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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2 21:13 수정 : 2008.03.12 21:13

작가 겸 기획자 이호백 재미마주 대표… 그림책은 심미안과 취향이 싹트는 체험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작가 겸 기획자 이호백 재미마주 대표… 그림책은 심미안과 취향이 싹트는 체험

많은 이들이 한국의 그림책을 이야기할 때 단행본과 창작 그림책이 자리잡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림책 작가이자 기획자인 이호백(46·재미마주 대표)씨는 고개를 젓는다. 삽화 형식을 빌리기는 하지만 50~60년대 어린이책 속 그림의 수준은 현재 창작 수준을 앞지르고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형편이 어려운 시절에 먹고 살려고 그린 그림이지만 가만 보면 요즘 그림보다 좋은 게 많아요. 다양한 형식적 실험도 있었고, 또 이쾌대나 변종하 같은 유명 화가들이 그림책 작가로도 활동했습니다.” 샤갈이 그림책을 그리고, 피카소가 삽화를 그렸음에도 여전히 그림책을 ‘쉽게’ 생각하는 풍토가 한국 그림책 문화의 답보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2005년부터 파주어린이책잔치 집행위원장을 맡아온 이 대표는 지난해 50~60년대 어린이책의 자료집을 엮으며 애를 먹었다. 남아 있는 자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보존 가치를 알지 못한 탓이고, 아동문학이 문학의 한 갈래로 인정받는 최근에도 그림에 대한 이해나 관심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이 대표의 우려다. “매일 다양한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현상만 보면 어린이책, 또는 그림책 시장의 외양은 풍요롭지만 그 겉모습을 떠받치는 하부구조는 여전히 부실하다고 봐요. 그림책 자료가 굉장히 소홀하게 다뤄진다는 점을 비롯해 여전히 출판사에서 글을 던져주고 그림을 끼워맞추는 식의 기획도 많죠.” 그림책이 공공의 문화적 자산으로 다뤄지지 않으니 다양한 그림책을 수시로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나 갤러리 같은 정서적 공간이 부족하다. 이러다 보니 독자도 그림책을 제대로 보는 습관을 기르지 못하고 그림책에서 글보다 풍부한 의미를 담아야 할 그림은 언어를 치장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대표는 대학 때 토미 웅게러의 화집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는 토미 웅게러가 누구인지, 그림책이 뭔지도 몰랐을 때였어요. 나중에 웅게러의 <크릭터>를 보고서 이런 게 이야기가 될 수도 있구나 하고 놀랐죠” 산업미술을 전공하면서도 “열심히 나이키 로고만 그렸지, 당대 최고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 한번 들어볼 수 없었던” 교육 시스템도 문제라고 본다. 졸업 후 프랑스 유힉을 마치고 온 그는 길벗출판사에서 어린이책을 기획하며 어린이책 전문 브랜드인 ‘길벗어린이’를 만들었고,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재미마주를 설립한 뒤 그린 토끼 이야기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는 2003년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됐다.

“그림책은 체험”이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 “그림책을 보는 습관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같은 책이라도 지난해 봤을 때의 느낌이 다르고, 지금 볼 때 느낌이 다르죠. 화집처럼 책꽂이에서 꺼내 보고 또 보면서 심미안과 취향이 싹트는 건데 많은 독자들이 글의 내용이나 교훈만을 생각하면서 한번 보면 그냥 덮어 버립니다. 결국 소모품처럼 소비되는 거지요.” 재미마주 도서목록 안내책자 앞장에는 프랑스 아동문학 평론가인 소리아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예술은 따로 없다. 다만 예술이 있을 뿐이다. 어린이를 위한 색상과 그래픽은 따로 없다. 다만 색과 그래픽이 있을 뿐이다. 어린이를 위한 문학은 없다. 다만 문학이 있을 뿐이다.” 어떤 책이 아이들에게 좋을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림책을 올바로 바라보고 제대로 선택하자면 그 앞에 어린이라는 모자를 떼놓고 먼저 좋은 책을 스스로 보고자 하는 호기심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글 김은형 기자,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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