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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04 19:51 수정 : 2009.02.07 16:23

국내 대표적인 ‘설국’ 울릉도의 겨울 이야기.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전국 최다 강설 지역 성인봉 트레킹

국내에서 가장 이색적인 두 섬, 제주도와 울릉도. 두 섬은 이맘때 저마다 꽃잔치를 펼친다. 제주는 봄꽃잔치를 시작하고, 울릉 성인봉은 한창 눈꽃잔치를 이어간다. 울릉도의 겨울은 길고, 쌓인 눈은 두껍다. 국내 대표적인 ‘설국’ 울릉도의 겨울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울릉눈축제가 2월21일까지 열리고, 성인봉 골짜기 눈 이야기는 6월 중순까지 여운을 남긴다. 울릉도 해안에 구름만 껴도 성인봉(聖人峯·984m) 정상엔 눈발이 날린다. 성인봉은 전국 최다 강설 지역이다. 겨울철 중산간 위쪽 산비탈엔 지금 1m 안팎의 눈이 쌓여 있다. 올해 눈은 (아직은) ‘아주’ 적은 편이다. 지난해엔 제대로 내렸다. 온 섬이 눈에 덮였다. 나리분지엔 2m 가까이 쌓여 지붕·굴뚝 빼곤 온통 흰색이었다고 한다. 1962년엔 한해 동안 3m 가까운 적설량을 기록했다.

“허벅지 빠질 거 각오해야 합니다”

울릉 성인봉은 한창 눈꽃잔치를 이어간다.

울릉도 겨울은 썰렁하고도 풍성하다. 여름 성수기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도동항 골목, 저동 어판장이 한산해지고, 아귀다툼을 벌이던 식당·민박·상가 주민들은 다시 따뜻하고 푸근한 ‘섬 가족’으로 돌아온다. 40여명의 울릉산악회 회원들만 해도 그렇다. 한겨울에 더 화기애애해진다. 매주 한 번씩 ‘성스러운 설산’ 성인봉 눈길을 찾으며 따뜻해진다. 성인봉 진경 감상을 별러온 육지 산꾼들도 한겨울을 골라 포항에서 배를 탄다. 요즘은 성인봉 자연설에서 산악스키를 즐기려는 이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지난 1월17일엔 성인봉 일대에서 처음으로 ‘익스트림 산악스키 시범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아이젠·스패츠 다 챙기셨죠. 어제 내린 비로 눈이 많이 녹았지만, 허벅지까지 빠질 걸 각오해야 합니다.”

지난 1월31일 오전 9시30분, 울릉초등학교에 18명의 산객들이 모였다. 울릉산악회 회원들과 육지에서 온 산행객이다. 산악회 이경태(49) 부회장과 최희찬(41) 구조대장은 등에 스키를 메고 있다.

케이비에스 중계소~사다리골~팔각정~바람등대~정상~나리분지 코스의 산행을 시작했다. 초반은 다소 완만한 소나무숲길, 오를수록 산길의 눈이 깊어지며 발이 눈 속에 빠져든다. 해발 650m, 성인봉 1.5㎞, 도동 2.5㎞ …. 안내판은 곳곳에 설치돼 있다. 그러나 최종술(42) 등반대장은 “눈보라 치는 때는 발자국이 지워져 길을 잃기 쉽다”고 말했다.

사다리골(나무다리 계단)을 지나면서 눈 덮인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진다. 앞사람 발이 빠졌던 깊은 구멍을 피해 다져진 발자국을 골라 발을 옮긴다. 그래도 네댓 걸음에 한 번은 정말 무릎까지 발이 푹 꺼져든다. 표면은 얼고 속은 젖은 두꺼운 눈길이다. 오르는 산길 내내 오른쪽으로만 급경사다. 잘못 넘어지면 얼어붙은 눈 위를 미끄러져, 골짜기 아래로 최악의 가속도 여행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한 회원의 푸념 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무신 눈이 이래 벌써 다 녹아 뿟나. 4월 같네.” 지난주까지도 눈이 제법 쌓여 있었는데, 어제 비로 녹아 산행 맛이 덜하다는 말이다. 점점 숨이 턱에 차고 발끝이 얼어 들어왔다. 최 구조대장은 스키를 타고 나무 사이를 누빈다. 급경사 눈길을 거침없이 오르내리며 선두와 후미를 점검하고 일행을 이끈다.

