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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04 19:41 수정 : 2009.02.07 16:23

울릉읍 사동 안평전마을 깍새산 자락에서 주민 김열수씨가 고로쇠물 채취를 위한 작업을 한 뒤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예측불허 날씨로 드나들기 힘든 울릉도 겨울의 진짜 매력

울릉도는 가기도 어렵고 돌아오기도 힘들다. 풍랑이 거세게 일면 몇 날 며칠 발이 묶인다. 한겨울 울릉도는 관광객이 부쩍 준다. 식당도 여관도 한산하다. 예측불허의 바다날씨 탓이 크다. 포항~울릉도를 하루 한 차례 오가는 여객선은 결항하기 일쑤다. 지난 1월만 해도 결항 일수가 17일이다.

지구 온난화 탓에 어획철은 물고기 마음

도동·저동 : 여객선 결항 뒤 첫 배가 들어오는 날 도동항에선 화물 싣고 내리기 전쟁이 일어난다. 밀려 있던 생필품·부식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나갈 때도 뭍으로 부치는 물건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도동의 한 식당 주인이 말했다. “결항도 결항이지만, 육지에서 배추 한 상자 주문할라캐도 운임이 원캉 비싸노니 이래 안 받을 수 없는 기라.” 울릉도의 비싼 물가가 이해된다. 생필품·약·음식·택시비 등 대개 뭍의 1.5배쯤 된다. 관광객들도 놀라고 주민들도 인정한다. 주민들 스스로 꼽는 ‘울릉도의 3고’가 ‘산 높고, 파도 높고, 물가 높고’다. 평지가 적고, 기름진 땅도 적으니 쌀을 비롯한 곡식, 채소들을 뭍에서 들여와야 한다. 어선들이 잡은 해산물도 울릉도에서 소비되기보다는 대부분 뭍으로 대량 판매된다. 섬에 남는 일부 해산물들이 관광객들에 의해 소비된다.

울릉도 최대 어항인 저동항에선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곳 배들은 요즘 2월 초에도 오징어잡이에 나선다. 오징어철은 본디 12월에 마무리됐었다. 저동항에서 복어·꽁치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요즘 많이 나오는 고기가 뭐냐고 물었다. 퉁명스런 대답. “그거야 고기가 알아서 하는 기지, 내 어찌 아나. 인자 철도 없어요. 즈들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거니까.” 저동항에서 만난 어민 임승택(50·황주호 선장)씨도 철 모르는 고기들에 대해 말했다. “새치(임연수어)가 한창 날 철인데 잘 안 나요. 복어철도 예전에 12월 전후였는데, 이제야 슬슬 나옵디다.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해산물은 도시보다는 훨씬 싸고 싱싱하다. 손질해 놓은 생복(밀복)이 세 마리에 1만원, 반건조한 임연수어를 2마리에 1만원, 말린 가오리를 1만~3만원에 판다.

명이 장아찌. 깻잎처럼 밥을 싸 먹는다.

섬나물 : 울릉도 숲에 나는 풀은 80%가 약초라는 말이 있다. 식용식물이 많다는 건, 그만큼 먹을 만한 건 다 찾아내 먹어 왔다는 걸 뜻한다. 식당들에서 반찬으로 내는 재미있고 독특한 나물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삼나물(눈개승마)·참고비(섬고사리)·전호·명이(산마늘)·부지깽이(섬쑥부쟁이)·울릉취(미역취)…. 이름만 들어도 섬나물 향기가 물씬 난다. 도동항 골목 어느 식당에서든 흔하게 만나는 나물이다.

