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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28 19:19 수정 : 2008.05.31 13:53

올해 5월은 파리가 68혁명을 경험한 지 꼭 40주년이 되는 달이다. 에펠탑은 그때나 지금이나 파리를 굽어보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그 파리는 어떤 곳일까? 얼마나 위대한 이름인가? 그녀는 맑고 쾌활한 기분이 되어 그 이름을 조그만 소리로 되뇌었다 … 엠마는 파리의 지도를 샀다. 그리고는 손가락 끝으로 지도 위의 수도를 돌아다녔다 … 어둠 속에서 가스 등불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 극장의 주랑(복도)들 앞의 그 번잡스러운 가운데 늘어선 사륜마차의 발판들이 보이는 듯싶었다. (<마담 보바리>, 플로베르 지음, 동화출판공사 펴냄)

올해 5월은 파리가 68혁명을 경험한 지 꼭 40주년이 되는 달이다. 당시 시위대가 점거한 소르본 대학에서 는 1968년을 기억하는 사진전이 열렸다.
21세기에도 마담 보바리들은 여전해서 파리는 스타일의 도시라는 찬탄과 허영의 성소라는 냉소가 교차한다. 다시 한번 그 파리는 또 어떤 곳일까? 얼마나 위대한 이름인가? 맑고 쾌활한 기분으로 파리에 모여든 혁명가와 지식인, 예술가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그러고는 손가락 끝으로 그들이 잠든 지도 위의 무덤을 돌아다녔다. 억울한 청년 장교 드레퓌스의 침울한 얼굴과 격노한 에밀 졸라의 고함과 <인터내셔널가>를 단숨에 써 내려간 뒤 밝게 웃는 외젠 포티에, 파리 외곽의 마지막 진지에서 세계 최초의 노동자 정부를 방어하는 코뮌 전사들의 땀방울이 보이는 듯싶었다.

21세기 트렌드 세터들이 파리로 모여드는 이면에서 우리가 20세기의 파리를 궁구할 이유는 없을까. 자유의 씨앗을 뿌린 그들이 걸었던 거리와 그들이 앉았던 카페 그리고 그들이 잠든 묘지까지, 현재에 존재하는 과거의 파리를 헤맸다. 진지하지 않은 시대에 진지하게 초여름 파리를 돌아다녔다. 그 파리는 어떤 곳일까? 얼마나 위대한 이름인가?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클레망에서 이브 몽탕까지 파리 동부의 페리 라셰즈 묘지에서 보물 찾기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호화 역사 인물의 공동묘지를 가다

클레망에서 이브 몽탕까지 파리 동부의 페리 라셰즈 묘지에서 보물 찾기

묘지 찾기는 보물찾기와 비슷했다. 2유로를 주고 산 묘지 지도엔 분명 24번 구역이라고 표기됐건만, 묘지는 도통 보이질 않았다. 가로세로 5미터 구역을 10분 남짓 맴돌았다.그제야 지난해 낙엽이 아직 걷히지 않은 하얀 석관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의 이한열, 빅토르 누아르

‘사람들이여, 위대한 예술가이자 위대한 시민, 선인 도미에 여기에 잠들다’ 화가 오노레 도미에. 가난한 유리공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독재, 파리코뮌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시기에 줄곧 민중의 시선으로 파리를 관찰한 그의 이름은 세월의 흔적에 무뎌져 있었다.

파리 동부 페르 라셰즈 묘지. 발자크, 쇼팽, 에디트 피아프, 들라크루아, 비제, 로시니, 몰리에르, 오스카 와일드, 짐 모리슨, 이브 몽탕 … 세계에서 가장 유명인이 많이 묻힌 공동묘지다.

묘지를 찾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요하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듬어야 한다. 물론 인기 무덤인 짐 모리슨, 이브 몽탕, 에디트 피아프는 주변에만 이르면 사람들이 틀림없이 서성거리고 꽃다발이 수북이 쌓였으므로 헛걸음이 없다. 하지만 시대가 잊은 사람들을 찾는 건 정말 쉽지가 않다.

빅토르 누아르. 그는 ‘프랑스의 이한열’이었다. 1870년 신문에 나폴레옹 3세를 비판한 뒤 두 발의 총탄을 맞고 거리에 스러졌다. 이틀 뒤 장례식에는 파리 시민 수만 명이 모여 왕정 반대 시위를 벌였다. 빅토르 누아르는 페르 라셰즈에서도 총을 맞은 채로 쓰러져 있다.

95번 구역의 외젠 포티에. 파리코뮌 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세계 노동자의 노래 ‘인터내셔널가’를 작사했다. 레닌은 포티에의 25주기에 <프라우다>에 이렇게 썼다. “그가 첫 곡을 지었을 때 사회주의 노동자는 기껏해야 10명이었다. 그의 역사적인 노래는 지금 1천만 프롤레타리아가 부른다.”

