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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6 21:12 수정 : 2008.03.26 21:59

잡지는 취향이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잡지는 취향이다


‘새롭고 젊은’ 잡지가 유행처럼 번져나갈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였다. 각 이동통신사에서 발행하는 잡지는 문화를 소재로 세련된 디자인와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였고, 홍익대 앞이나 대학로 등지에서는 ‘문화’를 내세운 실험적인 무가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많던 잡지들이 2000년대 중반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대기업 발행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잡지도 있었고, 1년 정도 나오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소리 없이 사라진 무가지도 있었다. 새로운 잡지에 대한 열망은 열병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가깝게는 지난해부터, 멀게는 2006년을 전후로 흥미로운 잡지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독립’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취향을 내세우는 잡지도 있고, 굳이 나누자면 상업지지만 태도와 내용만큼은 지금까지의 잡지와 사뭇 다른 잡지도 있다. 바다건너에서 ‘멋지다’고 소문난 잡지들도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때처럼 시끄럽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잡지를 낸다’는 제스처보다는 ‘어떤 잡지를 어떤 방법으로 낼 것인가’ 구체적인 고민이 더 크다.

이제 잡지는 정보라기보다 취향이다. ‘무엇을 좋아한다’에서 ‘무엇을’은 취향이 아니다. 그 앞에 붙는 수식어인 ‘어떤’이나 ‘어떻게’가 취향이다. 취향이 다양해질수록 문화는 세밀하게 가지를 뻗어나고 더 세련된 촉수를 가지게 된다. 취향을 원동력 삼아 문화가 가지를 뻗고 비어 있는 문화의 틈을 채워나가는 데 결정적인 몫을 하는 게 잡지다.

잡지는 형식과 내용이 자유롭다. 모든 취향을 담아내는 매체이자 사소한 취향조차도 문화의 잔가지로 만들어내는 게 잡지다. 그래서 잡지는 문화적 다양성의 지표다.

〈Esc〉가 독립잡지부터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잡지까지 꼭 한번쯤 거들떠봐야 할 잡지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런 잡지를 앞에 두고 ‘잡지시장이 죽어간다는데’라는 김빠지는 소리는 하지 말자. 새로운 유행이라도 되는 것처럼 요란을 떨 필요도 없다. 그냥 조용히 자신의 취향에 가까운, 혹은 도전해 보고 싶은 취향을 가진 잡지를 손에 들고 그 잡지를 읽으면 된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자기 취향을 담은 잡지를 만들어 봐도 좋겠다. 뭐, 금전적 성공은 장담할 수 없지만.

잡지는 취향이다



우리같은 잡지 또 없지요?

상업성 배제하고 편집원칙 지키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독립잡지의 주인공들

우리 같은 잡지 또 없지요?
‘독립’을 내세운 잡지들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광고 위주의 상업성을 배제하고, 무리해서 발행·유통하기보다 규모가 작아도 꾸준히 내는 방법을 찾으며, 잡지만의 편집원칙을 지켜나간다는 점이다. 여기서 상업성을 배제한다는 것이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고, 무리하지 않는다는 말이 소극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또 이들은 대부분 적게는 한 사람, 많게는 세 사람이 잡지를 이끌어가고, 초기 비용이나 발행 비용은 자비 혹은 추렴으로 충당한다. 경제적인 문제로 골치가 아프기는 하지만 잡지 얘기를 할 때만큼은 다들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리고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잡지가 없다는 데서 시작했어요. 막상 내놓고 보니까 모두들 이런 잡지에 갈증을 느끼더라고요!”


〈싱클레어〉
<싱클레어>라는 이름의 필진 공동체

2000년 창간해 올해 아홉해째를 맞이한 격월간지 <싱클레어>는 이곳에서 참 찾아보기 힘든, 제법 나이가 든 잡지다. <싱클레어>는 ‘무엇에 관한 잡지’라고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사람들에게 글이나 사진을 받아 싣기 때문이다. 매호 30여편의 글이 실린다. 33호가 나온 지금까지 모두 300여명이 참여했다. 기고자는 교사부터 변호사, 중학생, 70대 할아버지, 음악가까지 다양하다. 디자인은 뮤지션 이아립씨가 죽 해 온다.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김용진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숨어서 혼자 개인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모으자는 생각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작했어요. 유명 필자에 비해 절대 글의 수준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매호 발행하면서 <싱클레어>라는 이름의 필진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느낌도 들어요. 창간하고 1년이 조금 지난 다음, 반응이 좋아 전국 유통을 시도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역풍을 맞고 오히려 8개월 동안 내지 못했죠. 그 이후로는 감당할 만큼의 규모를 유지하면서 ‘살아남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요? 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 계속 낼 것 같아요.”

