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2.27 18:13 수정 : 2008.03.01 18:58

언더그라운드에서 슈퍼스타로 DJ의 변신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금요일과 토요일, 홍대 앞에는 비트가 넘쳐난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게 하는 비트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이름은 디제이(DJ)다. 그 중에서도 멈춘 심장마저 뛰게 할 만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비트와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인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하우스 음악을 하는 하우스 디제이다. 일렉트로닉 음악 장르 중 하우스는 클럽에서 춤을 추기 위해 디제이가 만들어낸 장르다. 철저히 디제이가 만들고 디제이가 폭을 넓혀온 음악이다. 지금 사람들은 하우스 클럽과 하우스 디제이에 열광한다.

우리나라에 하우스 음악과 클럽이 생겨난 지는 10년이 넘었다. 20~3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유럽이나 일본에 비하면 이제 막 뛰기 시작한 단계지만 클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현재 홍대 앞을 중심으로 강남·이태원 등에 있는 댄스 클럽은 40여곳이고, 그 중에 하우스 등 일렉트로닉 음악을 다루는 클럽은 15곳 정도다. 10년 전 손가락을 꼽던 하우스 디제이는 이제 50명 가까이 된다. 클럽 문화를 만든 1세대 디제이뿐 아니라 디제이 쿠마(DJ KUMA), 디제이 구루(DJ GURU), 디제이 에어믹스(DJ AIRMIX), 디제이 코난(DJ CONAN) 등 신진 디제이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클럽 문화 전문지 <블링>의 이주영 편집장은 “올해 클럽 문화의 가장 중요한 열쇳말은 디제이”라고 단언한다. “국내 디제이들의 음악적 열정이 대단해요. 우리 클럽 문화가 디제이 중심으로 변하고 있기도 하고요.” 클럽문화협회 이승환 기획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 10여년 국내 클럽과 디제이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어요. 지금 클럽은 파이를 키워가고 디제이는 깊이를 더해가는 중이죠. 2~3년 전에는 힙합 클럽이 주를 이루면서 힙합 디제이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하우스 클럽이 유행의 최전선에 있어요. 하우스 디제이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예요.”

〈Esc〉는 국내 클럽과 파티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디제이에 주목해 보려고 한다. 이번 호를 읽고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이번주 클럽데이에서 국내 디제이의 공연을 눈여겨보는 것, 그리고 기억하는 것이다.(아, 그리고 이제 우리도 미디어를 통해 클럽 문화 진도가 꽤 나갔으니 클럽 디제이와 나이트클럽 디제이, 음악다방 디제이, 라디오 디제이의 차이점은 과감히 건너 뛰도록 하자!)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디자인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언더그라운드에서 슈퍼스타로 DJ의 변신

폴 오큰폴드가 홍대 앞을 들썩이게 하기까지, 클럽 디제이의 역사와 사람들


영국의 클럽은 지금까지 전세계 클럽 문화의 중심에서 유행을 이끌어 왔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붐을 이뤘는데, 폴 오큰폴드와 대니 램플링 등 영국 디제이 네 명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스페인의 유명 휴양지 이비자의 클럽 탐방을 마친 뒤 지중해의 이국적인 사운드와 영국의 스타일을 조합한 ‘애시드 하우스’를 소개했다. 이때 팝과 댄스 뮤직에 뿅뿅거리는 독특한 신서사이저의 소리를 조합한 ‘애시드’ 사운드는 새로운 스타일의 장르로 큰 인기를 끌었다. 애시드 하우스는 83년 미국에서 처음 파생됐지만 영국에서 대중적인 인기 장르로 확산되면서 미국으로 역수입돼 시카고 하우스, 디트로이트 테크노 등과 더불어 인기 영역을 넓혔다.

클럽 문화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의 댄스 클럽 에이케이에이(AKA). 홍희선
‘조커레드’ ‘명월관’ ‘상수도’를 아십니까

