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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5 18:58 수정 : 2008.10.18 14:27

충주 하늘재 밑 미륵리 절터엔 석굴 안에 세운 미륵대불입상(보물 96호)과 오층석탑(보물 95호)이 꿋꿋이 버티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계절 따라 날씨 따라 다른 정취 물씬… 옛 절터 어떻게 찾아갈까

폐사지는 단순히 망가지고 무너진 옛 절터가 아니다. 한때나마 시대의 ‘중심’이 되어 사상과 문화의 ‘텃밭’ 구실을 하던 곳들이다. 오늘의 눈으로 다시 살피고 다가가면 언제라도 오롯한 연꽃 향기를 되뿜어내는 문화의 ‘부존자원’인 것이다.

폐허조차도 아름다운 그곳. 이 땅에는 약 3천개가 넘는 폐사지가 있다. 지도상에 나와 있는 곳만 100곳이 넘는다. 현존하는 큰 가람들의 화려한 단청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5천년 역사의 그루터기와 같은 폐사지들이 세월의 지층에 사금파리 조각처럼 박혀 있다.

충주 청룡사터를 찾은 장용철 문화복지연대 공동대표. 문화복지연대 제공
인터넷 등 통한 정보 수집은 필수

폐사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어제를 통해 오늘을 다시 보려는 역사 공부이다. 대개의 현존 사찰들은 우람한 건물과 사람에 가려 그 터에 그렇게 서 있는 까닭을 다 물을 수 없지만, 폐사지는 묻는 만큼 답하고, 보려는 만큼 보여준다. 폐사지에는 매표소도 없다. 그런 만큼 주인 없는 석불에 공양할 것도 근처의 풀꽃 한 줌이나 돌탑에 얹을 돌멩이 몇 개면 된다.

폐사지에도 신도가 있다. 오늘도 폐사지의 매력에 빠져 산문 없는 절터를 들락거리는 이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벌레들의 독경 소리를 원음으로 듣거나, 오체투지하는 갈대들과 보폭을 맞추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달개비꽃, 찔레꽃의 웃음을 원색의 만다라로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네들의 공부도 깊어져 매연에 찌든 가슴은 비워지기 마련이다.

숨은그림찾기와도 같은 폐사지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앞서 간 이들의 독백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급하다고 준비 없이 함부로 집을 나서지 말아야 한다. 폐사지 감상법에도 단계가 있고 요령이 있다. 청계산이나 도봉산 오르듯 물병 몇 개 챙겨 떠날 일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폐사지 여행의 필수품은 미리 꼼꼼하게 수집한 정보다.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찾아가도 말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문화유산 답사기 같은 자료들을 통해 목적지의 내력을 알고 가야 한다.


둘째, 한 장짜리 전국지도 달랑 들고 가는 자세로는 안 된다. 지역의 지형지물이 상세히 나온 최신 지도가 필요하다. 국토의 곳곳이 개발 중이거나 형질 변경 중이기 때문에 최근의 정보가 아니고는 안내문조차 없는 폐사지들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셋째, 계절과 일기에 따라 방향과 목적지를 정하는 안목도 필요하다. 예컨대 비 오는 날은 비와 인연이 많은 원주 부론 법천사지의 지광국사 현묘탑비를 돌아보는 것이 좋고, 황사바람 불거나 봄바람 살가운 계절엔 여주 혜목산 고달사지로 달려가 수령 수백년의 산수유꽃들이 무너진 절터를 어떻게 수놓는가를 살피는 것이 좋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가을 햇살 부서지는 날은 합천 영암사지의 은행나무 단풍이 일제히 쏟아지는 장관이 제격이고, 한겨울 눈바람 부는 날은 설악산 미천골 선림원터나 개똥지빠귀 펄펄 나는 진전사지를 찾아가는 것도 제맛이 있다.

폐사지 여행의 마무리는 훌쩍 다녀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폐사지의 문화적인 가치와 그곳에 남아 있는 ‘독거 문화재’들을 어떻게 살필까 하는 ‘문화재 복지’의 안목이 중요하다.

폐사지 순례객들이 양양 미천골 선림원터의 홍각선사 부도비(보물 446호)를 살펴보고 있다. 문화복지연대 제공
‘독거 문화재’를 보살피는 마음까지 챙겨오길

그리고 지금은 무분별한 개발에 훼손되고, 도굴범에게 시달리는 폐사지 문화재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시급한 시점이다. ‘1폐사지 1지킴이’ 운동 같은 인식 확산 작업이 절실하다. 또 폐사지보호특별법 같은 법 제정을 통한 제도적 보호장치도 하루빨리 마련돼야 할 것이다.

누가 이런 일들을 도맡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 답사 여행의 도반인 들짐승과 풀벌레들에게 문화재의 안부를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땅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나서서 지키고 보존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장용철(시인·문화복지연대 공동대표)

절터 용어 설명

부도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 부도·부도탑 부도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자그만 석조물이다. 법당 앞에 자리잡는 석탑과 달리 절 들머리나 뒤쪽 산자락에 주로 세워져 있다. 신라 말~고려 때까지는 팔각형 몸체에 지붕돌을 얹고 화려한 조각을 곁들인 부도가 많았으나, 조선시대 이후 종형·항아리형 부도가 일반화됐다.

◎ 부도탑비 부도의 주인공의 공적을 기려 부도 옆에 함께 세운 비석이다. 고승과 그 제자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 당간지주 사찰에서 행사가 있을 때 절 앞에 세우는, 일종의 깃대인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설치한 석조물이다. 두 개의 돌기둥을 마주 보게 세우고 그 사이에 나무나 철재로 만든 당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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