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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2 18:56 수정 : 2008.10.25 21:25

새하얗게 달궈진 모습으로 전개된 하얀색 그리스의 절정은 아크로폴리스다. 파르테논 신전과 에레크테이온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 등이 모여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파르테논에서 플라카 벼룩시장까지 아나피오티카 골목길을 따라 2천년을 산책하다

아테네는 아무 매력 없이 소란하기만 했다.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로버트 캐플런은 아테네를 “새하얗게 달궈진 모습으로 전개된, 병적으로 성장한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혹평했다.

2천년 전에 지은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아테네를 굽어보지만, 사실 아테네의 대부분은 200년이 채 안 되는 신도시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 된 이래 2천년 동안 번영한 시기보다 쇠락한 세월이 길었고, 1834년에는 300채의 가옥밖에 없는 작은 도시였다.

그래서 아테네는 신화를 머금은 하얀 폐허의 기둥과 내력 없는 콘크리트 단층 건물로 구분된다. 고대와 현대가 가장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곳이 바로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 산동네 아나피오티카 골목길이다. 아테네에서 가장 그리스다운 산동네를 헤매다 무작정 내려가면 중심가인 플라카다.

아나피오티카 골목길 산책을 위해서는 아침 일찍 아크로폴리스 유적으로 출발해야 한다. 아크로폴리스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므로 개장시간을 기다려 들어가는 게 현명하기 때문이다. 아크로폴리스는 아나피오티카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다. 그러니까 아크로폴리스에 서면 아테네 시내의 어디든 내려다볼 수 있고, 아테네 시내 어디서든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볼 수 있다. 빠른 걸음으로 아침 운동을 나선 노부부, 바닥을 쪼아대는 부지런한 비둘기 그리고 비둘기를 쫓는 검둥이들이 아침 아크로폴리스 언덕길의 풍경이다.(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때다. 반드시 아침의 한적함을 즐겨보라!)

파르테논에서 플라카 벼룩시장까지.

아침 8시, 문을 열자마자 아크로폴리스는 관광객들로 분주해진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불의 문과 프로필라이아 그리고 니케 신전을 거치면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이 나타난다. 기원전 432년 전 페리클레스 시대 때 천재 조각가로 불린 페이디아스가 15년 동안 만들었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모신 곳. 기둥밖에 남지 않은 게 그리스 유적의 대부분 모습이라 이 정도면 꽤 완결된 형상을 갖춘 편이다.

다시 아나피오티카로 내려오면 제우스 신전이 기다린다. 세밀한 코린트식 기둥이 쓰러져 있거나 남아 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골목 산책을 시작한다. 처음 만나는 곳은 중앙 돔을 얹은 에카테리니 성당이다. 11세기 중엽에 지은 성당 앞 중정은 아테네의 강한 햇살을 피해 앉아 있기 좋다.

언덕 위로 올라붙었다가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내려간다. 골목은 옴팡 붙은 하얀 집과 구불구불한 계단, 그리고 원색의 그라피티로 채워졌다. 얌전한 얼룩고양이들은 골목에서 얼쩡거리고 검둥이들은 모여 낮잠을 자는 게 아나피오티카의 일상적 풍경이다. 기원전 334년에 지은 코레고스(고대 비극의 제작자) 기념비, 성 요한 성당, 성 시몬 성당을 지나는 동안 위로는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고 아래로는 플라카가 펼쳐진다.


오렌지색 작은 건물은 베네치아 통치 시기 건축된 아테네 대학이다. 투르크 지배 시대에는 관공서로 쓰였고 1837년부터 41년까지 아테네 대학으로 쓰였다. 클렙시드라 카페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면 로만 아고라다. 1세기에 세워진 도리아 기둥 사이로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로만 아고라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제우스 신전처럼 기둥만 남겨 실망스러운 유적들보다 낫다. 1세기에 지은 공중변소도 확인할 수 있으니까. 트리톤 형상의 풍향계가 있었다는 바람의 탑, 신전의 입구와 여러 상점의 초석도 남아 있다.

골목은 모나스티라키 광장에서 끝난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광장 옆에는 벼룩시장이 있다. 옛 지폐들과 쌍안경, 녹슨 자물쇠와 열쇠, 빛바랜 모나리자 그림,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 클래식 물품들이 가득 찼다.

고급 부티크 상점이 있는 플라카 거리엔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여신 아테나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과 고급 부티크가 즐비한 중심가 플라카 사이에는 세월의 간극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2천년을 내려온 것이다.

아테네=글·사진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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