿠’(빨리 빨리) 하면서 손을 벌리는 자신의 모습을 편지지 귀퉁이에 그렸다. 박수근과 장욱진, 이응로의 작품도 미술관 2층에 전시돼 있다. 아트숍도 재밌다. 이중섭의 크로키는 생활예술과 어울린다. 지우개, 연필, 노트, 넥타이, 스카프 등 다양한 물품을 판다. 매주 2·4째 주 토요일 미술관 앞에서 ‘서귀포 예술+벼룩시장’이 열린다. 제주 작가들의 생활예술품과 시민들이 가져온 중고품 그리고 갤러리하루가 여는 현장 전시를 볼 수 있다.

서귀동 갤러리하루(club.cyworld.com/galleryharu)는 ‘정정신 현장인물 크로키전’을 열고 있다. 여기서 안내지도를 받아 천지동 걸매마을에 갔다. 2007년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 20여점이 후미진 골목과 담장, 석축에 숨바꼭질을 하듯 숨어 있다. 고양이들의 꼬리가 금이 간 시멘트 담장 위에 얽혀 있고, 제일슈퍼의 미닫이 유리문에는 가짜 콜라병과 아이스크림과 하드가 포촘킨 벽화(실제 풍경처럼 그린 착시 벽화)처럼 진열됐다. 비탈 골목길은 전망이 좋다. 버섯벤치에 앉아 선반내와 걸매생태공원을 내려다보았다.

표선면의 서재철 갤러리 자연사랑(hallaphoto.co.kr)과 성산읍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dumoak.co.kr)은 폐교를 개조한 사진 미술관이다. 두 갤러리는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사실적인 제주와 주관적인 제주를 각각 느낄 수 있다. 김영갑은 바람과 오름, 들판 등 제주의 평범한 풍경을 제주의 정체성으로 확장시켰다. 제주에서 미술을 보면 이렇듯 제주가 달라 보인다.

제주현대미술관 김흥수 특별전시실.

여행쪽지

호텔 미술품 구경도 쏠쏠
제주도 미술 여행 두배 즐기기…지도, 책자 챙기세요

제주 미술 볼거리는 한경면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성산읍 김영갑 갤러리까지 동서로 걸쳐 있다.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니지만, 이틀 동안 기동성 있게 둘러보려면 렌터카가 편하다. 하루 대여료 4만~5만원 안팎.

◎ 제주신라호텔(shilla.net/jeju·1588-1142)의 작품은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볼 수 있다. 3~5층 로비와 연회장 등에 작품이 전시됐다. 제주신라는 투숙객을 상대로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갤러리 투어를 진행한다. 도록(1만원)도 판매한다. 갤러리 투어는 미리 예약해야 한다. 숙박과 렌터카를 묶은 제주신라의 ‘카텔 패키지’를 이용할 만하다. 1박 숙박권과 아침식사, 내비게이션이 탑재된 렌터카가 주중(월~목) 29만~34만원, 주말(금~일) 및 공휴일(5월1일~5일) 35만~40만원이다. 제주시 제주그랜드호텔(grand.co.kr)도 미술 작품을 다수 소장한 곳으로 꼽힌다. 일반인도 1층 로비 등에 전시된 백남준의 <벤자민 프랭클린>, 구사마 야요이의 <펌프킨> 연작 등을 볼 수 있다.

◎ 서귀포 예술+벼룩시장은 지난 14일 11번째 열렸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데, 특별행사가 있을 경우 이중섭미술관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가 바뀐다. 인터넷(cafe.daum.net/seogwipofleamarket)에서 장소와 일정을 미리 확인한다.

◎ 공공미술 작품이 전시된 서귀포 걸매마을은 걸매생태공원 둔덕에 있다. 생태공원에서 중앙로터리 쪽으로 올라가다가 오른쪽 돌판삼겹살 골목으로 들어간다. 지도가 없으면 보물처럼 감춰진 작품 찾기가 쉽지 않다. 갤러리하루(064-762-3322)에 들러 전시를 감상한 뒤, 지도와 책자를 받아 가도록 한다. 골목 산책은 30분이면 충분하다.

◎ 제주현대미술관은 매주 수요일, 기당미술관은 화요일, 이중섭미술관은 월요일 쉰다. 자연사랑과 두모악은 정기 휴관일이 없다.

제주=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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