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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8 22:00 수정 : 2008.06.21 15:35

서울 삼성동 작업실에서 슬로건이 새겨진 티셔츠를 들고 포즈를 취한 디자이너 하상백씨.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기발한 문구에 기모노 소매까지, 디자이너 하상백이 자랑하는 특별한 티셔츠들

“티셔츠는 옷깃이 없고, 소매가 없어요. 형식적인 장식도 없죠. 신축성이 좋고 폭이 넓어요. 누구나 입을 수 있죠. 활동성도 좋아서 평소에 입을 수 있어요. 한마디로 젊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티셔츠는 낙서장 같기도 해요. 백지 같은 낙서장에 뭐든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또 디자이너의 티셔츠는 명품 브랜드의 향수 같아요. 그 디자이너의 이미지를 입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죠. 티셔츠는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옷이에요. 티셔츠로서의 생명이 끝나면 걸레로 유용하게 쓰이잖아요.”

비욘세의 손바닥에 사인펜을 긋다

디자이너 하상백(32)에게 티셔츠는 이렇게 자랑할 게 많은 친구다. 티셔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도. 그래서 그에게 그가 갖고 있는 티셔츠 중 특별한 티셔츠, 사연이 있는 티셔츠를 골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양손 가득 들고 온 티셔츠를 내려놓자마자 입고 있던 티셔츠를 가리키며 얘기를 시작했다.

“지난해 비욘세가 내한공연을 하고 홍대에서 애프터파티를 했어요. 그때 제가 비욘세에게 미니드레스를 선물했는데, 그 자리에서 제 옷에 사인을 부탁했어요. 제 이름이 적혀 있는 티셔츠였죠. 그런데 사인펜을 건네주면서 실수로 비욘세 손바닥에 사인펜으로 죽 긋고 만거예요. 그것도 유성 사인펜으로요! 물론 비욘세는 괜찮다고 했죠. 다음날 비욘세가 파티에 참석했던 사진을 보니까 손마다 사인펜 자국이 보이더라구요. 그때 사인해준 티셔츠가 지금 입고 있는 거예요.”

그래픽 디자이너인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티셔츠도 특별하다. 위에만 보면 평범한 흰티셔츠지만 아랫 부분에 재미가 숨겨져 있다. 프린트된 손의 끝에 티셔츠 단을 연결해 마치 누군가 자신의 티셔츠를 살짝 들고 있는 듯한 장식이 그 재미다.

세번째 티셔츠는 ‘프린’의 드레이핑 티셔츠. “최근에 런던에 갔다가 사온 ‘프린’의 티셔츠예요. 프린은 영국 런던의 포토벨로 마켓에서 시작해 지금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됐죠. 이 티셔츠는 드레스 드레이핑 기법을 사용했어요. 그래서 구성과 패턴이 독특하죠. 기모노 소매 같기도 해요.”


그 다음으로는 ‘EVERYTHING YOU LIKE I LIKED FIVE YEARS AGO’라는, 우리말로 ‘네가 좋아하는 모든 건 내가 5년 전에 좋아했던 거야’라는 제법 자신만만한 문구가 적혀 있는 티셔츠를 꺼내놓았다. “벨기에 앤트워프에 가서 샀어요. 티셔츠 하면 또 슬로건이 중요하잖아요. 이 슬로건을 딱 보는 순간 ‘나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문구가 너무 재미있잖아요. 티셔츠 뒷면 안쪽에는 이름을 적는 곳도 있어요.”

오른쪽 소매와 왼쪽 가슴 부분이 잘려나간 검은색 티셔츠는 다섯번째로 등장했다. 이 티셔츠는 하상백 디자이너가 아크릴 물감으로 직접 잭슨 폴락처럼 액션 페인팅도 하고, 글씨도 써넣은 것. “원래는 양쪽 소매를 다 찢으려고 했어요. 오른쪽 소매를 자르고 왼쪽 소매를 자르려는 순간 ‘북’ 소리가 나면서 가슴 부분이 찢어졌어요. 그런데 오히려 가슴 부분이 찢어지는 바람에 더 멋진 티셔츠가 됐어요. 다른 옷과 겹쳐 입어도 잘 어울려요.” 드디어 마지막 티셔츠 차례. 스웨덴 브랜드 ‘스카이워드’(SWD)의 폭이 넓은 티셔츠다. “디지털 프린트에 나염까지 해서 실험적인 느낌이에요. 벨트 등 액세서리로 연출을 할 수 있는, 실루엣이 멋진 티셔츠죠.”

(왼쪽부터)팝 가수 비욘세의 사인이 들어간 티셔츠, ‘프린’의 드레이핑 티셔츠, 리폼한 티셔츠, 재미있는 장식이 달린 티셔츠, ‘스카이워드’의 프린트 티셔츠.

색상 즐기기와 추억 만들기

하상백 디자이너는 티셔츠를 즐기는 방법으로 색상을 즐기는 것과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 두 가지를 제안했다. “패션은 즐기는 거잖아요. 입고 싶은 다양한 색깔의 티셔츠를 입으면서 색상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티셔츠는 색상을 즐기기에 딱 좋은 아이템이에요. 추억을 만드는 것도 간단해요. 작년 제 생일파티에 나이를 적은 티셔츠를 입고 갔어요. 그 티셔츠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사인이나 메시지를 받았죠. 그렇게 그 티셔츠가 제게 추억이 됐어요. 누구나 충분히 즐길 만한 방법이니까 꼭 시도해 보세요.”

인터뷰가 끝나기 전에 그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패스트 패션이 화두잖아요. 패스트 패션의 대표주자가 티셔츠예요. 다들 쉽게 티셔츠를 사고 또 쉽게 버리죠. 디자이너의 한 사람으로 티셔츠가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고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전락하는 게 안타까워요. 아무 생각 없이 사서 흥미가 떨어지면 버리는 그런 티셔츠가 줄었으면 좋겠어요.”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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