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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13 18:47 수정 : 2008.08.14 23:35

나의 무서운 베스트 프렌드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씨네21>과 함께하는 불량추억 공모전 수상작 2등 김수진
동네 짱 노릇을 하다 슈퍼울트라 짱과 얽히면서 무시무시한 사건에 연루되는데…


지금 내 나이 스물셋, 군대를 막 다녀온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성이다. 허나 군생활 2년보다 힘들었고 추억으로 남은 사건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이 남아 있는데 …, 어언 11년 전으로 돌아간다.

내 나이 12살, 초등학교에서 톱 학년이 된 나,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는 내가 대장 격으로 통했고 나를 따르는 동네 동생들도 적지는 않았다. 피아노 의자 아래 숨겨 뒀던 500장의 프리즘 카드는 옆 동네에서도 소문이 자자했고, 특별히 싸움을 잘하지는 않았지만 배짱이 좋았던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은 동네 전체에서 우리 아버지가 유일했다.

‘고등학교 형들에게 복수하기’ 프로젝트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자리 배정을 받으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내 뒤에 앉은 이강산이라는 놈은 발육 상태부터 초등학생과는 급이 달랐고 내가 살던 부평을 넘어 인천에서도 알아주는 말썽쟁이였다. 이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고1때까지 내 인생은 꼬여만 갔다. 강산이는 여자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여자애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 다른 남자애들을 많이 괴롭혔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자리 배정을 받고 나서부터 그 괴롭힘을 당하는 인간이 나로 지목된 것이다.

수업시간마다 강산이한테 뒤통수를 맞으면서 나는 이를 꽉 물고 ‘오늘만 버티자, 오늘만 버티자’고 인내했지만, 하루는 폭발하고야 말았다. 청소시간에 달려와 내 뒤통수를 기분 나쁘게 치는 강산이의 코를 냅다 갈겨버린 것이다. 한 방에 뒤로 넘어간 강산이의 코에서는 피가 났고 나는 본능처럼 뒷걸음을 치다가 벌떡 일어난 강산이에게 개 맞듯 두들겨 맞고야 말았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 친구들의 냉담함 속에서 이빨 하나가 뿌리째 뽑혔고 쌍코피는 물론이요 한쪽 눈은 잘 떠지지도 않는 꼴이 됐다.

하지만 일은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꼬였다. 학교로 온 강산이 부모님이 역시 학교에 온 우리 부모님에게 사과하자 무서운 우리 아버지는 얘는 맞아도 싸다면서 이제 강산이와 친하게 지내라고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 후 강산이와 나는 서먹하지만 같이 축구도 하면서 졸업을 했고 서로 다른 중학교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삐삐로 모르는 번호가 찍혀 왔는데 전화를 해보니 강산이었다. 2년 만에 만난 강산이는 친구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중2들이 어른 티가 나고 한 명은 목에 칼자국까지 나 있었다. 무서웠지만 친해지고 나니 의리도 장난이 아니고 약속도 칼같이 지키는 진정한 사내다운 녀석들이었다.

문제는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강산이와 다시 만나게 되면서 시작됐다. 이 친구가 고3 형들에게 건방지다고 엄청 맞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12명의 친구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우리들은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면서 긴급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왜 내가 여기 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 여기에 끼면 안 될 존재였다. 당시 나는 강산이의 초등학교 친구일 뿐, 학급에서도 존재감이 전혀 없는 조용한 애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담임선생님은 악명 높은 학생주임이었다. 대장 격인 강산이는 힘을 모아서 형들에게 복수하자고 했다. 나는 속으로 왜 또 저래… 궁시렁댔지만 다른 친구들은 이미 엄청난 긍정과 의리로 똘똘 뭉치고 있었다. 그놈의 의리 때문에 나 역시 할 수 없이 강산이의 복수전에 가담하게 됐다. 작전이란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귀가하는 상급생을 무작정 때리고 돈을 뺏는 거였다. 4일 동안 그렇게 10명 정도를 때렸고 언제나 나는 망 보는 일을 했다. ㅠㅠ.

며칠 뒤 종례시간에 무서운 담임이 요새 불량배들이 이유 없이 패고 돈을 뺏는다면서 맞은 학생들이 교실을 다니며 불량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 나는 이제 그만하자고 11명한테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커녕 밤 9시에 학교 앞 편의점으로 오라는 통보만 받았다. 진짜 이때 나가는 게 아니었는데… 휴.

편의점에 모인 12명은 컵라면을 먹으면서 먹잇감(?)을 물색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경찰 3명이 오는 게 아닌가. 우리는 당황한 나머지 컵라면을 먹다 말고 조심조심 다른 데로 가고 있는데 순간 경찰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면서 우리를 쫓아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달리기가 느린 나를 포함해 5명이 잡혀 들어갔다.

경찰 보자마자 제 발 저려 도망가다

난생 처음 와본 경찰서. 들어오자마자 눈물밖에 안 나왔고 경찰서로 달려온 부모님과 담임은 다만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이 사건은 훈방조치 되면서 끝났지만 이후 고등학교 3년 동안 나를 건드리는 애들은 없었다. 이강산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바뀐 것이다.

그때 이후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간 나는 지금 어엿한 복학생이 됐고, 강산이는 부모님의 애정으로 마음을 잡고 직업군인이 됐다. 생각해보면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그때 그 시절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강산이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멋진 친구고 진짜 남자다. 하지만 강산아, 이거 하나만은 알고 있어라. 너는 나의 영원한 ‘무서운 베스트 프랜드’라는 걸 ^^;;;

김수진/인천시 부평구 갈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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