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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1 18:01 수정 : 2008.10.03 14:45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길 풍경을 바꾸는 주차요원과 고급승용차들, 뚜벅이는 편치가 않네

최근 새롭게 주목받는 가회동에는 거리 분위기의 변화 못지않게 발레파킹 같은 이질적인 풍경이 시선을 끈다. 특히 재동초등학교에서 정독도서관에 이르는 이 나지막한 둔덕길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강북의 소담한 지형과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세련되고 정제된 도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인근 한옥과 어울려 한껏 풍치를 자랑하는 현대 건축들, 한사코 정통임을 자랑하는 타이·이탈리아 등의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들. 무엇보다 이곳의 변화를 가장 눈에 띄게 보여주는 것은 건물 앞 블랙박스를 본거지로 삼는 ‘주차요원’들이다.

발레파킹은 단순한 주차대행 서비스가 아니라 거리의 문화적 풍경이다. 가회동은 오래된 주거지역이라 가로변 건물에 변변한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발레파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길 양편에 들어선 가게들을 보라. 맛 좋고 운치 있기로 소문난 고급 레스토랑들이다. 가회동에는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근사한 장면들이 가득하지만 막상 뚜벅이들에겐 쉽게 발을 들일 공간이 별로 없다.

발레파킹은 가회동 접경부인 이 거리가 계층화된 도시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또렷한 증거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 가회동 인근의 골목길은 중형 세단들의 발레파킹에 은밀히 점거 당한다. 서성거리다 힐끔 안을 들여다보자니 말끔한 양복차림의 ‘주차요원’ 눈치에 영 편치가 않다. 네 바퀴 중 두 바퀴를 인도에 걸친 불량한 차들 때문에 걷는 즐거움도 반감된다. 인사동이 대중문화와 천민자본주의가 짬뽕된 소비공간이라면, 가회동은 상류층의 문화예술의 기호가 고급 소비문화와 결합된 곳이다. 본래 강북 도심의 오래된 주거지역으로 옛 가로구조와 경관을 잘 간직하던 가회동이 새로운 자본의 유입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앙증맞은 내 자전거를 타고 이곳 레스토랑에 온 적이 있다. 자전거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발레파킹 요원에게 “어디다 세우면 될까요?”라고 물었는데, 내 행색이 레스토랑과 썩 언밸런스였는지 ‘썩소’를 보이더니 “그 자전거가 그렇게 비싸요?”라고 되물었다. 물론 도시의 소비공간이 계층화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것을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건물엔 주인이 있어도 거리엔 주인이 없다. 가회동의 신 풍류가 동네의 아름다운 말뜻처럼 모두에게 ‘기쁘고 즐거운 모임’(嘉會)이 될 수는 없을까? 내 자전거도 발레파킹 좀 부탁한다.

글 박성진 건축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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