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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06 18:45 수정 : 2008.08.10 10:11

애플의 세련된 디자인 감각을 보여주는 아이팟터치의 커버플로(왼쪽). 멀티터치트랙패드를 장착한 맥북에어를 소개하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오른쪽). 에이피연합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아이팟에서 맥북 에어까지 몸짓을 일깨워주는 터치의 진화

어떤 음악을 들을까 고르는 일련의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앨범을 살 때 앨범 재킷 디자인도 중요하게 여기는 음악 애호가인 나 같은 사람에게, 버튼 몇 개만 꾹꾹 누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엠피3 플레이어 시대는 절대 반갑지 않다. 편리함을 내주는 대신 음악을 듣기까지의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모두 가져가 버리니까. 그렇지만 애플 아이팟이 있다면 한번쯤 살아볼 만하다.

첫번째 아이팟은 2004년 내 손에 들어왔다. 록밴드 ‘유투’(U2) 멤버 4명의 사인이 들어간 20기가짜리 까만색 아이팟, 일명 ‘유투팟’이었다. 나를 가장 흥분시킨 것은 가운데 동그랗게 들어간 새빨간 클릭 휠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틱틱틱’ 소리를 내며 목록 아래쪽을 었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위쪽을 타고 올라갔다. 어떤 음악을 들을까 고민하는 생각의 속도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와 일치했다. 백미는 음량을 조절할 때였다. 손가락을 휠에 대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 기분은 마치 낡은 전축의 둥그런 볼륨 휠을 돌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난해 9월 아이팟 터치가 세상에 나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16기가짜리 아이팟 터치를 질렀다. 아이팟 터치가 손에 들어오자마자 아이튠스를 열고 음악 파일과 앨범 재킷 이미지를 넣었다. 드디어 감동적인 커버플로(Cover Flow) 기능을 ‘만질 수’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였더니 시디장에서 손가락으로 시디를 하나씩 확인하며 고르는 것처럼 앨범 재킷이 차례로 넘어갔다. 앨범을 100장 넘게 넣어 놓고 어디든 아이팟 터치와 함께했다. 시디장을 늘 가지고 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엠피3 플레이어 시대와 함께 사라졌던 앨범 재킷도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아이팟 터치 안에서 음악이라는 말은 단순히 음악 파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모든 행동을 포괄하는 말이 됐다.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아날로그적 즐거움에 호강했던 내 손가락들이 최근 다시 흔들린다. 지금 쓰는 맥북의 깔끔한 디자인은 좋지만 맥북만으로는 애플이 구현하는 기능을 다 누리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투정이다. 이게 다 맥북 에어의 멀티 터치 트랙패드 때문이다. 멀티 터치 트랙패드 위에서는 손가락 두 개로 화면의 축소와 확대, 회전까지 할 수 있고, 손가락 세 개를 이용해 오른쪽·왼쪽으로 밀면 ‘앞으로’·‘뒤로’ 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손가락 움직임은 종이를 넘기거나 뭔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몸을 앞으로 바짝 당기는 행동을 연상시킨다.

‘터치’가 애플과 함께 진화를 거듭했던 것은 손가락의 직관성과 아날로그적 과정의 즐거움을 굳게 믿는 애플의 신념 덕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의미 없는 터치가 아닌 애플이 수년간 보여준 것처럼 자연스럽게 퇴화하는,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몸짓을 일깨워주는 터치가 아닐까.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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