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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2 19:11 수정 : 2008.10.28 17:53

지중해, 내 푸른 로망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당신의 로망의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유럽의 중심 파리, 남미의 파타고니아, 브라질의 이구아수 폭포, 옥빛 바다 타히티 아니면 지중해의 하얀 마을 산토리니? 실제 가지 못할지언정 로망의 여행지를 가슴에 품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여행지가 소개된 기사를 꼬깃꼬깃 접어두거나 사진 한 장을 바탕화면에 깔고 ‘언젠가 그곳에 가고 말테야’ 하는 것. 그러면 일상은 조금이나마 위로받습니다. 지중해 또한 일생에 한번 갈 수 있을까 말까 한 곳입니다. 중세 이후 유럽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중해는 그들에게 세상의 끝이었고 다른 세상과 통하는 연결로였으며 영원한 변방이었죠. 그래서 지중해에는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세상의 시원에 닿는 듯한 신기함과 기묘함이 흐릅니다. 한국의 배낭여행자들에게도 지중해는 멀었습니다.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런던과 파리를 찍고 남유럽으로 내려가면서 로마와 아테네를 두고 고민하다가 대개 로마를 선택합니다. 아테네 거쳐 지중해 섬까지 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최근 지중해의 하얀 섬 산토리니는 한국인들의 새로운 신혼여행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값이 비싼 편이지요. 하지만 신혼여행은 로망을 실현할 단 한차례 기회여서 사람들이 산토리니를 많이 찾는다고 여행사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지중해를 가 보니 산토리니뿐만이 아니더군요. 아테네 아나피오티카의 숨은 골목길, 원시적인 낭만이 흐르는 크레타섬, 그리고 독특한 그리스식 리조트들이 로망을 부추겼습니다. 지중해를 최대한 값싸게 여행하는 방법도 살폈습니다. 로망의 여행지 지중해를 다룬 이번 호 〈esc〉를 꼬깃꼬깃 접어두세요.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당신의 로망의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실제 가지 못할지언정 로망의 여행지를 가슴에 품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지중해에는 세상의 시원에 닿는 듯한 신기함과 기묘함이 흐릅니다.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따라해 볼까 크레타 스타일

활기찬 아름다움과 원시적 순수성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조르바의 고향, 크레타섬

기원전 6천년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 크노소스궁. 미노타우로스와 이카로스 신화가 전해지는 미궁이다. 궁전의 북쪽 출입구. 뿔을 들이대고 돌진하는 황소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크레타섬 미노스왕은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 파시파에를 아내로 두고 있었다. 파시파에는 소와 부정을 저질러 반인반우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미노스왕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다이달로스를 시켜 크노소스성을 짓고 미노타우로스를 궁에 가둔다. 크노소스성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미궁이다. 미노스왕은 매년 도시국가 아테네의 젊은 남녀 7명씩을 조공받아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미궁에 넣어준다. 아테네의 젊은 영웅 테세우스는 조공 대상으로 위장한 뒤,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그리고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를 따라 미궁을 빠져나온다.’


크노소스궁에 잠자코 앉아 미궁 신화를 소처럼 되새김했다. 미노타우로스가 갇힌 곳은 어디였을까.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어느 회랑을 따라 이어졌을까.

하지만 크노소스궁은 미로이기 전에 폐허였다. 20세기 초반 크노소스궁을 발굴한 아서 에번스가 일부 복원하긴 했지만, 몇 개의 방과 기둥만 흔적을 말해 줄 뿐. 궁전 구조의 원형을 추정한 조감도를 봐선 미로이긴 했으나, 미노타우로스가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이카로스가 날개를 달아 탈출해야만 할 정도로 그렇게 복잡하진 않았다.

리흐노스타티스의 크레타 민속박물관. 크레타 전통 양식의 주택과 각종 소품을 전시했다.

미궁에 앉아 미노타우로스의 신화를 되새기다

미노스왕은 크레타섬의 수도 헤라클리온에서 14㎞ 떨어진 아르하네스에 여름궁전을 지었다. 아르하네스는 미노아문명의 폐허보다는 아름다운 마을로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시골마을로 선정됐고, 마을 보존을 위해 유럽연합의 기금도 지원받는다. 그리스 정부 관광국의 알렉산드로스 콘스탄티노는 “가장 크레타적인 마을”이라고 평했다.

