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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2 18:47 수정 : 2008.10.25 21:26

산토리니 앞바다. 하얀 마을이 분화구 절벽 사이로 층층이 형성됐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재앙의 역사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모시킨 산토리니

그러니까 산토리니에는 하얀색과 파란색밖에 없다. 에게블루(Aegean blue)와 그릭 화이트(Greek white). 두 색의 대비에서 약간의 채도와 명도를 가감해 변환할 뿐이다. 포카리스웨트 같은 색깔, 그리스 국기 같은 색깔이 태양빛을 맞고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마을 뽑기 대회를 연다면, 분명히 메달권에 들어갈 산토리니는 에게해의 작은 섬(76㎢)이다. 크레타섬의 수도 헤라클리온에서 쾌속정을 타고 두 시간이면 가는 곳, 아테네의 피레우스항에서는 네 시간이면 닿는 곳.

아티니오스항(카페리가 정박하는 신항구)에 내리면, 산토리니는 스핑크스처럼 거대한 바다 절벽으로 떠 있다. 버스는 여행자를 모아 스위치백으로 절벽을 기어오른다. 그리고 빠짐없이 두 마을로 향한다. 산토리니의 가장 큰 마을 피라(그래봤자 인구는 2천명) 그리고 이아, 700명이 사는 산토리니의 전형적 풍경을 선사하는 마을.

구 항구에서 피라 마을로 오르는 계단. 당나귀를 타고 오른다.

화산과 쓰나미, 지진으로 얼룩진 지중해의 파괴자

사실 산토리니는 지중해의 말썽꾸러기이자 파괴자였다. 크레타섬의 미궁 크노소스궁을 잿더미로 만든 것도 바로 산토리니였다. 기원전 1650년 산토리니는 수차례의 화산을 내뿜었다. 30㎢를 뒤덮을 만한 마그마를 배출한 뒤, 섬은 스스로 붕괴했다. 이어 거대한 쓰나미가 지중해로 번져나갔다. 이스라엘까지 번진 파도는 크레타섬도 휩쓸었다. 미노아 문명도 그때 스러진 것이다.

이렇듯 산토리니는 인간친화적인 곳이 아니다. 기원전 3000년부터 시작된 섬의 문명도 지진에 의해 사라졌으며(아크로티리에서 유적이 발견된다), 기원전 236년과 197년, 그리고 726년에도 산토리니는 불의 구덩이였다. 불과 50여년 전인 1956년에도 리히터 규모 7.8의 지진으로 섬은 요동쳤다. 마을은 또다시 폐허가 됐다. 산토리니의 상징인 이아 마을도 인구가 9천명에서 500명으로 서서히 줄었다.

산토리니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지중해 문명이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그리스 신화의 석상들.
하지만 그 뒤 르네상스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폐허를 복구하면서 자신의 집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꾸몄다. 기하학적 대칭과 단순화한 건물, 그리고 하얀색과 파란색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색을 사용해 산토리니는 부활하기 시작했다. 이아는 물론 피라 마을은 ‘산동네 리조트 타운’으로 발전했다. 다닥다닥 붙은 절벽의 집들엔 수영장이 들어서고, 그 안엔 동굴을 판 스위트룸이 탄생하고, 골목은 카페 테라스로 변모했다. 피라와 이아의 집들은 모두 에게해만을 바라본다.


크루즈 승객이 내리는 구 항구, 피라 스칼라부터 계단을 세면서 골목을 올랐다. 계단에는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로 숫자가 써졌다. 모두 587계단이다. 당나귀도 계단을 오른다.(절벽이기 때문에 항구에서 마을까지 자동차로 오를 수 없다) 피라의 골목은 아테네 아나피오티카보다 소담하고 어지럽지만 단아하고 원색적이다. 하얀 담장에 핀 장미는 빈 캔버스에 장미를 그려놓은 것 같다. 마네킹은 잉크블루빛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다. 전기계량기에 옷이 걸려 있고, 연노란 담벼락에는 울긋불긋한 숄이 진열돼 있다. 이럼으로써 골목의 벽과 에게해는 각각 하얗고 파란 캔버스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거기에 물건을 걸어두거나 꽃을 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아 마을의 해질녘 풍광. 지중해의 늙은 햇살이 하얀 마을을 감싼다.
피라에서 북쪽으로 11㎞로 떨어진 이아 마을은 피라보다 아담하다. 이아의 집들은 피라보다 더 위태롭게 절벽에 붙어 있어서, 마치 낭떠러지에 둥지를 튼 갈매기를 연상시킨다. 지그재그로 난 절벽의 골목길을 여행자들은 산양처럼 오른다. 늦은 오후 이아의 골목길에서 흐느적거리다가 지는 해를 확인하고 피라로 돌아가는 게 산토리니 여행자들의 일상이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레스토랑 테라스에서의 정찬, 타베르나(그리스식 카페)에서 맥주 한 잔, 기념품 가게와 부티크 숍의 아이쇼핑. 가을 저녁, 피라의 하얀 골목길은 누런 백열등을 맞고 몽환적인 빛을 연출한다.

산동네 리조트 타운에 여행자들의 낭만이

그리스는 잔혹할 만큼 적나라한 빛을 과시하는 나라다. 산토리니는 그리스적 색채를 과장한 테마파크다. 마을 사람들은 따로, 또 같이 색을 칠했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마을 뽑기 대회에서 산토리니는 분명 금메달을 따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재앙의 역사가 산토리니에게 준 전화위복이자,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애정이자, 낭만적인 여행자들의 덕택일 것이다.

산토리니 지도

산토리니=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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