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3.19 18:28 수정 : 2008.03.23 13:35

두 번째부터는 처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입니다. 당신의 도시가, 당신이 사랑하는 풍경이 생기는 거죠.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나의 두 번째 여행

첫인상이 절반이라고 합니다만 첫인상과 두 번째 인상은 다른 법입니다. 사람 만날 적에도 진국인 친구는 나중에야 가려지지 않습니까?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째 여행과 두 번째 여행은 다릅니다. 처음에 가야 할 곳이 있고 두 번째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두 번째부터는 처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입니다. 당신의 도시가, 당신이 사랑하는 풍경이 생기는 거죠.

예를 들어보지요. 첫 번째 여행은 파리의 에펠탑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고 돌아왔다면, 두 번째 여행은 파리의 뒷골목에서 커피를 마시며 소설을 읽다가 돌아옵니다. 여행사가 정해놓은 랜드마크를 순례하거나, 안내서에 실린 사진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곳, 주류가 아닌 비주류, 다문화를 체험하고 돌아오는 게 두 번째, 세 번째 여행입니다.

이미 우리는 두 번째 여행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나라(곳)를 가봤느냐’라는 질문 대신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고 질문합니다. 김남경 내일여행 마케팅팀장은 “어학연수를 다녀 온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다시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여행자 확보를 위해서 각국의 관광 관련 부서들은 외국인 재방문율 통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제주로 〈Esc〉가 두 번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오페라하우스와 캥거루로 기억되던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름조차 생소한 원주민 아보리진의 전설이 흐르고, 도쿄와 오사카 등 불야성의 도시가 전부인 줄 알았던 일본에는 맹글로브나무와 만타가오리가 삽니다. 한국인의 영원한 두 번째 여행지 제주에는 지역 주민에겐 일상으로 존재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여행자가 지나치는 오름이 있습니다.

두 번째 여행은 부재하는 행선지를 향해 흰 선을 그으며 달리는 자신만의 탐험이자 여정입니다. 두 번째 여행은 장소에 자신만의 의미를 던지는 행위이자 장소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여행을, 〈Esc〉와 함께 떠나보실래요?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촬영협조 G&G(가야체스 gayachess.com)



마거릿리버의 초현실적 해변으로 떠나는
두번째 오스트레일리아 여행

퍼스에서 북쪽으로 130km 떨어진 란셀린의 사구. 서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초현실적인 풍경 중 하나다.

서쪽에도 오스트레일리아가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여행자들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골드코스트의 산호바다를 흘끗거리다 사람들이 풀어놓은 캥거루와 악수하고 돌아온다. 남는 건 관광버스에서 내려놓은 기념품점에서 산 양털이불 뿐. 하지만 이것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오스트레일리아는 사람과 돌고래가 함께 수영하는 한 장의 사진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이렇게 초현실적인 해변이 있다니! 그러고 보니 머릿속 지도에 서부는 비어 있었다.

마거릿강을 거슬러 오르는 카누 투어. 소로섬에서 야생 관찰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돌고래와 사람이 함께 수영하는 한 장의 사진

서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는 퍼스라는 도시였다. 서오스트레일리아 200만 인구 중 140만이 퍼스에 산다. 퍼스를 기점으로 여행자들은 흩어지는데,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다가 마거릿리버를 만났다. 마거릿리버는 마거릿강 하류의 구릉지대다. 인도양의 바다는 서퍼들의 고향이고, 내륙의 숲은 원주민인 아보리진의 삶의 터전이다.

마거릿강 하구에서 카누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랐다. 브라이언 러브(65)가 아보리진의 전설과 문화를 설명하는 에코 투어다. 10여 분 노를 젓자 소로섬이 나타났다. 종잇장처럼 껍질이 벗겨지는 페이퍼바크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다.

“원주민들은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 앞에서 고민을 털어놨어요. 페이퍼바크는 속이 비어서 비밀을 듣고도 담아두지 않았거든요.”

페이퍼바크 숲 사이로 멜라루카 나뭇잎의 허브향이 퍼졌다. 브라이언은 스노티고블 나뭇잎을 건넸다.

“손바닥으로 비벼보세요”

손바닥이 매끄러워졌다.

“케로틴 성분 때문이죠. 원주민들이 약초로 씁니다.”

피그 페이스라는 열매는 달콤한 키위 맛이 났다. 카누를 강변에 댄 일행은 옷을 벗고 강에 뛰어들었다. 그 사이 브라이언은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캥거루와 에뮤(오스트레일리아 타조)를 썬 고기, 그리고 산열매로 마련한 원주민 식사(부시터커)였다.

백인들의 침략 이후 소박한 부시터커는 곡식과 소고기로 이뤄진 유럽 식단으로 교체됐다. 목장이 개간됐고 와이너리가 생겼다. 서호주관광청에서 펴낸 마거릿리버 지도에 나오는 와이너리만도 111곳이다. 풋프린트의 <세계의 와인여행 가이드>는 마거릿리버의 소규모 와이너리(주로 가족이 운영한다)를 격찬하며 “지역에서 소비되거나 아니면 해외로 수출된다”고 소개했다. 이 지역 와이너리 상당수는 레스토랑도 겸한다.

