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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16 17:47 수정 : 2008.07.18 15:12

여름이다, 록 페스티벌이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저 멀리 보이는 무대에서 드럼 소리가 들려온다. 드럼 소리와 함께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힘차게 뛰는 심장 부근 어딘가에서 묵직한 베이스 연주가 시작된다. 귓바퀴를 타고 귀를 울리는 날카로운 기타 연주까지 합세하면, 드디어 록 페스티벌의 시작이다. 록 페스티벌은 언제나 여름이다. 가장 뜨겁고 가장 시원한 계절 여름은 열정 그 자체인 록 페스티벌과 동의어다.

록 페스티벌 공연장의 풍경은 늘 어수선하다. 펑크록 밴드는 무대를 운동장 삼아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하드록 밴드는 스피커에 발을 올려놓고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브릿팝 밴드는 무대 한가운데 서서 한 손을 높이 들고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관객을 향해 좌우로 손을 흔드는 힙합 뮤지션과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턴테이블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디제이도 빼놓을 수 없다. 무대 바깥에도 비슷한 모습이 펼쳐진다. 무대 앞에서 함성을 지르며 뛰어오르는 사람부터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 공연장 구석에 의자를 펴놓고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사람까지 페스티벌에 모인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즐긴다. 공통점이라면 딱 한 가지, 손목에 팔찌처럼 찬 입장권뿐이다.

록 페스티벌 공연장의 공기는 특별하다. 누가 공기에 약을 탔을 리도 없는데, 그곳에만 가면 친절해진다. 괜히 웃음이 나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한다. 땀이 나도 짜증이 나지 않고, 비가 와서 질퍽해진 땅바닥 위에서도 잘 뛰어놀고,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개의치 않는다.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나’ 중에 가장 자유로운 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바로 록 페스티벌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수많은 록 페스티벌이 각자 최고의 출연진과 무대를 준비해놓고 관객들을 기다린다. 올여름에는 온갖 고민과 걱정, 눈치, 스트레스 등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은 잠시 옷장에 넣어놓고 록 페스티벌에서 잊지 못할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단, 무대 위 록 밴드든, 옆에서 함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이든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된 마음만은 잊지 말고 꼭 챙겨 가자.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제공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
일러스트레이션 경연미



지난해 펜타포트에서 신나게 페스티벌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 펜타포트 제공

펜타포트냐 서머브리즈냐

이토록 많고 이토록 쟁쟁한! 야외형에서 도시형까지 록 페스티벌 전성시대

이토록 많은 록 페스티벌이 열리고, 이토록 많은 쟁쟁한 해외 뮤지션들이 우리나라를 찾은 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올해가 처음이다. ‘록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건 공연만 줄잡아 여덟 개가 넘고, 내한 공연이 아닌 록 페스티벌로 우리나라를 찾는 해외 록 밴드만도 셀 수 없을 정도다.

펜타포트의 주 무대인 ‘빅 탑 스테이지’. 펜타포트 제공
국내 공연계에 하나의 화두를 던지다

올해 열리는 록 페스티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7월 말에 열리는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이다. 올해 처음 시작하는 대규모 록 페스티벌 ‘서머브리즈’가 8월 초에 열리고, 2004년 3회 페스티벌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이티피 페스티벌’(이하 이티피페스트)도 8월 중순에 대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동두천 록 페스티벌’과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은 올해로 각각 10회와 9회째를 맞아 규모 확장과 새단장에 여념이 없다. 10월에 열리는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은 지난해 첫회를 무난하게 마치고 올해 두번째 페스티벌을 준비 중이며, 10년이 된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역시 규모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내년에도 몇몇 록 페스티벌이 준비 중이라는 얘기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록 페스티벌이 많아지면서 우리나라도 다양한 종류와 유형의 록 페스티벌이 생겨났다. 펜타포트는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이나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처럼 2~3일 동안 페스티벌 장소에 머물면서 캠핑 등을 통해 페스티벌을 즐기는 야외형 페스티벌로 자리를 잡았다. 도시형 록 페스티벌도 많아졌다. 서머브리즈와 이티피페스트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열리는 ‘서머소닉’을 모델로 서울 한복판에서 록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도시형 록 페스티벌은 교통이 편해 평일에도 갈 만하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그랜드민트 페스티벌’도 서울에서 소풍을 가듯 즐기는 페스티벌을 모토로 내걸었다.

록 페스티벌 열풍의 한가운데에는 펜타포트가 있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펜타포트는 2006년과 2007년 의미있는 성공을 거뒀다. 해외 유명 록 페스티벌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가장 록 페스티벌다운 행사를 만들어내면서 국내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아직까지 안정된 운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올해와 내년을 지내고 나면 수익성 면에서도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펜타포트의 성공은 국내 공연계에 몇 가지 화두를 던졌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펜타포트는 국내에서도 록 페스티벌이 성공한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공연기획사에는 공연이 하나의 괜찮은 브랜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록 페스티벌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공연기획사와 지방자치단체에 최근 록 페스티벌은 꽤 매력적인 공연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침체된 음반 시장의 활로를 록 페스티벌에서 찾기도 한다. 해외 록밴드나 국내 인디밴드 모두에게 록 페스티벌은 인지도를 높이는 절호의 기회다. 록 페스티벌을 통해 이름을 알린 뮤지션은 앨범 판매에서 큰 폭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상승 효과를 누린다. 음반 시장이나 뮤지션을 위해 록 페스티벌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록 페스티벌을 통해 앨범 판매나 내한 공연 등이 이뤄지고, 이를 기반으로 록 페스티벌과 음반 시장, 뮤지션이 함께 커나간다는 것이다. 록 페스티벌을 비롯한 페스티벌 문화가 하나의 주류 문화로 자리잡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록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가 30~40대가 되면서 록 페스티벌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영화제부터 지역 축제까지 다양한 축제 문화에 익숙한 젊은층에게 록 페스티벌은 이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록밴드 ‘록 타이거즈’가 지난해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는 모습.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제공
시장 초과하는 유치규모에 비판 목소리도

록 페스티벌이 긍정적인 가능성을 갖고 있음에도, 올해 유난히 많은 록 페스티벌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과연 이렇게 많은 록 페스티벌을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 우리 공연 시장의 규모와 록 음악 팬층이 두터운가 하는 것이다. 명확한 콘셉트나 페스티벌 정신 없이 유명 뮤지션의 공연을 이어붙이는 진행도 문제다. 현재 예매가 진행 중인 록 페스티벌 중 그나마 안정적인 예매율을 보이는 곳은 한두 군데뿐이다. ‘가슴 네트워크’ 박준흠 대표는 “많은 록 페스티벌이 열리지만 실질적으로 시장이 크다고 할 수는 없다”며 “크지 않은 시장을 여러 록 페스티벌이 나눠 먹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표 판매만으로 해외 뮤지션의 개런티 문제 등 경제적인 부분을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기업 후원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우리 음악사에서 유례없는 ‘록 페스티벌 풍년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지만 여름·가을이 다 지난 다음에도 ‘풍년의 해’로 남을지, 아니면 ‘풍년인 줄 알았으나 흉작의 해’로 결론이 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좋은 록 페스티벌은 절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2008년, 이 거대한 흐름이 우리 록 페스티벌 문화에 좋은 거름이 되지 않을까.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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