동쪽으로 갈수록 좌파 인사들의 무덤이 많다. 76·97번 구역은 공산주의자이자 초현실주의자 시인 폴 엘뤼아르, 저널리스트 장바티스트 클레망 그리고 프랑스 공산당원들의 무덤이 줄지어 섰다. 그리고 이들을 ‘코뮌 전사의 벽’이 감싸고 있다. 파리코뮌이 실현된 해인 ‘1871’이라는 숫자가 벽에서 빛났다. 1871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비밀번호였다. 그건 1894 갑오혁명, 1592 임진왜란 같은 건조한 네 자리 숫자와 달랐다. 어떤 이는 1871을 삐삐번호를 삼았고, 어떤 이는 자물쇠 번호를 1871로 고정했다. 1871에는 알싸한 느낌이 있었다.

시민군 147명의 죽음과 선홍빛 체리꽃

마지막 시민군 147명은 여기서 사살됐다. 선홍빛 체리꽃이 피던 1871년 5월28일, 페르 라셰즈의 담장 밑으로 체리빛 피가 낭자했다. 여성 참정권 실현, 징병제와 상비군 폐지, 이자 폐지, 노동자 최저생활 보장 등을 획기적으로 보장한 세계 최초의 코뮌도 여기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5월이면 담장 왼쪽엔 체리 나무가 꽃을 피운다.

‘난 언제까지나 체리가 익을 무렵을 사랑한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온다 하더라도/ 이 상처를 고칠 수는 없겠지’(지금도 샹송으로 불리는 장바티스트 클레망의 ‘체리가 피던 시절’)

파리=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파리 14구의 몽파르나스 묘지는 페르 라셰즈보다 규모는 작다. 사르트르, 맨 레이, 드레퓌스, 프루동 등이 잠들었다.
드레퓌스에게 조약돌을

몽파르나스·몽마르트르·카타콤 묘지의 인물들

파리에서 가볼 만한 공동묘지는 페르 라셰즈 밖에도 몽파르나스 묘지, 몽마르트르 묘지, 지하 묘지인 카타콤 등이 있다.

1824년 몽파르나스 묘지엔 사르트르가 그의 연인 보부아르와 함께 잠들었다. 노란 대리석 석관 위엔 참배객들이 올려놓은 꽃다발, 펜, 안경, 지하철 티켓이 있었다. 사르트르 무덤 앞 벤치에서 만날 인사들을 지도에 체크했다. 지도는 관리사무소에서 무료로 나눠준다.

드레퓌스의 무덤은 어렵게 찾았다. 노란 대리석에 박힌 드레퓌스, 드레퓌스, 드레퓌스 … 드레퓌스 가문의 가족묘다. 그의 이름은 알프레도 드레퓌스. 독재와 불의가 판을 치면 드레퓌스 같은 희생자가 나온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희생되는 드레퓌스들 앞에 에밀 졸라와 같은 구출자가 나타나면 좋으련만, 시대는 느리게 느리게 흘러간다. 참배객들이 하나씩 올려놓은 조약돌이 석관을 둘렀다. 사진가 맨 레이, 공상적 사회주의자 프루동의 무덤도 있다.

1798년 세워진 몽마르트르 묘지는 작가 에밀 졸라와 알렉상드르 뒤마, 스탕달,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등이 묻혔다. 역시 관리사무소에서 지도를 얻어 찾아 다닌다. 카타콤은 지하 공동묘지다. 18세기 급성장한 파리는 묘지난을 겪었다. 보건 위생상 문제가 제기돼 파리시는 600여만 기의 묘지를 폐기하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골을 모아 몽파르나스의 20미터 깊이의 지하터널에 납골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묘지는 레지스탕스 본부로 활용됐다. 평일에도 관광객이 붐벼 20∼30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입장료 5유로를 받는다. 다른 공동묘지는 무료다.

남종영 기자

파리 여행쪽지

묘지 찾을 땐 지도 챙겨야

파리 여행지도
⊙ 에어프랑스와 대한항공이 인천∼파리를 오전 9시50분, 오후 1시20분 날마다 두 차례 공동 운항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월·수·금요일 오후 1시15분에 출발한다. 12시간 안팎 걸린다. 할인 항공권 기준 82만∼105만원. 유류할증료 등 세금이 40만∼50만원 붙는다.

⊙ 프랑스관광청 홈페이지(kr.franceguide.com)를 참고해 여행 계획을 세운다. 영문이기는 하나, 파리시가 운영하는 관광 홈페이지(paris.fr)의 정보가 자세하다. 박물관·극장·공원·카페 등으로 분류됐다. 영문 온라인 파리 매거진 메트로폴 파리(metropoleparis.com)는 최신 정보가 가득하다.

⊙ 지하철로 이동하는 게 편하다. 파리 시내에서 사용 가능한 1회권 1.5유로(1유로=1650원). 1회권 10장인 카르네가 11.10유로.

⊙ 페르 라셰즈, 몽파르나스 등 공동묘지는 아침 8∼9시쯤 열어 오후 5∼6시에 닫는다. 지도 없이는 해당 묘지를 찾을 수 없다. 관리사무소에서 안내지도를 받는다. 페르 라셰즈는 규모에 비해 관리사무소에 비치된 지도가 간략해 정문 앞 카페나 가게 등에서 파는 유료 지도(2유로)를 챙기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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