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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8 19:33 수정 : 2008.06.21 15:36

티셔츠 한 장의 예술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흰색 티셔츠는 뭐든 걸 수 있는 새하얀 벽을 닮았습니다. 좋아하는 사진 한 장이나 그림 엽서를 붙여도 좋습니다. 흰색 티셔츠는 캔버스와도 비슷합니다. 뭐든 그릴 수 있습니다. 다른 색깔의 벽이나 캔버스를 원한다면, 언제든 페인트로 칠해버리면 됩니다. 전광판과도 꽤 공통점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정직하게 써넣을 수 있으니까요. 이번호 〈Esc〉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티셔츠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예술가와 협업해 만들어낸 티셔츠와 젊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담긴 티셔츠에 대해 취재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티셔츠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티셔츠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기사에 대해 표현해보면 어떨까?” 저희와 함께 티셔츠를 만들 수 있는 예술가를 찾다가 젊은 미술 작가 이상홍(32)씨를 만났습니다. 이상홍씨는 콤플렉스에 대한 작업을 많이 해왔습니다. 궁서체로 상징되는 ‘올바름’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인 타이포 작업도 그 작업 중 하나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궁서체로 글씨를 쓰도록 가르치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 어른을 흉내내면서 궁서체 글씨를 연습했는데, 그러면서 모범생이나 우등생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때 느꼈던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궁서체를 가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홍씨와 어떤 티셔츠를 만들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커버스토리 제목으로 티셔츠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커버스토리 제목인 ‘티셔츠 한 장의 예술’로 타이포 작업을 하고 색종이로 붙여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완성한 작품은 티셔츠로 만들어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작가와 함께 티셔츠를 한 장의 예술 작품으로, 또 기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티셔츠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한 장의 티셔츠이자 하나의 작품이고 동시에 기사 제목이기도 한 티셔츠, 멋지지 않습니까?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티셔츠 제작협조 에스태고(www.STaego.com)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더 잭’의 일러스트 티셔츠(쌈지), ‘매그넘’ 사진작가 마틴파의 티셔츠(유니클로), 사보의 일러스트 티셔츠(베이직하우스), 사보의 일러스트 티셔츠(베이직하우스), 김중화의 일러스트 티셔츠(해지스), 모델 송경아의 ‘하트 포 아이’ 티셔츠(구호), 김중화의 일러스트 티셔츠(해지스), 이다의 티셔츠(쌈지), 키키 스미스의 티셔츠(갭), 일러스트 티셔츠(해지스), 최정화의 티셔츠/(쌈지) (가운데 회색 티셔츠부터 시계방향)한나 리덴의 티셔츠(갭), 마릴린 민터의 티셔츠(갭), 일러스트 티셔츠(유니클로).

예술성과 대중성의 양 날개로 비상

의류 브랜드와 국내외 작가들의 협업 티셔츠 열풍 …‘유니클로’의 활약 돋보여


지금은 세상에 없는 예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작품집을 살 수도 있고, 그림을 다운받아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을 수도 있고, 판매용 작품을 사 액자에 끼워 걸어놓을 수도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방법이 더 생겼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입는 방법이다. 실제 작품은 천문학적인 액수지만, 티셔츠는 몇 만원이면 된다. 그렇게 바스키아 티셔츠를 입고 하루 10시간 이상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바스키아의 작품을 거실에 걸어놓고 보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예술을 즐기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 다음달에 미술 작가 최정화의 그림을 소장하고 싶어지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최정화의 그림이 담긴 티셔츠를 입으면 된다.

키스 해링, 도라에몽, 매그넘…

예술가의 작품을 옷으로 제작하는 방식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기념품 코너에 가면 명화가 어색하게 찍힌 티셔츠나 우산이 있었고, 자비를 털어 자신의 작품을 티셔츠로 만드는 젊은 작가 역시 있었다. 몇 년 전부터는 의류 브랜드에서 행사의 하나로 작가와 함께 옷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작품과 옷의 관계, 작가와 의류 브랜드의 관계는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법이라도 생긴 것처럼 대중적인 의류 브랜드는 국내외 할 것 없이 작가들과 협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 규모도 커졌다. 이번 여름, 예술이라는 바람을 타고 온 협업 티셔츠 열풍은 그 어느 해보다 거세리라 예상된다.

