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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03 18:47 수정 : 2008.09.06 20:02

미용실을 즐겨라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미용실을 즐겨라

그거 아세요? 역사가들이 추정하는 최초의 헤어살롱에는 남자들만이 이발사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는 걸. 헤어살롱의 첫 개업은 기원전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갖은 허튼소리와 소문의 진원지로 천대받기도 했다지요. 바로크 시대에는 멋쟁이 ‘마카로니’들을 위한 치솟은 가발 제작으로 유명했고, 20세기 초 파마약과 염색약의 발견으로 ‘재클린 케네디 헤어’를 꿈꾸는 여성들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문화의 흥망성쇠에 따라 헤어살롱은 긴 역사를 항해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20년 7월 ‘경성미용원’이라는 상호로 신문광고를 한 곳이 있습니다. ‘경성미장원은 얼굴을 곱게 하는 곳이올시다!’라고 말이죠. 30년대 ‘오엽주 미용실’에서 전기파마를 하려면 쌀 두 섬이나 내야 했답니다. 경제·사회·생활과 미용실의 상관관계에 대해 백서를 쓰라고 해도 가능할 정도로 이야기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렇다고 이번주 〈esc〉가 미용실의 장구한 역사를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요새 티브이나 인터넷에서 ‘빅뱅’ 지(G)-드래곤의 반삭헤어와 강동원의 긴 단발, 엄정화의 디스코 단발을 보신 분이라면 헤어스타일이 얼마나 힘이 ‘쎈’지 느끼실 겁니다. 파격적이고 신선하니까요. 이런 도발적인 변화의 한편에서 우리는 여전히 2 대 8 가르마나 머리를 질끈 묶는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누구는 미용실을 즐기지만, 누구에겐 여전히 낯설고 파마약 냄새 나는 공간입니다.

헤어스타일의 변화에 뒤질세라 우리의 미용실도 놀라운 변화들을 경험했습니다. 변화에 앞장서는 헤어 디자이너들은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그래서 취재 약속도 손님이 뜸한 오전 9시 반으로 잡아야 했습니다. 손님을 맞아 착착 굴러가는 미용실은 마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 같기도 했습니다. 시각에 따라 달라 보이는 풍경, 여러분들에게 미용실은 어떤 그림입니까.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모델 강호·서진이




‘토니앤 가이’의 김양희 실장(오른쪽).

뻔하고 진부한 아저씨가 될 것인가

가르마와 바리캉이 사라진 시대, 남자들에게 미용실은 도전과 선택의 공간

‘토니앤 가이’의 김양희 실장(27)에겐 단골 남자 손님이 많다. “최근에는 엠시(MC)몽처럼 해달라는 초등학생들이 많았어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과감한 스타일도 많이 했죠.” 헤어숍 브랜드인 ‘토니앤 가이’는 젊은 남성들이 많이 찾는 헤어숍 중 하나다. 이탈리아 출신 형제 디자이너가 문을 열어 유럽 스타일로 이름났다.

‘부담스러운 놈’으로 찍힐 반삭 스타일

요즘 남자들은 미용실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어갈까. “남성 커트는 커트선이 가볍게 내려오면서 가르마 선을 ‘숨기는’ 자연스러움이 추세예요. 자기 두상의 장단점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손님들이 많죠.” 김씨는 남자 손님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그와 동시에 ‘가르마’ ‘바리캉’의 시대는 갔다고 단언한다. 김씨는 헤어스타일을 고민하는 남자라면 자신의 얼굴형, 모발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직업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프랑스 거리 곳곳에 그려진 고양이 ‘또마’가 헤어살롱 ‘3Story’ 바닥에도 그려졌다.
20∼40대 젊은 층 남성들에게 미용실은 도전과 선택의 장소다. 그들은 특별히 ‘앞서가고’ 싶어서 그곳에 가지 않는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하나의 재미와 ‘뻔한’ 아저씨가 될 수 없다는 가벼운 신념을 따른다. 오랜 기간 패션 일을 해온 오피스 에이치(h) 황의건(40) 대표는 유행에 민감한 대표적인 메트로 섹슈얼이다. 그는 배우 이병헌의 헤어스타일을 맡고 있는 디자이너 민형일씨에게 100% 믿고 자신의 스타일링을 맡긴다. 얼마 전에는 디자이너가 그에게 ‘반삭’ 스타일을 시도했다. “핫한 걸 시도한 건 좋았지만 막상 다니려니 조금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한다.
다양한 전시, 퍼포먼스, 락공연이 열리는 ‘3Story’ . ‘3Story’ 제공