산비탈에 세워진 쉼터, 팔각정 지나니 비탈은 더 심해지고 쌓인 눈은 더 깊어진다. 눈을 다져가며 한발 한발 옮겨 딛는다. 언 발이 무게를 더하고 다리엔 경련이 인다. 바람등대까지 200여m를 오르는 데 30분이나 걸렸다. 바람등대는 안평전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다. 도동 쪽 바람, 사동 쪽 바람이 마주 불어오는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정상까지는 약 1㎞. 여기서 산행객들은 한숨 돌리며 몸을 녹인다. 평상 옆에 누군가 ‘무릉도원’이라 쓴 팻말을 세웠다. 무릉은 울릉의 옛 이름 중 하나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나무들은 굵어지고 칼바람이 거세진다. 날리는 눈가루로 숲은 안갯속이다. 안개가 걷히는 순간순간 눈부신 꽃나무들의 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빈 가지마다 날린 눈가루가 맺혀 화사한 서리꽃·얼음꽃을 피웠다. 꽃나무 향연의 절정은 정상에서 거센 바람과 함께 내뿜어진다. 꽃나무들로 둘러싸인 정상, 10여평 눈마당 한쪽에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강풍 휘몰아치는 정상 밑 전망대에 서니 말잔등·알봉분지·송곳산 등 눈 덮인 주변 산줄기가 은갈색으로 빛난다. 송곳산 쪽 바다 경치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금세 안갯속에 숨는다.

울릉도 해안에 구름만 껴도 성인봉(聖人峯·984m) 정상엔 눈발이 날린다.

정상의 컵라면과 소주 한잔, 이 맛에 자꾸 오지

상쾌한 피로감이 엄습할 무렵 회원들은 뜨거운 물과 커피를 곁들여 도시락·컵라면 잔치를 벌인다. 한 회원이 나무 밑 눈 속에서 큼직한 자루를 찾아내 소주병을 꺼낸다. 찬 소주 한 잔을 받아든 한 회원이 말했다. “이 맛에 자꾸 산에 오지예. 자루를 이래 줄로 매달아 눈에 파묻어 놓고, 올라와 가 꺼내 묵고, 또 지고 와 가 보충해 둡니더.”

하산을 시작하자 이경태씨와 최희찬씨는 스키 활강을 준비했다. 눈 덮인 나무계단 길을 내려와 신령수(알봉분지의 샘)를 거쳐 나리분지에 도착하니 4시. 나리동 식당에서 씨앗술(황기·더덕 등 약초로 담근 술)을 들며 산행을 정리했다. 온몸에 피로가 몰려와 먼저 일어서는데, 아주머니 회원들이 한마디씩 한다.

“오늘은 차암 힘 안 들이고 쉽게 갔다 왔다이.” “그 매운 눈보라 쫌 쐬고 눈구딩이 함 푹 빠지고 해야 맛인데, 그자.” “그런 소리 마라. 1년에 한두번씩 사고 안 나나.”

성인봉 겨울산행 알아두기

아이젠·스패츠는 필수 준비 품목. 도동항 낚시점에서도 판다.(각각 1만5천~2만원) 두툼한 방한복과 모자·방수장갑·등산지팡이는 기본 차림이다. 특별히 험한 구간은 없으나, 두껍게 쌓인 눈길이어서 체력 소모가 심하다. 초행자는 반드시 경험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산행엔 세 가지 코스가 많이 이용된다.(시간은 겨울 기준) 도동 중계소~팔각정~바람등대~정상~나리분지(5시간20분), 도동 대원사~팔각정~바람등대~정상~나리분지(5시간40분), 사동 안평전~바람등대~정상~나리분지(5시간).

울릉=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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