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남양주 시민축구단과 경기에서 천안 FC 서포터즈인 미르나래 회원들이 응원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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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20~30대가 주축인 그들, 연예계와 달리 스포츠 팬클럽이 주는 재미는
대전 시티즌에서 제2의 전성기를 보내는 고종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팀은 잊을 수 있을지 몰라도,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응원해 주던 팬들은 절대 잊지 못하겠더라.” 친정팀 수원을 떠나온 뒤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푸른 팬’들을 기억한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는 스타들
지금은 케이 리그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큰 규모가 된 수원의 서포터 ‘그랑블루’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즈음. 고종수는 “당시 하루가 다르게 엔(N)석에 서포터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함께 커 왔다”고 회상한다.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 같은 것일까. 그는 자신을 ‘고 서방’이라 일렀고, “서울대에 들어가면 결혼해 주겠다”던 어쩌면 새빨간 거짓말 같은 약속을 했던 한 소녀 팬과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한다. 고종수는 수원을 떠났고, 그 소녀 팬도 어른이 되었지만 축구장의 열정은 여전히 새로운 버전의 ‘팬 스토리’를 업그레이드 중이다. 다른 종목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 스스로 반쯤은 ‘선수’가 되어 가는 길이기도 하다. 손에 닿지 않을 것 같은 ‘스타’와 맹목의 열정을 다 바쳐야 하는 ‘팬’의 권력관계가 때론 180도로 역전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연예계와 달리 스포츠 팬클럽이 주는 재미다. 티브이를 비롯한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스타들과 스포츠 스타들을 두고 쉽게 가지는 혼동 중의 하나는 ‘거액의 연봉을 손에 쥐고, 어디를 가나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일반인의 접근은 제한되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물론 이 전형적인 ‘스타 동화’는 일부 최정상의 인기를 자랑하는 선수들에게는 그대로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포츠 스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있다. 팬클럽 역시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함께 극복하고, 무엇보다 ‘이기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 스포츠 팬클럽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 선수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다. 연예인 팬클럽이 ‘팬미팅’이라는 이름으로 이벤트 행사를 열 때, 스포츠 팬클럽 사람들은 선수와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으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
축구를 비롯해 많은 종목이 연고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 팬클럽들은 기본적으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구단들은 전국구 팬을 가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가까운 거리에 사는 팬들이 그들의 활약을 지켜보고 또 ‘지켜봐야’ 한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의 팬들이, 첼시와 토트넘의 팬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다 때론 살풍경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스포츠에서 이런 라이벌 의식은 종종 열정과 승부욕을 두 배로 튀겨내는 가장 적당한 양념이 된다. 한국 프로 스포츠가 제대로 된 상업성을 지속해 가지 못한다는 비판에 부딪힐 때 가장 먼저 지적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연고주의 미정착’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응원은 축구 경기에서 장식이 아니라 경기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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