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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13 18:37 수정 : 2008.02.15 16:26

최근 댄스 클럽의 기세에 눌렸지만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은 여전히 수준 높은 성과물을 내놓는 문화발전소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음악의 마지막 해방구’ 음악평론가 김작가의 홍대 앞 예찬

‘클럽’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대개 댄스 클럽을 이야기할 것이다. 불야성을 이루는 주말, 남녀·내외국인이 뒤엉켜 거대한 음악에 맞춰 소돔과 고모라의 풍경을 재현하는 그곳. 댄스 클럽보다는 말세 클럽이라 부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 많은 말세 클럽 대부분이 홍대앞에 있다. 그래서 홍대앞에 대한 이미지는 예전같지 않다. 타락의 온상이며 제2의 이태원이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옛날의 홍대앞을 그리워한다. 한국 인디 문화의 상징이자 인큐베이터 같았던 그곳.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고 소비되는 대한민국 유일의 공간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홍대앞’은 사라진걸까.

그렇지 않다. 저녁의 홍대앞을 가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일련의 아이들이 있다. 기타 가방을 짊어지고 합주실로 향하는 내일의 뮤지션들. 그들이 활동하는 곳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홍대앞 라이브 클럽이다. 10여년의 역사를 홍대 앞 인디 신은 헛되이 흘려보낸 건 아니다. ‘인디 붐’이 일었던 1990년대 중후반, 그 바람을 타고 크라잉 넛, 노 브레인,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등의 ‘동네 스타’들이 전국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의 뒤를 잇는 밴드들 중 그만한 스타는 분명히 없다. 역량이 쇠해서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가요계가 10여년 전보다 오히려 대형 기획사 중심의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서 그렇지 홍대앞 인디 밴드들의 실력은 예전에 비해 일취월장이다. 홍대앞의 원로 음악인들이 하나같이 하는 소리가 있다. “요즘 밴드들은 연주력은 기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음악도 훨씬 다양해졌다. 나날이 그렇다. 예전에는 펑크면 펑크, 모던록이면 모던록 … 이런 식의 대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펑크, 모던 록, 하드 코어 등 기존 갈래(장르)들도 건재하지만 새로운 갈래, 나아가 특정 갈래로 규정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음악을 하는 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던 록에 일렉트로니카를 결합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데뷔 앨범 <우리는 깨끗하다>는 록과 댄스가 얼마나 기가막히게 이종교배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단한 성과다. 게다가 뻔한 내용에서 벗어난 가사는 리얼리티와 서정을 넘어선, 새로운 우리말 가사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날이 무대의 온도를 뜨겁게 만드는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사이키델릭과 펑크, 하드록과 70년대 한국 그룹사운드를 아우르며 순도 120%의 에너지로 객석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해 교육방송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해, 하드코어에 생경해하는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은 할로우 잰은 마치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 선보이는 연극 같은 공연으로 인간의 절망과 분노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주목할 만한 밴드들을 일일이 거론하자면 아무리 지면이 많아도 모자랄 정도다. 초기의 인디 밴드들이 자작곡을 바탕으로 영미권 대중음악의 동시대적 재현을 미덕으로 삼았다면 지금의 밴드들은 차별성과 독창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움직임은 세계 대중음악의 보편성과 홍대앞만의 독창성을 결합한, 글로컬(global+local) 문화의 사례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활동하는 라이브 클럽도 초기의 퀴퀴한 이미지를 벗어나 제대로 된 공연장으로 진화 중이다. 롤링홀, 상상마당처럼 기존 가수들의 콘서트 장으로도 이용되는 대형 공연장 형태의 라이브 클럽이 있다. 그리고 사운드홀릭, 쌤, 드럭처럼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인디 밴드들이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열 만한 라이브 클럽이 있다. 마지막으로 빵, 바다비, 스컹크 헬처럼 규모는 작아도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새로운 밴드들을 배출하며 인디 음악의 수원지 구실을 하는 클럽이 있다. 예전의 클럽들이 다 그만그만한 규모로 소속 밴드를 가지고 승부를 거는 단계였다면, 지금은 규모의 경제학과 내용의 경제학을 저마다 사정에 맞게 실현하는 거다.

뮤지컬과 개그콘서트가 장악한 대학로에서도 사라진 라이브 음악 문화는 이렇게 홍대앞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들은 세상이 옛날처럼 자신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을 투정하지 않는다. 세상을 원망해 봤자 바뀌는 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찾아올지 모를 때를 위하여 내부 역량을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계속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을 들으러 홍대앞을 찾는 팬들과 어울려 마침표 없는 진행형 문장을 써나간다. 그 문장들이 모여서 책이 되는 곳, 그곳이 바로 홍대앞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남은 음악의 마지막 해방구다. 방송에는 들을 음악이 없다고? 홍대앞 인디 음악을 보라. 당신이 듣고 싶은 음악, 거기에 있다.

글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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