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생제르맹 지구와 바뱅역 교차로 등의 카페는 그때 그 자취를 품고 있다. 생제르맹 지구에 1886년 문을 연 카페 드 플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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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시대가 잊어버린 예술가와 혁명가의 고향을 찾아 몽파르나스 거리로 파리지앵들은 거리에서 살아간다. 걷다가 노천카페에 앉아 거리를 자신의 응접실 삼아 버린다. 지난봄 보길도의 한 마을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만난 적이 있다. 한 할머니가 집 앞 고샅길에 허름한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었다. 이 순간 마을은 가난한 할머니의 너른 정원이 된 것이다. 트로츠키의 카페에서 연어 스테이크를 파리를 걷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세기를 지나온 성당과 대학, 아파트 등 역사적 건축물들이 산책의 배경으로 기다리고, 걷다가 지칠 때쯤이면 거리를 정원 삼을 만한 카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20세기 초반 몽파르나스는 예술가와 혁명가의 고향이었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레닌과 트로츠키는 몽파르나스의 카페에서 예술과 혁명을 논하다가 빈한한 작업실과 셋집으로 밤늦게 돌아갔다. 세기를 지나온 석조건물과 카페는 그때 그 자취를 여태 품고 있다. 1909년부터 1912년까지 레닌이 묵었던 뤼 마리로즈 4번지를 몽파르나스 워킹투어의 종점으로 삼았다. 사실 레닌의 집은 웬만한 가이드북에도 없었다. 유일한 실마리는 주소뿐이었다. 레닌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시대가 잊은 그를, 그의 집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하철 4호선 바뱅역(Vavin)에서 워킹투어를 시작했다. 처음 산책자를 맞은 건 몽파르나스의 카페다. 카페 르 돔과 카페 로통드. 르 돔은 레닌이 놀았던 곳이고, 카페 로통드는 트로츠키가 놀았던 곳이다. 르 돔은 노르망디 지방에서 그날 공수한 해산물을 먹는 손님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점심 식사 메뉴로 가벼운 연어 스테이크가 나온다. 10유로(1유로=1650원) 안팎. 카페 르 돔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뤼 캄파뉴 프르미에르(rue Campagne Premiere) 31번지에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물이 나타난다. 지금은 ‘호텔 이스토리아’ 간판을 달고 있지만, 한때는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 사진가 맨 레이의 스튜디오. 예술가들은 미국에서 건너온 다다이스트 사진가의 모델을 자청하면서 스튜디오에 찾아왔다. 제임스 조이스, 장 콕토 그리고 그의 연인 키키. 건물 앞에는 소공원이 있다. 지도를 들고 찾아온 여행자들은 소공원에 앉아 한때 맨 레이의 스튜디오였던 건물을 바라본다. 맨 레이는 스튜디오에서 5분 거리인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맨 레이의 묘비엔 초현실주의 예술로 이상사회를 꿈꿨던 그의 정신이 남았다.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무관심하지는 않았던” 맨 레이 이곳에 잠들다. 몽파르나스 묘지 뒷문으로 나가면 뤼 다게르(rue Daguerre)에 이른다. 레닌을 보기에 앞서 트로츠키를 찾기 위해서다. 뤼 다게르는 여행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시장 거리다. 200미터의 골목은 펄떡이는 생선과 푸른 과일을 파는 행상들로 활기차다. 그 거리를 통과하면 캐주얼한 아시안 레스토랑들이 기다린다. 트로츠키가 살았던 22번지의 작은 4층 건물은 호텔 간판을 걸었다. 호텔 맞은편 아시아 퓨전음식점 ‘향만각’의 노천 좌석에서 점심을 때웠다. 밥과 새우·돼지고기 등이 함께 나오는 메인과 샐러드·음료수로 구성된 세트메뉴가 5.50~8.80유로. 캐주얼한 식사를 찾는 로컬들에게 인기가 높다.