아직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과감한 헤어스타일은 그가 ‘어떤 놈인지’ 곁눈질하게 한다. 시선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황씨는 “10년 전만 해도 염색한 사람이 티브이에 나올 수 없었다. 그만큼 획일적이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고무적인 다변화의 과정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서울 강남과 신촌 일대를 중심으로는 남자 헤어 디자이너들의 성장이 특히 눈에 띈다. 그런 만큼 자기만의 ‘선생님’을 찾는 남성들도 늘었고 ‘원장님’이 되려는 입문자들도 많다. 1981년 명동에서 남자 원장으로서 미용실을 열었던 박준, 지난여름 ‘영향력 있는 패션 인물’로 뽑힌 현태 등 소위 ‘스타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인 동시에 프랜차이즈 개념의 살롱을 운영하는 전문 경영인이다.서경대학교 미용예술학과 김성남(36) 교수는 “강남 등지의 헤어살롱엔 억대 연봉의 디자이너들도 출현했다. 많은 연봉과 좋은 대우를 받는 전문 직종으로 떠오른다”며 미용의 세계에 남자들이 야심차게 뛰어든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기존 미용실 문화를 바꾸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라뷰티코아의 한필수(33) 팀장은 “왜 한국 남자들의 머리는 거의 똑같은 모양일까” 고민하며 헤어 디자이너가 된 경우다. 그는 한국 남성들의 똑같은 헤어스타일은 극복 대상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로 똑같은 집단 스타일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80년대에는 귀티 나고 깔끔해 보이는 상고머리, 여성들의 한껏 부푼 파마머리가 강타했다. 숍의 교육팀을 이끄는 한씨는 손님의 머리를 손질할 때 대화의 50% 이상은 반드시 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나머지 40%는 편안한 얘기를 나눈다. 여성들의 잡담 정도로 치부되는 ‘미용실 토크’를 한 팀장은 고객만족 대화라는 주요한 서비스로 생각한다.

재미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비상 중

미용실에서는 새로운 도전과 선택이 가능하다.

‘은하수’ ‘아카시아’처럼 소녀 같은 느낌을 주던 미용실 간판은 이제 옛 느낌이 된 지 오래다. 미용실은 네일아트를 겸한 복합 미용공간, 복합 문화공간을 욕심낸다. ○○헤어, ○○살롱, 의미를 알 수 없는 외래어 등으로 포장한 것 또한 미용실의 사업 확장과 무관하지 않다. 남자가 원장인 몇 미용실들은 복합 문화공간이라는 구호를 강하게 내걸었다. 샌드위치, 떡볶이, 김밥을 무료로 제공하는 ‘리챠드 프로헤어’를 비롯해 ‘이민헤어’는 “재미있는 미용실”을 추구하겠노라 말하며 셀카-포토를 인화해주는 포토존도 운영한다. ‘스리스토리’(3Story)는 아예 한 층을 미술전시 같은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한다. 사각사각 움직이는 가위 옆에서 기타를 튕기는 록 공연이 열리고, 고개 숙인 채 읽던 여성잡지를 대신해 전시를 볼 수 있다. 남자들에게 미용실은 어쩌면 황야의 사막처럼 뛰어들어 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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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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