명이와 전호는 이맘때부터 눈을 헤치고 채취하는 나물들이다. 명이나물은 ‘목숨 명’(命) 자를 쓴다. 고종 때 울릉도 개척령으로 뭍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 굶주리다가 눈 속에서 싹튼 산마늘을 찾아내 삶아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명이는 20~30년 전까지도 주민들의 요긴한 구황식으로 쓰였다. 잎을 간장·된장에 절여뒀다가 반찬으로 먹는데, 깻잎처럼 밥에 싸 먹으면 새콤달콤하고 사각거리는 맛까지 느껴진다. 전호는 뿌리를 약으로 쓰는 약초이기도 하다. 역시 눈 속에서 싹을 틔운다. 잎을 양파와 함께 겉절이 식으로 무쳐 먹는데, 쌉싸름하면서도 톡 쏘는 약초향이 입을 개운하게 해준다. 삼나물은 삶아 내면 고기 맛이 나 주민들이 좋아하는 나물이다. 무쳐 먹거나 찌개에 넣어 끓여 먹는다. 인삼처럼 사포닌이 함유돼 있고 잎이 삼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고사리와 비슷하지만 고사리보다 다소 굵고 맛도 연한 참고비, 뭍의 미역취보다 크고 부드러워 쌈 싸 먹기도 하고 말려 무쳐 먹기도 하는 울릉미역취도 밥맛을 돋운다.

이런 이색적이고 맛도 좋은 나물 반찬을 곁들여 홍합밥·따개비밥·대황(다시마의 일종)밥·오징어내장탕 등 울릉도의 독특한 음식을 먹다 보면 음식 값이 비싸다는 느낌도 어느 정도 상쇄된다.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따개비칼국수.

섬 주민들에게 몸 바친 깍새들

안평전 마을 : “이만하면 평평하지예? 이기 비탈이모 어디가 평지고?” 성인봉 남동쪽 산자락 일명 깍새산 밑 비탈진 동네 안평전(安坪田)에서 주민 김열수(57)씨가 말했다.

울릉읍 사동리 안평전마을은 밭도 길도 산비탈에 있다. 5가구가 비탈밭에서 기르는 대표작물이 삼나물·참고비나물이다. 옛날엔 야산에서 채취하던 이 나물들을, 소비가 늘면서 농가에서 대량재배한다. “요즘 친환경·무농약 재배 안 하모 누가 사겠노. 우린 똘똘 뭉쳐가가 친환경 인증 나물만 기른다.”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궁핍한 시절을 견뎌온 분들이다.

갑상선을 앓아 목이 쉰, 47년 전에 안평전에 들어온 안원수(75)씨가 애써 입을 여셨다. “그땐 칡뿌리 캐고, 옥수수·감자 숨가서 명이나물죽 쑤어 먹는 기 일인기라. 배고프면 몬 전딘다.” 옆에서 부인 김혜순(71)씨가 말을 받았다. “그게 음식이가? 돼지죽이지. 요즘엔 돼지도 안 묵을기라.” 목숨을 이어주던 ‘징그러운’ 명이나물은 이미 울릉도를 상징하는 먹을거리의 하나가 됐다. 울릉도엔 쌀이 전혀 나지 않는다. 과거 태하리에 있던 논도 밭이 된 지 오래다.

안평전마을 뒷산 이름이 깍새산이다. “깍새도 마이 묵었다.” 초여름 저녁 안개 낀 날이면 ‘깍새’가 깍새산으로 까악까악 울며 떼지어 날아들었다고 한다. 김씨가 말했다. “저녁에 이래 방에 호야불 켜놓고 있으모 유리창에 뭐가 ‘화다닥 탁’ 하고 부닥치는 기라. 그기 깍새라. 나가 보모 시커먼 새가 골이 터져 자빠진 기라.”

먹을 게 없던 때 주민들에게 단백질 공급원이던 이 새는, 이젠 희귀조가 된 슴새다. 조선 말에는 슴새 떼가 나리분지를 덮을 만큼 무수히 번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먹을거리 풍부해진 요즘, 안평전 주민들의 관심은 고로쇠 물 채취에 쏠려 있다. 울릉도 고로쇠 물은 더덕향이 나고 단맛이 진하다고 한다. 1월 말부터 경칩까지 물을 받는다. 울릉도 고로쇠 채취는 3~4년부터 시작됐다. 이젠 나리분지·알봉분지를 비롯한 산자락 대부분에서 고로쇠 물을 받는다. 김열수씨도 올해 처음 채취 행렬에 가세했다. “물 받아가 육지 친지들에게나 보내줘야지.”

2~3월 안평전마을에 들른다면 깍새 구경은 못해도, 비탈밭 눈경치와 함께 눈 속에서 싹튼 명이·전호 나물, 그리고 진한 고로쇠나무 수액을 맛볼 수 있다.

울릉=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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