생제르맹 지구 카페 레 되 마고의 핫초콜릿인 쇼콜라. 걸쭉한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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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 다게르는 여행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거리. 캐주얼한 아시안 레스토랑과 시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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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단골집에서 핫초코를 홀짝~ 샤갈·모딜리아니·헤밍웨이도 노닥거렸던 역사적 카페 기행 파리의 대표적인 카페 지구는 두 군데다. 라인강 좌안의 생제르맹과 몽파르나스. 파리의 카페에 가면 노천에 앉아야 한다. 거리는 풍경이 되었다가 방이 되었다가 황혼에 물든다. 생제르맹 지구는 카페 레 되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가 유명하다. 1885년 문을 연 레 되 마고는 지식인들의 카페 문화가 처음 형성된 곳이다. 헤밍웨이와 피카소, 브르통이 단골이었고, 지금도 주인이 대를 이어 레 되 마고를 운영한다. 레 되 마고의 지배인은 “현재 설립자의 4, 5대가 함께 경영한다”며 “도쿄에 지점도 냈다”고 말했다. 야외 테라스에 앉은 뒤(식사 시간에는 경쟁이 치열하다), 레 되 마고의 안내서를 달라고 부탁하고, 쇼콜라(핫 초콜릿)를 시키고, 내부에 들어가 유명인들의 100년 전 사진을 구경할 것. 해질 녘에 가면 생제르맹 데프레(성당)가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라. 누런 햇빛에 반사되는 성당을 보며 쇼콜라를 홀짝이는 맛이란. 레 되 마고와 옆집 아저씨 같은 포근한 분위기라면, 이듬해 문을 연 카페 드 플로르는 신식 얌체 같다. 라이벌 레 되 마고와 달리 사진 촬영 등을 제지하기도 한다. 레 되 마고에서 놀던 축들은 새로 생긴 카페 드 플로르로 옮겨 갔다. 새로운 대리석 건물에 난방이 따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몽마르트르를 빠져나와 그 당시 신시가인 몽파르나스로 몰려들었다. 샤갈, 모딜리아니, 레제, 미로, 칸딘스키, 피카소, 헤밍웨이, 스트라빈스키, 콕토 등이 그들이었다. 레닌, 트로츠키도 있었다. 카페가 이들을 맞았다. 이들은 카페에서 노닥거렸고(때론 예술을 토론했고), 혁명을 모의했으며(때론 망명생활의 고단함을 불평했고), 영화의 필름처럼 거리를 흐르는 행인들을 바라봤다. 생제르맹의 카페 거리와 짝을 이루는 바뱅역 교차로에는 몽파르나스 카페 ‘빅 포’가 모여 있다. 카페 르 돔과 라 로통드, 라 쿠폴, 레 셀렉트가 그들이다. 모두 20세기 초반 문을 열었다. 르 돔은 굴·조개·생선 등 그날 공수해 온 싱싱한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바뱅역 교차로에는 로댕의 발자크상이 있다. 발자크가 추악하게 표현됐다고 해서 논쟁이 된 이 작품을 빠뜨리지 말자. 반 관광지인 생제르맹과 몽파르나스의 카페는 음식값이 비싸다. 게다가 비싼 환율까지 더해 두 명이 정찬을 하면 우리 돈 10만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아침 식사는 10유로 안에서 가능하므로 이 틈을 타 역사적 카페에 앉아보도록. 공상적 사회주의자 프루동, 실존적 마르크스주의자 사르트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레닌과 트로츠키주의자(!) 트로츠키 등과 연대의 끈을 놓치기 싫다면, 그들과 역사적 끈이 연결된 프랑스 공산당 본부를 찾아가보라. 전통적인 노동자 거주지역인 콜로넬 파비앵(colonel fabien)의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십중팔구 시선을 끄는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국제연합 건물 설계에 참여하고,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의 작품이다. 이 신기한 건물의 입구가 어디인지 아마 궁금해질 것이다. 공산당 본부 바로 뒷블록에 ‘21세기 사회주의자’들이 자주 찾는 단골 카페 라 비에르(104 Av. Simon Bolivar)가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는 음식평론가 로자 잭슨의 말을 따 라 비에르를 이렇게 평했다. 황당하지 않은 가격(파리의 유명 카페 가격은 때론 황당하다)과 좋은 맛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노상 다니는 카페. 20세기에도 노동자 거주지역이었고 21세기에도 노동자들의 삶터인 파비앵의 맛있는, 그냥 평범한 카페. 파리=글·사진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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