〈보일라〉
무가지 <보일라>는 카페나 갤러리에서 몇 번 마주쳤을 꽤 친숙한 독립문화 잡지다. 2002년 발행인이자 편집장인 강선제씨가 부산에 거점을 두고 ‘젊은 작가를 소개한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보일라>는 목적에 맞게 앞뒤 표지에 늘 작가들의 작품을 싣는다. <보일라>가 매호 소개하는 젊은 작가는 2~4명 정도. 모두 200여 젊은 작가들이 여기에 작품을 선보였고, 그들 중 몇몇은 이를 바탕으로 자기 작업을 확장해 나갔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제법 안정을 찾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강선제씨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지금도 발행이 쉽지만은 않아요. 디자인 등의 외부 작업을 하면서 발행을 하니까요. 그렇지만 지원금을 제외하고는 외부 도움을 거의 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보일라>에는 제 개인적인 의미가 더 커요. <보일라>가 나오고 나서 2~3년 정도 지나니까 ‘감성지 같다’거나 ‘정의를 내려 보라’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지적이나 비판이 아무 상관없더라고요. 이 잡지를 통해 소개되는 젊은 작가들이 있고, 독자들도 잡지를 통해 이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그래픽〉
일본의 전문출판사와 손잡은 <포일_이안>

지난해 1월에는 멀쩡하게 네모 반듯하고, 두께도 꽤 있는데다 디자인도 무척 세련된 잡지가 ‘독립’이라는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나왔다. ‘인디펜던트 그래픽 디자인 저널’인 계간 <그래픽>이다. “자본이나 기관, 나아가 권위와 관습으로부터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지향하며, 잡지 등 출판물을 발행하는 것 이외에 어떤 상업적인 목적도 가지지 않습니다”라는 자기 소개가 또렷하게 들린다. <그래픽> 1호는 놀라웠다. ‘한국 잡지 아트디렉터들’이라는 주제로 국내 잡지 아트디렉터 48명을 인터뷰했다. 2호 ‘모션 그래픽스 디렉터·아티스트’와 3·5호 ‘넥스트 일러스트레이션’, 4호 ‘한국의 북디자이너’ 역시 흥미로웠다. 한 호를 하나의 주제로 꽉 채우는 ‘1 이슈 1 테마’라는 형식을 갖춘 <그래픽>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정직하고 솔직한 독립잡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포일_이안〉
<포일_이안>도 주목해야 하는 잡지다. 지난 1월 첫호를 낸 이 잡지는 사진 전문지다. 아시아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싣고, 외국에서 주목받는 사진작가들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완성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1호의 주제는 ‘동아시아의 안과 밖 뒤집어보기’. 한국계 캐나다 작가인 팀 리를 비롯해 일본의 사진작가 요이치 나가노 등 사진 작가들의 작품을 실었다. 종이질부터 완성도 높은 인쇄까지 사진 전문지로 손색이 없다.

<포일_이안>의 특징은 일본의 예술서적 전문 출판사 ‘포일’과 국내 출판사 ‘이안북스’가 공동출판하는 잡지라는 점이다. 발행인이자 편집장인 김정은씨는 “일본과 한국이 함께 아시아를 겨냥해 잡지를 만들고 아시아의 작가들을 발굴하자는 뜻에서 ‘포일’과의 공동출판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외국에는 이렇게 사진이나 시각예술 작품을 그대로 싣고 작가를 직접 소개하는 형식의 잡지가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없어요. 그래서 시장성도 있다고 판단했어요.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발행할 계획이에요. 지금 목표는 3년을 견뎌내는 거에요. 그러고 나면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칠진〉
<칠진>, 작업실 친구 셋이 뜻을 모으다

20대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전방위 예술 독립잡지로는, 홍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 작업실을 쓰던 친구 셋이 뜻을 모아 2006년 12월 0호를 낸 <칠진>이 있다. <칠진>이라는 이름은 ‘칠하다’와 영어 ‘chill’을 모두 뜻한다. 개인 작업을 하던 이들인 만큼 잡지를 펴면 독특한 취향을 바로 느낀다. 윤재원·허지현·이영림 이 세 친구는 말한다. “유행이라는 게 재미없고 다양하지도 않잖아요. 대안을 찾고 싶었어요. 우리의 취향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웃음) 생각했죠. 잡지를 통해 소통하고 싶기도 했어요. 저희가 직접 화보를 촬영하기도 하고, 마이스페이스를 통해 찾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싣기도 했어요. 형식은 늘 열려 있어요. <칠진>을 낸다는 것은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취향에 하나를 더 보태는 것 아닐까요?”

0호는 무가지로 냈지만 1호부터는 유가지로 바뀌었다. 또 월간지에서 격월간, 계간지로 바뀌기도 했다. 앞으로 꾸준히 낼 계획이지만 꼭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낼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직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해가는 <칠진>은 한창 성장하는 중이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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