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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06 18:54 수정 : 2008.08.10 10:11

모션센서를 활용해 뛰어 놀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닌덴도 위. 사진은 ‘위 스포츠’의 복싱게임을 즐기는 모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디지털로 구현한 아날로그적 감수성, 30대 직딩도 닌텐도에 미칠 수밖에…

만약 지구 멸망을 앞두고 몇 개의 짐만 가지고 장거리 우주선에 탑승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기꺼이, 그 얼마 안 되는 짐 중에 닌텐도 디에스(DS)를 우겨넣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손바닥만 한 이 게임기는 보면 볼수록 흥미롭고 하면 할수록 매력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해보질 않았으면 말을 말아’야 할 정도다. 그런데 닌텐도 디에스는 오직 게임기다.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가 없다. 게임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흔한 피에스피(PSP, 플레이 스테이션 포터블)처럼 피디에이(PDA)나 이동식 디스크로도 쓸 수가 없다. ‘소프트웨어를 넣고 게임을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다. 그야말로 솔직하다. 거기엔 진정성마저 느껴진다.

오,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은 없구나

방향키와 기능버튼이 4개나 있지만 이 게임기에는 터치스크린이 장착되어 있다. 손대면 토옥하고 반응한다. 그걸로 게임을 한다. 두뇌의 나이를 측정하는 일 외에도 ‘젤다의 전설’이나 ‘수퍼마리오’나 ‘리듬히어로’ 같은 게임을 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찍어라. 긁어라. 슬라이딩해라. 캐릭터는 펜 끝에서 살아난다. 그건 참 이상한 체험이다.

비디오 게임은 언제나 체감도의 수준에 따라 인기도가 나눠졌다. 90년대에는 캡콤이 만들어내던 오락실용 게임기구가 유행했다. 자동차 운전을 하거나 전투기를 조종하는 걸 ‘진짜처럼’ 재현해내던 것이 유행이었고 비디오 게임기의 최신 트렌드를 좌우했다. 오락실에서는 랠리 게임을 하려고 500원을 손에 꼬옥 쥐고(물론 다른 게임보다 비쌌다)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다. 동시에 패미콤과 게임보이 같은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도 인기를 얻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그 정점이었다. 그러다가 모바일 기기가 등장하고 피디에이니 피에스피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읽던 책 대신 피에스피를 꺼냈다. 21세기의 오전 오후 풍경이었다.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는 30대 ‘직딩’이 되고 싶었지만 남들과 똑같은 ‘30대’는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피에스피 대신에 닌텐도 디에스를 선택했다.

닌텐도 디에스를 고른 건 순전히 이게 ‘터치’방식의 게임기여서다. 닌텐도 디에스의 게임 소프트웨어는 지극히 단순하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민등록증의 나이보다 ‘두뇌나이’에 집착하게 만든 건 두뇌나이가 40대로 밝혀진 장동건이기도 했지만 닌텐도 디에스 그 자체였다. 코멘트도 없는 광고를 보고 난 뒤 사람들은 저게 게임기인지 뭔지 좀 궁금했던 것이다. 순서에 따라 스크린을 콕콕 누르면서 게임을 진행한다는 원칙은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메커니즘 위에 존재한다. 그래서 스타일러스 펜을 꼭 잡고 스크린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면서 우리는 경탄하게 된다. 찍고 긁고 문지르는 아날로그적인 감수성 밑에는 복잡하고 기괴한 공식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기술이 존재한다.

게다가 닌텐도 디에스의 소프트웨어 중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은 없다. 두뇌나이 어쩌고와 영어 트레이닝처럼 생활밀착형 게임들을 비롯해 동물의 숲이나 리듬히어로 같은 캐주얼 게임이 대세다.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변칙적인 패턴을 체험하는 게임성이 돋보이는 소프트웨어들이다. 직접 몸을 던지고 팔을 휘두르며 가상 테니스와 복싱 경기 등을 하는 위(Wii)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닌텐도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디지털로 구현하는 것으로 비디오 게임을 재정의했다. 그건 스타벅스 커피 같은 것이다. 일종의 문화적 혁신이다.

3세대 게임기가 화두였던 최근, 닌텐도야말로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꿈꾸지 못할 위치에서 전혀 새로운 ‘비디오 게임’을 내놓는다. 소프트웨어가 문제가 아니다. 하드웨어가 문제인 것도 아니다. 문제는 감수성이다. 누르고 찍고 긁고 문지르고 다시 찍는 이 행위들이 코 앞에서 투박한 그래픽의 캐릭터들을 움직이게 만들 때, 우리는 왠지 모를 향수와 함께 21세기 그 자체를 체험하게 된다. 그건 기묘한 감수성이다. 30대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강스트로크, 티브이는 박살내지 말지어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많이 보이는 닌텐도 디에스 이용자들.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단순한 게임방식과 재미있는 터치스크린에 쉽게 익숙해진다. 한겨레21 구둘래 기자
아닌 게 아니라 닌텐도 디에스는 성인을 위한 게임기다. 오락실의 정서를 기억하거나 아날로그에 좀더 천착하는 취향의 성인들이 색깔이 고운 이 담백한 게임기를 들고 출퇴근길에 오른다. 닌텐도 디에스나 위가 중요하고 대단한 이유는 이것이 멋진 게임기라고 말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게임의 역사 같은 건 몰라도 된다는 점이다. 이 게임기가 얼마나 끝내주는 물건인지 말하는 데 필요한 건 ‘그냥 한번 해봐’ 정도면 된다. 손대면 토옥하고, 마리오가 구른다. 팔을 쭉 뻗어 위모컨(위 전용 모션 센서 리모컨)을 힘껏 휘두르면 티브이에서 멋진 강스트로크가 구현된다.

디지털 혁신의 쟁점은 결국 문화적 감수성을 어떻게 디지털로 구현할 것인가다. 그런 점에서 닌텐도 디에스와 위야말로 가장 혁신적인 게임기, 그러니까 ‘게임기가 아닌 것 같은 게임기’다. 이게 닌텐도 디에스와 위의 진짜 매력이다. 그러니 오늘은 위모컨의 스트랩을 조인 다음-스트랩 착용을 안 했다가 위모컨이 날아가 멀쩡한 대형 티브이를 박살내는 동영상이 유투브에 널렸다-‘마리오와 소닉’ 베이징올림픽을 완승해야겠다. 하루라도 빨리,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기필코.

글 차우진/ 자유기고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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