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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09 19:28 수정 : 2008.04.12 14:08

3월 말 스윙바 빅애플에서 열린 스윙동호회 ‘핫앤쿨’의 발표회. 김진수 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힙합·라틴댄스·살사 등 이 춤 저 춤 집적대다 스윙에 꽂힌 이명석의 춤 편력사

나도 이제 기대 수명의 절반 정도를 지나고 있다. 낯간지러운 ‘반평생’ 동안 정조 관념 없이 이 춤 저 춤 만나왔다. 돌아보니 이렇게나 건드렸나 싶다. 즐거웠지만 너무 멀리 돌아왔나 후회도 된다. 그래도 이제는 발견했다. 영원이라 장담은 못하겠지만, 생의 끝까지 붙들고 싶다. 스윙댄스다.

서른 즈음에 만난 ‘성인 힙합’ 교실

내 춤의 첫 장은 엄마를 따라 올라탄 관광버스에서 뽕짝 리듬을 타던 걸로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엔 롤러스케이트장이 유행했는데, 중간중간 디스코 타임이라는 게 있어 ‘헬로 미스터 몽키’에 맞춰 손가락으로 찔러대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닭장’이라는 나이트를 찾아갔다. 가끔 조명이 꺼지고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단속 경찰을 피해 비상 계단으로 줄지어 달아나곤 했다. 춤은 언제나 금기였다.

대학에는 금욕이 있었다. 올해로 20년이 되었지만, 친구들은 나의 첫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신입생 환영회 때 ‘세계로 가는 기차’를 부르며 보여준 화려한 무대 매너를. 총학생회 선동대를 한 것도 남들 앞에서 춤출 수 있어서였던 건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힙합을 만났다. ‘현진영 고! 진영 고!’ 엉거주춤 돌아오니, 록 카페가 있었다. 나는 케미컬 브러더스의 테크노를 타고 연옥의 언저리에서 갔다가, 가끔 마릴린 맨슨을 만나러 지옥의 문 앞까지 내려가곤 했다. 춤은 몰아의 경지에 접어들었고, 심장은 끝없이 침잠해 갔다. 같이 있지만 모두가 혼자 춤추고 있을 뿐이었다.

서른을 넘어갈 즈음, 제대로 춤을 배워 보자며 구민회관의 ‘성인 힙합’ 교실에 들어갔다. 비보이 퍼포먼스에 버금가는 동작에 들어가자 숨이 턱에 차올랐다. 강사도 말했다. “서른 넘은 분들은 무리하지 마세요. 무릎에 물 차요.” 춤과는 영영 이별이구나 싶었다. 여행이나 다니며 유유자적 관람의 인생으로 들어서자. 그러다 요코하마 항구의 붉은 벽돌담 밑을 지나게 되었다. 흐린 가로등 불빛을 타고 흥겨운 재즈가 흘러 내려왔다. 눈물이 나왔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이 순간에 왜 나는 춤을 출 수가 없을까?

돌아와 친구 부부와 함께 라틴 댄스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차차차, 룸바, 자이브 …. 사람이 사람의 손을 맞잡고 서로의 텐션을 느끼며 음악에 몸을 맞춰 가는 즐거움이 이런 거였구나. <무한도전>에서 여섯 남자들이 참가했던 것과 비슷한 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에 갑자기 허무해졌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춘다는 꿈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


살사 바가 다음으로 나를 불렀다. 패턴과 스텝을 배우면 바를 찾은 누구와도 손을 맞잡고 춤출 수 있다. 쿠바 음악도 좋고 살사의 감기는 맛도 매력 있었지만, 의외로 깊게 빠져들지 못했다. 함께 시작한 친구가 뭔가 위화감을 느꼈고, 나 혼자서는 바의 춤꾼들 속으로 뛰어들 자신이 없었다. 얼마 뒤 그 친구가 스윙 댄스 강좌를 알아왔다. 나는 반신반의했다. 결국 살사랑 비슷한 과정을 밟겠지. 수강 장소가 집에서 5분 거리라 구경 삼아 찾아갔다. 그리고 화를 냈다. 도대체 너 어디 있었니?

내게 ‘스윙주의자’를 자처하며 춤의 우열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다. 다만 파트너와 움직임을 나누며 음악을 몸으로 연주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스윙이 가장 빠를 거라고는 말할 수 있다. 라틴 댄스의 통과의례도, 살사의 섹시한 의상 없이도 스윙은 출 수 있다. 지터버그는 너무 쉬워, 배운 그날 음악을 타도 된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펼쳐진 ‘딴따라 땐스홀’의 게릴라 스윙. ‘딴따라 땐스홀’ 제공.
모든 세대가 각자의 춤을 가졌으면

춤추는 사람들에겐 세상의 음악이 ‘차차차를 출 수 있는 음악’ ‘맘보를 탈 수 있는 음악’과 그밖의 잡것들로 구분된다. 스윙 음악의 레시피는 너무나 방대하다. 1920∼40년대의 빅밴드 재즈가 주 메뉴이지만, 그 리듬은 온갖 영역에 퍼져 있다. 로비 윌리엄스가 로열 알버트 홀에서 부른 온갖 스탠더드 재즈도 놓칠 게 없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섹시한 해군 의상을 입고 나온 ‘캔디맨’과 같은 팝에서도 튀어나온다. <브로크백 마운틴> 오에스티(O.S.T)에서 흘러나오는 컨트리 음악에서도 건질 만한 게 적지 않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로만 스윙을 추는 친구들도 있다.

재즈의 즉흥과 자유로움은 스윙댄스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파트너의 손을 놓치면 재빨리 바운스를 타고 돌아오고, 다른 춤의 패턴도 은근 슬쩍 끼워넣는다. 재즈 자체가 툭하면 브레이크를 주기 때문에, 음악이 비어버린 그 공간은 막춤에 가까운 몸의 연주로 채워야 한다. 나와 춤을 함께하는 ‘딴따라댄스홀’(워크숍 동호회)의 친구들은 그 자유를 주체하지 못해 길거리로 뛰쳐나와 게릴라 스윙을 즐긴다.

요즘 나는 ‘지르박’을 추는 어르신들을 염탐하고 있다. 지르박은 원래 스윙 댄스의 일종인 지터버그가 바뀐 말이다. 현재는 스윙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춤이 되었지만, 누군가의 손을 잡고 텐션과 음악을 즐기는 마음은 다를 바 없다. 나는 저 어르신들의 세계와 막 스윙에 접어든 20대 사이를 당기고 싶다. 모든 세대, 모든 취향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춤을 가졌으면 좋겠다. 저술업자 이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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