영국 맨체스터의 애시드 하우스 중흥기를 선도했던 클럽은 ‘하시엔다’(Hacienda)였다. ‘해피 먼데이즈’, ‘스톤 로지스’, ‘뉴 오더’와 같은 걸출한 밴드를 배출한 영국 팩토리 레코드 사장 토니 윌슨이 운영했던 이 클럽은 클러버(클럽을 즐기는 사람들)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이러한 80년대 말 클럽 문화의 부흥기를 ‘사랑의 여름’이라고 이르기도 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클럽과 디제이의 인기는 바다 건너 뉴욕까지 세력을 뻗쳤다. 당시 젊은이에게 클러빙(클럽을 즐기는 것)은 자유의 분출구이자 대안적인 놀이문화로 자리를 잡아갔고, 수준 높은 디제이의 무대로 그 인기를 확산시켰다. 이 무렵부터 폴 오큰폴드, 사샤, 존 딕위드, 칼 콕스 등 디제이들이 슈퍼스타 디제이라 불리며 클러버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해외 톱 디제이 순위 10위권 내에서 인기를 유지한다. 디제이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가면서 세계 각지에서는 각종 댄스 페스티벌이 해마다 열렸고, 웬만한 록 페스티벌 못지않게 수만 명의 입장객들을 끌어모아 주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디제이의 역사는 영국이나 미국보다 훨씬 늦은 90년대 중반 시작됐다. 95년 디제이 선샤인(장성찬)이 시작한 클럽 조커레드 이후 엠아이(M.I.), 언더그라운드, 상수도, 명월관 등이 홍대 구석구석에 잇달아 문을 열고 음악 마니아를 유혹했는데, 초창기에는 캐나다와 미국인 디제이가 상주하며 활동하기도 했다.

2005년 영국에서 열린 댄스 페스티벌 ‘글로벌 게더링 페서티벌’의 한 장면. 홍희선
현재 국내 클럽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홍대 앞 클럽 엠투의 토요일 밤 모습. 박미향 기자
내가 홍대 클럽에 첫발을 딛은 때는 홍대에 클럽이 막 생겨나던 96년이었다. 대학 시절 음악 동호회 사람들과 토요일마다 음악 감상과 함께 가볍게 한잔하러 마지막에 가던 곳이 조커레드와 언더그라운드였다. 맥주 한잔 값에 불과한 단돈 5천원이면 몇 시간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게 홍대 클럽의 매력이었다.

이때 클럽에는 당시 한창 유행했던 록 밴드 음악부터 트랜스·하우스가 주를 이루곤 했다. 한 가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꽤 강렬한 록에서 모던 록·브릿 팝·테크노·트랜스·하우스 등 다양한 장르를 섞어 틀었다. 90년대 말로 가면서 클럽과 디제이들은 점차 세분화된 장르를 고착했고 마니아들 역시 자신이 선호하는 음악을 트는 클럽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테크노 클럽들이 인지도를 넓히면서 클럽 조커레드의 선샤인, 엠아이의 엉클(유승렬) 등 오랜 경력의 대표 디제이들이 마니아층을 양산했다. 그들의 직업은 선망의 대상으로 변해갔다.

해외 디제이들의 내한이 계속 이어지면서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치부됐던 디제이에 대한 편견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99년 가을, 독일 출신 디제이 폴 반 다이크(Paul van Dyk)의 첫 내한공연을 기점으로 소규모 클럽 공연을 진행하던 파티 프로모터들은 점차 큰 규모의 장소로 자리를 옮겨 더 많은 해외 유명 디제이들의 공연을 유치했다. 2002년 월드컵 시즌 대형 레이브 파티 신은 야광봉을 돌리며 몸을 들썩이는 테크노 마니아들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몸값이 몇 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해외의 톱 디제이들의 파티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으며 디제이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갔다.

1990년대 중반에 생겨나 홍대 앞 클럽 문화를 이끌었던 클럽 조커레드. 클럽문화협회 제공
1990년대 중반에 생겨나 홍대 앞 클럽 문화를 이끌었던 클럽 엠아이. 클럽문화협회 제공

클럽문화 확산, 음반 내는 디제이도 늘어

그렇지만 우리 클럽이나 파티가 우후죽순으로 초청되는 해외 톱 디제이에 의존하면서, 국내 디제이는 이들의 오프닝 또는 뒷무대를 장식하는 위치 이상으로 도약하지 못한 면도 있다. 또한 한국의 디제이들은 디제이 스쿨 같은 전문가 양성 과정이 없어 대부분 독학을 해야 했다. 해외에서 유학하다 온 몇몇 디제이·뮤지션들의 활동이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큰 인지를 얻을 만한 활동은 가뭄에 콩 날 정도였다. 다행히 최근에는 클럽 문화가 확산되고 디제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덕분에 홍대 클럽에서 디제잉을 배우면서 음반 발매를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가끔 디제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항상 익숙하게 찾아가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골라서 믹스해 주는 디제이의 음악이 없다면? 새로운 음악을 찾아서 듣기에 너무나도 게을러빠진 우리보다 항상 발빠르게 신선한 음악을 찾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우리에게 선사하는 디제이가 없는 세상은 암울하지 않을까. 컴컴한 부스에서 묵묵히 음악을 골라주는 디제이가 나는 너무 좋다.

홍희선/ 일렉트로닉 뮤직 저널리스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