와단디 부족의 아보리진 조시가 나뭇가지를 돌려 불을 피운다. 힐링호텔인 문댄스롯지에서는 아보리지의 정신 세계와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컬른 와이너리는 1966년 컬른 부부가 포도밭을 일구며 시작했다. 부부는 자부심이 강해 보였는데, 와이너리 소개 전단에 흙 묻은 소뿔 사진과 함께 이런 문장을 써놓았다. “우리는 유기농 와이너리입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소똥 퇴비에 쇠뿔도 함께 넣습니다.”

역시 자부심 강한 와이너리답게 컬른 부부는 오스트레일리아 와이너리 최초로 ‘탄소중립정책’을 선언했는데, 내용인즉슨 “재생에너지를 이용하고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서부 밀 곡창지대에 나무를 심겠다”는 것이었다. 컬른 와이너리의 잔디밭에서 로컬 비프스테이크와 유기농 야채를 와인과 곁들여 먹었다. 공기도 맑고 음식도 맑았다.

와이너리 사이엔 전원형 숙소가 들어섰다. 숲에 싸인 문댄스롯지에 도착했다. 숲의 한가운데 작은 호수가 있다. 별채 숙소 베란다에선 유칼립투스 나무가 보인다. ‘시뷰’나 ‘리버뷰’가 아니라 ‘트리뷰’다. 총지배인 제럴딘 레일리의 말로 “사람에게 좋은 기를 발산하는 나무”다. 나무는 하늘을 보고 반쯤 벗은 나목이다. 하늘의 영험함은 유칼립투스 나무를 타고 내려올까.

란셀린 사구에서는 모래를 이용한 레포츠가 활발하다. 보드를 타고 모래썰매(샌드보딩)를 타거나, 사륜구동 버스를 타고 사구를 가로지른다.
오스트레일리아 신혼부부들도 즐겨 찾는 곳

해질녘 숲 공터에 투숙객들이 모였다. 와단디 부족의 아보리진 조시 화이트랜드가 전통악기 디제리두를 불었다. 가슴에 손을 모으고 침잠하면 나쁜 것들이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했다. 심드렁하게 눈을 감았다. 시간이 흘렀고 잠시 지루했다. ‘지금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는 모두 여섯 종류다’ 그러고 보니 숲의 소리에 이렇게 귀기울여본 적이 없었다. 불규칙하고 가빴던 숨이 느려지고 평온해진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퍼스 북쪽의 어촌마을 란셀린으로 올라갔다. 란셀린 앞바다에서 아프리카까지 인도양에는 변변한 섬조차 없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바람은 거침 없는 파도를 만들고 파도는 다시 바람을 만들어 란셀린에 거대한 모래언덕을 쌓았다. 세찬 바람 덕에 란셀린은 윈드서핑과 카이트서핑의 명소가 됐다. 역시 바람 덕에 축조된 외계행성 같은 사구를 사륜구동 버스와 오토바이가 달린다.

아보리진의 문화와 자연의 영험함이 흐르는 서부를 오스트레일리아 신혼부부들도 즐겨 찾는다. 신기하게도 지난해 서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한 한국인 1만명 가운데 44%가 한 번 이상 와 본 두 번째 여행자들이었다. 적은 수이지만 열렬한 팬들이 많다는 얘기다. 인도양의 바람과 파도, 아보리진의 숲과 나무가 이들을 두 번째 길로 인도했을 것이다.

돌고래가 사람과 함께 수영하는 모습은 결국 보지 못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돌고래 150마리가 산다는 분버리 해변에서 기다렸지만, 돌고래들은 먼바다에서 와주질 않았다. 그래도 어미와 새끼 몇 마리는 경주하듯 줄곧 배를 따라왔다. 50년 전쯤이라고 했다. 돌고래가 이렇게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고 좋아하며 따라다닌 게.

마가렛리버·란셀린·분버리(오스트레일리아)=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마거릿리버 와이너리는 소량 생산으로 완성되는 고품질 와인으로도 유명하지만 우아한 레스토랑으로도 유명하다. 유기농 와인에다 유기농 식단을 즐길 수 있다. 육질이 부드러웠던 로컬 비프스테이크.


부시워킹에서 힐링호텔까지

오스트레일리아를 두번째 여행하는 갖가지 방법

두 번째 여행은 지역을 달리 할 수 있지만, 테마를 달리 할 수도 있다. 기존 랜드마크 중심의 여정을 탈피해 여행의 주제를 정한 뒤 출발한다. 한 번에 많은 걸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여행의 목적에 충실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두 번째로 여행하는 방법을 모았다.