아르하네스는 예뻤다. 산토리니가 은은한 어촌마을이라면 아르하네스는 활기찬 농촌마을이었다. 마을을 굽어보는 바위산 기우크타스(Mt. Giouchtas)의 장엄한 기풍, 중세풍으로 포장된 울퉁불퉁한 골목길, 마을 광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카페, 광장에 번지는 짙은 그리스 커피향.

아르하네스는 예쁘지만 기묘했다. 가령 이런 기묘함들이다. 타베르나(그리스의 선술집풍 카페)는 좀먹은 양복을 입은 노인들이 뿜어대는 담배 연기로 자욱하다. 불과 몇 십 년까지만 해도 타베르나에는 여성이 들어오지 못했다. 거리의 개들은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달려들어 컹컹 짖어댄다. 한번은 새끼 길고양이를 둘러싸더니, 한 놈이 나서 낚아채고 거리를 질주했다.

기묘함은 어쩌면 원시적인 것들이다. 그럼 크레타는 야만을 표상하는가? 적어도 미궁 신화는 그렇다. 이집트 문명은 크레타를 거쳐 그리스 문명으로 전파됐다. 당시 그리스는 이집트보다 열등했다. 즉 크레타의 미노타우로스와 미노스왕은 덜 개화된 문명을 의미하며, 이를 물리친 아테네의 테세우스는 개화된 문명을 상징한다. 야만에 대한 지성의 승리, 동양을 추월한 서양, 자부심 넘치는 그리스 문명의 태동을 은유하는 것이다.

아르하네스는 남성적인 분위기의 시골 마을이다. 타베르나에는 담배 피우는 노인들이 가득하다.
사실 크레타는 유럽 문명의 탯줄인 미노아 문명을 잉태했지만, 3천년 동안 유럽 문명의 변방에 가까웠다. 크레타는 아랍과 베네치아,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독립국 그리스에 포함됐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점령되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크레타인들은 독립운동을 벌였다.

최근 들어 그리스 사람들은 ‘크레타 스타일’을 주목한다. 대표적인 게 크레타 다이어트다. 크레타 사람들의 심장질환 및 암 사망률은 낮기로 유명하다. 수도 헤라클리온에서 30여분 떨어진 말리아의 ‘칼립소 레스토랑 앤 호텔’은 크레타 요리 강습으로 유명하다. 주방장 크리스토포로스 베네리스(59)는 크레타 음식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일과 야채, 산나물이 주식이지요. 그 다음 생선을 즐겨 먹고, 고기는 삼가는 게 크레타 음식의 특징이에요. 올리브 기름을 많이 사용하고요.”

리흐노스타티스의 크레타 민속박물관에 가면, 크레타의 전원적 생활양식을 볼 수 있다. 크레타의 현악기 리라, 계피로 담은 카넬라다, 그리고 청포도밭이 있다. 야니스 매카티스(43)는 “크레타 사람들은 집집마다 청포도를 재배한다”며 “중앙정원에 포도를 길러 덩굴을 올리면, 포도덩굴은 지중해의 따가운 햇살을 가려준다”고 말했다. 크레타 포도는 신맛이 전혀 없고 달콤했다.

크레타는 서양적이되 동양적이고 원시적이되 이성적이다. 크레타의 민속춤.

요즘 뜨는 크레타식 다이어트

크레타 스타일에 주목하는 건 이성의 미궁에서 헤매는 현대인들이 원시적 순수를 찾는 건지 모른다. 크레타가 고향인 그리스인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크레타인 조르바를 절대 자유의 원형으로 등장시킨다. 조르바는 원시적이되 가장 지성적이고, 가볍되 가장 무거운 사람이다. 조르바는 말한다. “행동이 나를 삼켰지만, 나는 그게 좋아.”

크레타의 수도 헤라클리온에는 카잔차키스의 무덤이 있다. 크레타 사람들은 모두 조르바 같을까.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크레타의 신비는 지극히 깊다. 이 섬에 발을 디디는 모든 사람은 핏속으로 따스하고 온화하게 퍼지는 신비한 힘을 의식하고, 영혼이 자라기 시작함을 깨닫는다.”

크레타(그리스)=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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