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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5 20:45 수정 : 2009.02.28 20:31

비틀스. 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핵심 벗어난 ‘후크송’ 논란 … 모든 대중 음악은 좋은 훅을 지향해

대중음악은 그게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다른 음악과 차별되는 요소를 가진다. 그중에 가장 핵심적인 건 ‘훅’(hook)이다.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와 로이 오비슨을 비롯한 당대의 히트 가수들에게 곡을 주고, 1970년대엔 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두 번 받은 알 카샤와 조엘 허치혼은 훅을 “상업음악의 본질로 히트 싱글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정의했다. 1998년에 출간된 로이 셔커의 <대중음악사전>(이정엽,장호연 역/한나래/1999)에는 “귀에 쏙 들어오는 선율 혹은 리듬 패턴으로, 청자를 휘어잡아 노래의 나머지 부분을 듣고 싶게 유혹하고, 더 중요하게는, 반복해서 듣고 싶게 만드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의 가요를 논할 때 언급되는 ‘후크송’이란 말은 이 당연한 정의를 마치 새로운 것처럼 포장한다. ‘미드 템포의 가요’처럼 대중음악의 기본 요소를 새로운 장르처럼 사용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그것이 수용자들로부터가 아니라 제작사의 홍보문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점 때문에 나는 ‘후크송’이란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훅이 전면에 드러난 가요’라는 후크송의 정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건 정의가 아니라 동어반복이고, 심지어 최근에 새로 생긴 경향도 아니다. ‘훅을 강조하는 형식’이라는 설명에 대해선, 성공한 대중음악치고 그렇지 않은 음악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 훅은 언제나 대중음악의 핵심이었다. 비틀스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경우에도 그랬고, 산울림과 송골매와 조용필, 심지어 여름만 되면 흘러나오는 비치보이스와 쿨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귀에 꽂히는 멜로디와 입에 붙는 가사의 각운 없이 성공한 대중음악은 일찍이 없었다.

훅, 그러니까 ‘반복되는 멜로디와 리듬 패턴’이 지향하는 건 듣는이로 하여금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고 어디서든 흥얼거리게 만드는 대중성이다. 그런데 대중음악은 예술이자 산업이다. 진정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는 모순이 대중음악의 본질이기 때문에 작곡가와 싱어송라이터들은 그 노래가 더 많이 팔리도록, 더 많이 불리도록 세련되고 창의적인 훅을 끝없이 다듬는다. 상업적이라고 비난할 필요도 이유도 없이, 대중음악을 만들 때 당연히 고려해야 할 문제다. 그래서 모든 대중음악은 ‘좋은 훅’을 지향한다. 민중가요든, 댄스음악이든, 인디음악이든 상관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불리는 노래야말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시대의 감수성과 결합한 훅이 세대를 뛰어넘은 보편성을 얻을 때 ‘언제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명곡이 된다. 어떤 노래에 고유한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훅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후크송이 가요의 진화냐 상술이냐 같은 논점이 이상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이건 훅에 대한 몰이해로 생긴 해프닝이다. 훅(이든 ‘후크송’이든 뭐든) 더 중요한 건 ‘최근 가요의 구조적 변화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변화와 밀접하다’는 관점이다. 그걸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질적 변화에 동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주류 가요의 성과와 인디신의 변화 그리고 다양해진 음악의 수용 방식과 경로 등을 살피고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게 훨씬 더 흥미롭고 생산적이다.

글 차우진(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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