⊙부시워킹=오스트레일리아의 숲은 자연의 정령이 깃든 곳이자 아보리진의 삶의 터전이다. 사막과 황무지가 이어지는 지형에서 숲은 소중한 공간이다. ‘부시워킹’은 현대 도시의 소란과 거리를 둔 길이자, 백인들이 밟지 못한 원주민의 땅을 답사하는 여정이다. 오묘한 암봉이나 화려한 계곡은 없지만 나무와 야생화, 원주민 전설 속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바이불문 트랙’은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미국의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버금가는 장기 부시워킹 코스다. 퍼스에서 출발해 알바니로 이어지는 1천㎞ 길. 12~24㎞마다 설치된 캠핑장 48곳에서 자면서, 숲과 소담한 시골마을, 드넓은 초원을 걷는다. 완주하려면 8주 이상 걸리지만, 일부만 소화해도 좋다. 바이불문 트랙 공식 홈페이지(bibbulmuntrack.org.au)를 참고한다.

‘케이프 투 케이프 트랙’은 마거릿리버 인근 리윈 내추럴리스트 공원의 숲·계곡·해변을 통과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일부 구간을 하루 산책길로 삼아도 좋고 5~7일 일정으로 135㎞를 완주할 수도 있다. ‘케이프 투 케이프의 친구들’(capetocapetrack.com.au)을 참고한다.

⊙와이너리 투어=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여유식(슬로푸드) 운동의 행동지침 가운데 하나가 시골에서 와인 맛보기다. 여행으로 지역경제를 돕는 ‘바이 로컬’ 취지로 시골 농가가 운영하는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여유롭게 와인을 곁들여 식사하자는 것이다.

마거릿리버는 서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와이너리 밀집 지역이다. 레스토랑을 겸하는 소규모 자영농이 대부분이다. 식사가 2~3시간 느리게 나오는 동안 와이너리의 녹음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와이너리와 레스토랑을 겸하는 시에나 이스테이트(siennaestate.com.au)는 스테이크 맛이 좋아 찾는 주민들로 밤엔 자리가 없을 정도다.

이 밖에 남오스트레일리아주의 클레어밸리, 아델레이드, 뉴사우스웨일스주의 헌터밸리, 빅토리아주 멜버른에서 1시간 거리인 질롱 등이 와이너리 투어로 유명하다.

⊙힐링호텔=여행은 안식의 질료다. 치료하는 호텔 ‘힐링호텔’은 명상·스파·산책 등 안식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댄스로지(moondancelodge.com)는 마거릿리버의 ‘자연의 치유력이 있는 곳’에 자리잡았다. 2005년 서오스트레일리아 이색적인 숙소, 세계적 여행잡지인 <콘데나스트 트래블러>의 핫 뉴 호텔로 선정된 에코 롯지다. 1박 325오스트레일리안달러(31만원), 스파가 달린 디럭스 스파빌라 475달러(45만원). 이런 ‘영혼의 여행’을 지향하는 부티크 리조트는 여럿 있다. 하이제리아힐링호텔(HHH)이 힐링드림스 휴양소(태즈메니아), 데이트리 에코 로지 앤 스파(퀸즈랜드) 등을 운영한다.

힐링호텔이 아니어도 좋다. 원주민들은 마거릿리버 숲에서 자연의 치유력을 경험했다고 증언한다. 와이너리 롯지나 리조트를 이용해도 자연은 가까이 있다. 시에나이스테이트도 아담한 전원풍의 와이너리 호텔을 운영한다.

남종영 기자

마거릿리버의 컬른 와이너리. 오스트레일리아 유기농업인 협회에서 에이(A)등급을 받은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

서오스트레일리아 여행쪽지

퍼스 5박6일 최저 78만원

⊙서오스트레일리아의 허브 도시는 퍼스다.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이 월·수·금·토·일요일 운항한다. 인천에서 오전 10시15분 출발해 홍콩을 경유해 퍼스에 도착하면 밤 11시45분이다. 이 밖에 싱가포르항공, 콴타스항공,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등이 경유편을 운항한다. 서오스트레일리아는 서머타임으로 한국과 시차가 없다.

퍼스에서 렌터카를 빌린 뒤, 마거릿리버와 란셀린 등을 두루 둘러보는 게 편하다. 마거릿리버는 퍼스에서 3시간, 란셀린은 1시간 거리다. 서호주관광청(westernaustralia.com) 홈페이지를 참고해 계획을 세운다. 퍼스 소재 여행사인 피너클스투어(pinnacletours.com.au)를 이용해도 좋다. 마거릿리버 와이너리 투어, 란셀린 샌드보드 타기와 사막 피너클스 등 당일 투어를 운영한다. 항공권과 호텔을 묶은 자유여행 상품이 경제적이다. 내일여행(naeiltour.co.kr) 퍼스 금까기 5박6일 상품이 77만9천∼91만9천원. 현지 투어나 렌터카 비용은 각자 부담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