협업 티셔츠 열풍의 한가운데에는 ‘유니클로’가 있다. 캐주얼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는 지난해부터 수백 종의 티셔츠를 찍어내는 ‘유티(UT·유니클로 티셔츠 프로젝트) 캠페인’을 전개해오고 있다. 수백 종의 티셔츠가 색깔만 조금씩 다른 엇비슷한 디자인의 티셔츠였다면,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티 캠페인’은 ‘티셔츠는 티셔츠 그 이상이다. 당신이 누구고, 당신이 어디에 있고, 당신이 무엇을 사랑하는 지에 대한 표현이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전방위로 뛰면서 작가과의 협업을 이뤄냈다. 올해 출시됐거나 출시 예정인 티셔츠 라인업만 봐도 알 수 있다. 키스 해링·바스키아 등 현대미술 작가부터 스타일리스트, 디자인 잡지 <아이디어>와의 협업뿐 아니라 도라에몽·건담·아톰 등 만화 캐릭터,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의 작품까지 ‘티셔츠+예술’, ‘티셔츠+대중문화’의 공식을 멋지게 구현해낸다.

유니클로에 이어 미국의 대표적인 캐주얼 브랜드 ‘갭’도 ‘아티스트 에디션스 티셔츠’를 내놓았다. 유니클로가 예술성보다 대중성에 집중했다면, 갭은 예술성에 더 공을 들였다. 미국 휘트니 미술관과 아트 프로덕션 펀드와 협력해 제프 쿤스나 척 클로스 등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최고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티셔츠 디자인에 참여했다. 갭은 “패션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이런 식의 협업으로 조금 더 많은 대중들이 현대예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브랜드는 젊은 국내 미술작가·일러스트레이터와의 협업에 여념이 없다. 베이직하우스는 ‘리-티’(Re-t)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50여 종의 티셔츠를 선보였다. 리-티 시리즈는 일러스트레이터 사보와 작가 송호은의 작품을 티셔츠로 만든 아트 라인과 픽토그램을 이용한 픽토 라인, 에코 라인 등으로 구성됐다. 베이직하우스는 “작가의 작품이 프린트된 아트 라인이 가장 반응이 좋다”며 “자신의 취향을 더 잘 드러낼 수 있고,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아트 라인 계열 티셔츠를 가장 많이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지스와 티엔지티(TNGT)도 각각 일러스트레이터 김중화와 목영교·박우혁 등과 손을 잡고 제작한 티셔츠를 내놓았다.

배우나 모델 등은 ‘기부 목적’ 제작도

꾸준히 국내 젊은 미술작가와 협업을 해 오는 ‘친예술’ 브랜드 쌈지는 소비자와 예술가가 직접 만나는 ‘쌈지 아트 마켓’을 진행 중이다. 쌈지 아트 마켓에서는 작가 최정화, 이다, 이장미, 더 잭, 이동기 등 자기 세계가 뚜렷한 작가들의 작품을 티셔츠로 만날 수 있다. 이런 식의 협업은 작가에게도 좋은 기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쌈지와 함께 티셔츠 작업을 한 작가 이다씨는 “처음에는 상업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며 “그러나 티셔츠 작업을 통해 작가가 다양한 작업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다씨가 이번달에 내놓은 티셔츠는 지난 4월 가졌던 개인전에서 가장 호응을 얻었던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다씨는 “그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다”며 “티셔츠로 제작하면 그때 아쉬워했던 분들이 다른 방법으로나마 작품을 소장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배우나 모델, 피아니스트 등 유명 인사가 직접 티셔츠 제작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티셔츠는 주로 기부를 위한 티셔츠다. 기부 티셔츠는 유명 인사가 직접 그린 드로잉이라는 희소성과 소량 제작이라는 소장 가치, 기부라는 긍정적인 목적 때문에 출시와 동시에 금세 다 팔리는 경우가 많다. 여성복 ‘구호’의 ‘하트 포 아이’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시각장애 어린이들의 개안 수술 기금 마련을 위해 ‘구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정구호 디자이너가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배우 장미희, 피아니스트 진보라, 사진작가 권영호, 모델 송경아 등 벌써 12명의 유명 인사가 참여했다. 구호는 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촬영협조 유니클로·갭·쌈지·베이직하우스·엘지패션·제일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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